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이 흘렀다. 나는 대만에서 중국어 공부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3월부터 8월, 6개월 어학원 코스를 등록하고 학교에는 한 학기 휴학을 연장하는 서류를 제출했다. 중국어는 호주에 가기 전부터 영어 다음으로 할 줄 아는 외국어로 삼고자 정하고 대학에서 한 학기 강의를 수강하고 아침저녁으로 학원도 다녔었다. 시드니에서 사백만 원쯤 돈을 모았고, 한국인, 동양인 없는 한적한 곳으로 가서 영어 어학원을 다니고 싶었다. 유학원에서는 질롱이라는 멜번 옆에 있는 작은 도시를 추천해 줬고, 이름도 이상하고 어딘지 뭐 하는 덴지도 몰랐지만, 내 눈물 섞인 인생 스토리에 그저 공감을 잘해 주었던 유학원 원장님 믿고 멜번행 비행기에 올랐다.
질롱 시내에는 온통 백인 호주인들 뿐, 시드니 차이나타운에서 일하며 여기가 서울인지 시드니인지 도통 구분 못 할 몇 달을 보내던 나는 이제야 좀 호주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났었더랬다. 그렇게 등록한 학교에 가니, 웬걸 모든 이 도시에 사는 모든 동양인들이 이 학교에 모여 있는 것 아닌가. 아무리 동양인 좀 그만 보고 싶다고 했어도 백인 천지인 곳에서 동양인들 보니 참 반갑더라. 한 무리의 동양인 그룹에 어울려 친하게 지내다가 대만 남자를 만나 생각지도 않던 연애도 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둘의 호주 계획이 끝나가고 있었고, 그렇게 각자 나라로 돌아가면 다시 보기 힘들 인연이 될 것이기에 나는 묘수를 생각해 냈다. 안 그래도 공부하고 싶던 중국어를 현지에서 공부하면서, 현지인 남자친구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늘린다면 이보다도 좋은 게 있을까.
비록 그와 나는 내가 한국에 돌아오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서 인연이 다 했지만, 똘똘한 21살의 내가 용기 있는 결정을 한 덕에 2009년은 대만에서 아주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16년이 흐른 2025년 지금, 나는 첫 번째 나라인 호주에 다시 와 있고, 호주 다시 와 지낸 지 벌써 1년 8개월이 되어 가는 중이다. 그럼 지난 16년 간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나는 변호사가 되었고,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믿을만한 친구들이 여럿 있다. 보이는 부분에서의 성취가 많았지만,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잃은 것들이 많았다. 성취의 굵직한 방향은 원하던 그림대로 흘러가는 듯했으나 그 속은 후회와 원망들로 가득했고, 불안과 죄책감에 압도되어 살았다. 늘 웃는 낯을 하고 '괜찮아요'를 연발하던 나는 잘 먹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길에서 더 전진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내가 원하던 모습의 행복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더 이상 버티고 서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일 잘하고 성격 좋은 직원에서 아무런 조짐 없이 갑자기 퇴사 통보를 한 사람이 된 나는 2019년 8월, 잠시 멈춰 서기로 하고 있던 곳을 떠났다.
그럼 어디를 갈까 하고 봤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첫 번째 해외 생활로 나에게 강렬할 인생을 남긴 호주였다. 하지만 호주는 몇 달 뒤로 미뤄뒀는데 그 이유는 당시하고 있던 서핑 때문에 새로 가고 싶은 나라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전 세계의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는 발리. 발리섬 전역, 특히 남쪽을 중심으로 질 좋은 파도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관광지로 개발된 지 오래되어 물가가 싼 편임에도 즐길 거리들이 굉장히 많고, 발리 힌두교의 영향으로 문화적으로 굉장히 특색 있고, 사람들이 친절하고 치안이 안전하다는 장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서핑을 하면서 친하게 지내게 된 친구 둘과 항공권을 예약하였고, 친구들은 시간적 제약이 있어 이 주 일정, 제약이 없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입국했다가 이 주를 더 머물러 한 달을 보내는 일정으로 잡았다. 일하던 곳을 떠나, 한국을 떠나, 전 세계 여행자들이 다 모인다는 최고의 휴양지 발리에서 보내는 시간은 황홀했고 한 달 이상의 시간을 보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예약해 둔 귀국 항공편을, 변경 가능한 가장 늦은 날짜로 미루었고, 그렇게 발리에 예정보다 두 달을 더, 총 세 달을 보내다 가게 되었다.
첫 달은 같이 입국해 함께 시간을 보내던 친구들이 간 이후에도 다른 두 명의 친구들이 각 한 주씩 발리로 와서 나와 함께 지냈던 터라 한 달 내내 친구들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마지막 친구가 돌아가고 두 달째가 되어 이제 더 이상 나와 함께 놀러 올 친구들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허전함이 파고들었다. 혼자 일몰을 보러 바다에 산책을 나가면 나에게 여러 번 서핑 강습을 해 주었던 현지 강사가 알은체를 하고 음료수를 손에 쥐어 주곤 했다. 그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지내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려고 연락을 하였다. 실제로도, 문자로도 너무 친절한 그에게 조금씩 마음이 열려가고 있었을 때쯤 그는 이런 감정을 가지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이라며 사과와 함께 정중하게 나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고 그렇게 해변에서 일하던 그와 해변 근처에서 지내며 해변을 자주 가던 나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삼 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예약한 비행기를 탈 때가 되었지만 나는 발리를 굳이 떠나 한국으로 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어차피 한국에 가지 않으면 환불도 받지 못하고 버리는 표가 되는 거, 발리의 더운 날씨와 다른 환경으로 불편함이 쌓이고 있던 나는 한국에 돌아가 잠시 쉬면서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만나고 재정비하다 다시 돌아오겠노라며 다음 항공권을 이미 예약해 둔 채로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