발리에서 보낸 육 개월, 그리고 퍼스

by 미경

9월 중순,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을 때 떠나온 한국은 삼 개월의 시간을 보여주듯 어느새 한겨울이 되어 있었다. 두꺼운 옷을 하나도 챙겨가지 않았던 나는 남자 친구한테 빌려 입은 맨투맨 티셔츠로 겨우 공항을 빠져나와 생각보다 더 오래 비워두었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귀국의 안도감도 이삼일 남짓, 휴양 천국 발리에서 따스한 현지인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해변을 오가는 일상을 누리던 나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오피스텔로 돌아와 무채색의 옷을 입은 무표정의 직장인들이 내뿜는 삶의 무게가 잔뜩 실린 공기를 들이쉬며 지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발리에서 걱정 없이 보낸 삼 개월이 나를 치유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땅을 밟은 지 몇십 시간이 채 안되어 삼 개월 전에 매일 같이 느꼈던 절망감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그 어느 곳으로 도망가도 나는 결국 이 절망감을 떨쳐버릴 수 없을 거라는 공포심과 함께.




다행히 한국에서 보내기로 한 시간은 일주일 남짓뿐이었고, 만나야 할 사람을 얼른 만나고 가져가야 할 것들을 얼른 챙겨서 짐을 다시 싸 출국 길에 올랐다. 이번 비행은 대만을 경유하는 데 타이완에서 며칠을 보내는 일정이었다.


대만 역시 섬나라로 남쪽과 동쪽에 좋은 파도가 들어온다. 직장을 그만두기 전 서핑 여행으로 대만을 몇 번 방문했는데, 열심히 공부해 뒀던 중국어도 아직 쓸만했고 대만에서 보냈던 시간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아서인지 갈 때마다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왔었다. 사실 직장을 그만두면 발리 한 달, 대만 세 달, 호주 여섯 달 정도를 지내다 오는 게 계획이었는데, 발리에서 세 달을 쓸 때부터 이미 계획이 어그러졌다.


이제 대만은 남자친구가 있는 발리로 돌아가면서 잠시 일주일 정도 경유하는 곳으로 중요성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일주일마저도 잠시 귀국하는 동안 절망감과 공포감에 잔뜩 사로잡힌 터라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고 도통 즐길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남자친구는 내가 그리워서인지 전화를 해서 이해가 전혀 안 되는 이상한 소리를 해 대는 통에 빨리 발리에 돌아가서 걔나 나나 진정될 수 있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었다.




그렇게 발리에서 두 번째 삼 개월을 보내었다. 모든 것이 익숙했고, 특별히 새롭게 만날 사람, 새롭게 경험할 것이 없었다. 아침이면 남자친구가 일하는 해변으로 함께 가서 서핑도 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지면 집에 돌아와서 넷플릭스를 보는 단순한 일상을 살다 보니 시간이 말도 안 되게 빨리 갔다. 첫 달은 한국에서 가져온 절망감과 공포심에 압도되어 잠을 많이 자면서 보냈더니 물리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적기도 했다.


발리에서 관광객이 장기 체류하는 데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당시 기준 복잡한 행정 절차를 요하지 않는 가장 간단한 것은 두 달에 한 번씩 인접 국가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삼 개월을 보낼 때는 발리에서 가장 가까운 해외 대도시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잠시 도시 구경을 하고 비자를 연장했다.




두 번째 삼 개월에 필요한 비자 연장을 할 때는 다른 곳을 방문해보고 싶었는데, 그건 바로 호주였다. 인도네시아는 호주와 이웃한 나라이고 발리에서는 특히 호주 서쪽이나 북쪽이 가깝다. 서쪽 대도시라면 퍼스이고, 북쪽 대도시라면 다윈이 있다. 당시 나는 대만 세 달의 꿈은 버렸을지언정 아직 호주 육 개월의 희망은 놓지 않고 있었기에 발리 다음에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호주를 다시 갈 마음을 갖고 있었고, 가서 지낸다면 2008년도에 가봤던 시드니나 멜번을 제외한, 그다음가는 대도시인 브리즈번이나 퍼스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싶었다. 다윈은 아쉽게도 선택지에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퍼스에 가보는 것은 다음에 가서 지낼 수도 있는 도시를 미리 가 보는 것이 되니 다윈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 아닌가. 그렇게 나는 2020년 초, 퍼스를 방문하게 되었다. 10년여 만에 다시 찾은 호주, 공항에서 나와 처음 받은 인상은 하늘이 참 지면과 가까이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 호주를 처음 방문했을 때에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호주 하늘은 높다기보다는 낮고 넓게 퍼져있다. 그리고 참 건조하다는 것, 아무래도 열대 지역이 발리에서 적도를 이동해 왔으니 그 건조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널따란 하늘, 습기 없는 공기에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를 걸으며 넓게 뻗은 도로들과 높고 두툼하게 솟은 직사각형의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20대 초반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나를 위로해 주었던 그 나라를 다시 찾았다는 기쁨이 밀려왔고, 꼭 이곳에 다시 와서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발리로 돌아가 공항에서 두 달짜리 비자를 받고 입국했다. 그 무렵 전 세계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었다. 갖은 방어책을 쓰던 한국에도 결국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었는데 다행히 발리 상황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서 발리에서 지내면서 사태를 피해 있으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발리에도 바이러스가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해변을 비롯한 관광지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설 문을 닫고 있었다. 식당과 카페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고, 발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외국인 관광객이 적합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었다는 이야기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발리에 더 있는다고 휴양하고 지낼 분위기도 아니고, 잘못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치료받다가 죽게 생겼다. 한국으로 가는 게 맞다고 결정했고, 남자친구도 고향이 있는 북쪽으로 돌아갔다가 상황이 잠잠해지면 다시 발리에서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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