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세상을 바꾸는, 고기대신
채식을 하는 보디빌더, 다소 낯선 조합입니다. 황소처럼 매일 엄청난 운동량을 감당해야 하는 ‘스트롱맨’이 과연 풀만 먹고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릴 수 있을까요? 하지만 기네스북 세계 신기록을 세운 보디빌더 패트릭 바부미안은 이렇게 퉁명스레 내뱉습니다.
“황소가 고기 먹는 거 봤어?”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황소가 아니더라도 공룡부터 코끼리까지, 채식을 하면서도 강한 힘을 발휘하는 동물은 많습니다. 우리가 단백질을 섭취하는 영양학적 이유인 아미노산이 사실 식물성 식품에도 다량 들어있기 때문이죠.
| 채식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되며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 아놀드 슈왈제네거, UFC 선수인 네이트 디아즈, ‘포뮬러 원’ 챔피언 루이스 해밀턴 등 내로라하는 철인은 다름 아닌 채식이 실력 발휘의 비결이라는 증언을 내놓습니다.
채식을 시작하자 부상에서 더 빨리 회복하고 근육량이 오히려 늘어났다는 겁니다. 채식을 하면 소위 ‘근 손실’이 발생한다는 오래된 통념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채식 다큐멘터리 한 편이 쏘아 올린 세간의 호기심에 불을 붙인 건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버그였습니다. 격앙된 목소리로 세계 지도자들을 질타하는 툰버그의 연설 영상, 한 번쯤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 대신 태양광 요트를 타고 유엔 정상회의에 참석한 그는 불타는 지구를 구하려면 우리 모두 “바로 여기, 지금 당장”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일갈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비거니즘’이었죠.
스트롱맨 바부미안과 툰버그 때문일까요. 툰버그가 ‘올해의 인물(타임)’로 등극한 2019년은 ‘비건의 해(이코노미스트)’이기도 합니다. 이는 수치로 증명되어,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인터넷상에서 비거니즘에 대한 관심은 최근 5년간 7배로 껑충 뛰었습니다. 서구의 뉴 노멀이 되어가는 채식주의의 영향력을 알아본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은 전 세계 대체육 시장이 10년 내 최대 1,400억 달러에 달할 거로 예측하죠.
| 한국에도 ‘먹히는’ 비건 음식을 위해
인도 채식 인구와 최근 3년간의 증가분을 뺀 전 세계 채식주의자 수 1억 8천만 명. 채식 시장이 점차 거대해지고는 있다지만 한국채식연합이 추산한 국내 채식 인구는 약 100만에서 150만 명입니다.
전체 인구의 2% 수준이죠. 채식주의자가 극소수에 불과한 한국에서 비거니즘은 여전히 낯선 어휘입니다. 채식주의자와 비채식주의자가 모두 만족할 만한 식사 공간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이에 고기대신 시리즈를 출시한 바이오믹스테크의 윤소현 대표는 우리 모두의 건강과 환경을 위해 ‘입맛의 교집합’을 점차 넓혀갈 것을 제안합니다. 윤 대표 본인 또한 ‘간헐적 비건’으로서 채식이 익숙지 않은 분들도 기꺼이 저녁 반찬으로 고를 만한 비건 메뉴를 궁리하죠. 그 고민의 결과가 메이커스에서 선보이는 ‘비건 양념순살 후라이드 치킨’입니다.
그런데 닭고기 없는 비건 순살 너겟이라니. 일견 모순 형용처럼 보이는 이 제품명이 말이 되는 이유는 바이오믹스테크가 ‘식물성 대체육’을 만드는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살짝 낯설게 느껴지는 식물성 대체육, 일명 콩고기는 콩에서 식용유를 짜고 난 나머지에서 단백질을 분리해 육류의 식감이 나도록 조직화한 음식입니다. 동물성 고기보다 더 높은 단백질 흡수율을 보이지만 콜레스테롤은 낮다고 합니다. 이처럼 뛰어난 영양과 흡수율 탓에 채식이 육상 선수의 비기(祕技)가 될 수 있었던 거죠.
게다가 식물성 대체육은 콩 한 쪽도 낭비하지 않습니다. 단백질을 분리한 나머지 대두는 사료로 사용하죠. 윤소현 대표의 말마따나 “목장, 사육장, 도축장 없이 고기를 만드는 공정”이 쓰이기에, 인간뿐만 아니라 우리 생태계의 수명까지 늘릴 잠재력을 품고 있습니다.
| 고기가 없으면 배양하면 된다?
그런데 “소만 덜 키워도 온실가스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윤소현 대표의 말을 듣다 보니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콩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과연 소고기의 풍미를 100% 재현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옳다 한들 맛이 없다면 끌리지 않는걸요.
윈스턴 처칠의 말마따나 “가슴살이나 날개를 먹기 위해 닭을 통째로 기르는 모순에서 벗어나” 세포를 합성해 고기를 만든다면 진짜 같은 맛과 식감을 보존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처칠의 비전에서 시장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제 도전에 착수한 기업도 있습니다. 배양육 산업의 프런트 러너, 네덜란드의 모사미트죠. 이들은 목장에서 가축을 키우는 대신 백색의 실험실에서 동물의 줄기세포를 키웁니다. 샬레 위에서 탄생한 ‘진짜 고기’인 셈입니다.
하지만 윤소현 대표는 배양육이 모두를 위한 음식이 되기까진 더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2013년 모사미트가 배양육으로 만든 햄버거의 가격은 약 3억 3,800만 원. 2020년 현재 배양육의 가격은 많이 낮아졌지만, 우리 모두가 부담 없이 접하기엔 아직 높은 수준입니다.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그릇인 스캐폴드의 크기가 작아 두툼한 생고기를 얻지 못하는 점도 걸림돌입니다.
| 모두가 ‘치맥’할 수 있도록
윤소현 대표는 배양육처럼 SF 영화에 나올 법한 식품의 먼 미래를 바라보는 대신 정공법을 택합니다. 저렴한 콩을 사용하되 채식에 관심없는 이들도 기꺼이 즐길 만큼 맛있는 대체육을 만들겠다는 거죠. 그는 딸과 함께 방문한 미국의 한 비건 식당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윤 대표는 무심코 먹은 대만 요리에서 콩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특유의 냄새를 극복하는 데 대체육 공정의 포커스를 맞추게 됩니다. 아이들 식탁에 쉬이 오를 만한 치킨 너겟을 택한 것 또한 메뉴 접근성을 높이려는 고민의 산물이죠.
환경 운동가도 100% 비건도 아닌 윤소현 대표가 이처럼 치열하게 비건 치킨을 만든 이유는 꽤나 소박합니다.
“야밤에 모두가 죄책감 없이 ‘치맥’할 수 있었으면 해요.”
윤 대표는 모두가 한 입씩 맛있게 실천하는 식사 자리를 꿈꿉니다. 꼭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비건과 동석할 수 있는 행복한 식탁, 지구를 구하겠다는 비장한 결심 없이도 세상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그런 식탁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