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KEUFeeLMYLOVE Feb 26. 2023

이사 시 추억여행 국룰 (feat. 사진첩과 일기장)

이사를 하고 3번째 맞이한 주말이었다. 이사를 무사히 마치고 평화롭게 브런치를 하고 있는 이 순간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기다린 만큼 참 값지다.


되돌아보면 이사를 할 때마다 나와 환경은 동반 성장했다. 가장 내 집 같지 않았지만 가장 많이 성장했던 곳이 바로 전 집이다. 많이 움츠렀지만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힘차게 뛰어오를 수 있었다.



이사를 하면 꼭 추억여행을 한 번씩 한다. 평소에는 안 보던 사진첩도 이삿짐 정리를 핑계 삼아 한참을 들여다본다.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때 사진을 발견했다. 운동장 크기만큼 학생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나조차도 한참을 들여다봐야 겨우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아빠 눈에는 수많은 아이들 속에서 내가 단박에 보였나 보다.


이번에는 일기장이다. 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글씨'라는 것을 쓸 수 있을 때부터 써 둔 일기장들이 있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러 이사를 거쳐, 아직도 나와 함께 찰떡처럼 꼭 붙어있다. 나의 보물이다.


완전 성인이 되고서는 일기장을 처음 펴본다. 본래 타고 태어난 나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이런 애였구나...!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이며,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 존재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탐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쓴 일기장은 나를 탐구하는 데 더없이 좋았다.

토요일, 날씨는 해 쨍쨍. 이럴 때는 나가서 뛰어놀아야지. 고로 일기장에 쓴 글이 없다.

일기장에 날씨 얘기가 태반이다. 나가서 뛰어놀아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일의 할 일은 신나게 놀기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한 활동적인 아이였구나.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의 반성은 거의 없는데,

정말 간혹 동생과 다퉜나 보다.


일어난 시간 70시, 무슨 말했는지는 안 알려줌..

밖에서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한 어린 나는 일기장의 글씨 크기도 큼직큼직하다. 크기가 크면 선생님과 약속했던 1페이지 분량을 비교적 빨리 채우고 밖에 나가서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일기장이 거의 뭐 대하소설급 분량이라 읽다 보면 슬슬 엉덩이가 들썩들썩 거리는데, 나도 몰랐던 나의 원래 모습을 보석처럼 캐내는 재미가 있다. 밖에서 노는 것 말고 유일하게 좋아했던 게 글짓기였다. 나는 글쓰기와는 정말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좋아했던 것을 잊고 살았나 보다. 그래서 브런치를 하면 그렇게 어린아이 마냥 즐거웠나 싶다.

맞춤법도 겨우 아는 어렸을 때의 나의 일기장은 내가 무엇을 소망했고, 무엇을 추구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준다.

지금의 나도 여전히 용기 있는 삶을 추구.



진득하게 엉덩이 붙일새 없었던 자식에게 겨우겨우 일기를 쓰게 한 어머니께 감사하며, 내가 만약 자식을 낳는다면 일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 글자라도 꼭 쓰고 자라 해야겠다. 오늘의 일기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