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KEUFeeLMYLOVE Jul 14. 2023

나 지금 푸바오냐?

매일 하루 10시간의 결과물

뒤늦게 푸바오에 빠졌다. 푸바오는 행운을 주는 보물이라는 뜻으로 대한민국 최초, 자연 분만으로 태어난 판다 곰이다. 멸종위기 자이언트 판다의 순산이라니. 새 생명이 탄생하는 장면을 숨죽이고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손가락 발가락에도 힘이 들어간다. 철장을 부술듯한 고통을 참아낸 엄마 판다곰은 오랜 산고 끝에 푸바오 출산에 성공한다. 고작 100g 남짓한 새끼 판다 곰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이토록 기쁘다니. 기립박수 칠 뻔했다. 우리 엄마도 나를 저렇게 낳았나 싶어서 울컥하기도 하고, 역시 생명의 탄생은 경이롭다.


푸바오를 귀엽게 본 덕분이었을까? 이렇게 가까이서 직관할 기회를 얻을 줄이야!



어느 때보다 필라테스를 자주 하고 있는 요즘이다. 개인레슨의 장점은 맞춤정장처럼 나에게 딱 맞는 운동을 할 수 있다. 나의 약점도 잘 파악할 수 있다. 나는 발을 디디는 힘이 부족하다. 예를 들면, 박스 위에 앉아서 몸을 살짝 뒤로 내려 복부에 힘을 딱 주고 흉추를 좌우로 돌리는 동작을 한다. 그러면 곧바로 발바닥이 들썩들썩 탭댄스를 시작하려고 한다. 속으로 '이러다가 발라당 뒤로 넘어가는 거 아니야?' 싶어 조마조마 외줄 타기 하는 심정이다. 그럼에도 온 신경을 다해 집중하면 겨우 발을 붙이고는 있다. 유일하게 이 점은 필라테스 초반일 때보다야 나아졌지만 드라마틱하게 향상되지는 않은 듯하다. 왜일까?


이틀 연속 개인레슨을 하고 온 다음날이었다. 어느 때와 같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고 바로 옆에 있는 거울을 무심코 보게 되었다.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슬 낯이 익다. 거울에 비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 자세 어디서 많이 봤는데..? 머지않아 금방 찾았을 수 있었다. 어! 푸바오다. "나 지금 푸바오냐?" 거울에 있는 나에게 되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하.. 푸바오랑 나랑 앉아있는 자세가 똑같다니..!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잠시 이성적으로 분석을 해보자.



(판다사진은 모두 unsplash.)

골반을 약간 밀어 뒤로 기대고 있는 곰이 앉은 것과 같은 자세다. 앞에 대나무가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의 앉은 자세는 마치 통조림 한쪽 면이 찌그러진 것과 같다. 앞뒤양옆 모든 면이 다 팽팽해야 하는데 한 곳에 바람이 빠지니 찌그러진다. 한쪽이 내려앉으니 우후죽순으로 연달아 무너지기 시작한다. 하복부에는 힘이 자동적으로 잘 들어가지 않는 자세다.



하복부에 힘이 덜 들어가니 허벅지 안쪽의 근육도 연달아 약해지는 듯하다. 그러므로 나는 발이 들릴 때 안쪽이 들린다. 바깥쪽 발날이 거의 70%의 힘을 줘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셈이다. 바깥쪽이 과하게 일을 많이 한다. 안쪽과 바깥쪽의 힘의 균형이 어긋난다. (나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같은 자세더라도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


나는 하루 중 앉아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운동하는 시간을 최대로 잡아도 2시간, 반면 앉아 있는 시간은 평균 10시간은 되는 듯하다. 무려 5배나 푸바오 자세를 더 많이 하고 있는 셈이다.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았던 진짜 원인은 바로 10시간 동안의 내 자세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는 정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골반을 세운다고 생각하면서 레슨에 임한다. 하지만, 힘없이 항상 뒤로 기대어 일을 안 하고 있던 내 골반과 아랫배는 꿈쩍도 안 할 때가 태반이다. 이때 강사님은 나를 백허그하다시피 뒤에서 밀착 마크하신다. 샅바만 없을 뿐이지 이건 뭐 이만기와 강호동의 팽팽한 씨름경기가 따로 없다. 흣짜- 흐읏짜! 세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아직은 마음에 비해 몸이 조금 더디게 따라와 준다.


50분 필라테스 수업 굉장히 중요하다. 개인레슨은 필수다. 그렇지만 나의 골반을 세우려면 내가 필라테스를 안 하는 시간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더 이상 푸바오 자세일 수는 없다. 귀여운 푸바오 자세를 어떻게 하면 '멋지게' 바꿀 수 있을까?




끌어올려



앞뒤양옆 모두 외향인사이에 낀 내향인처럼! 있는 텐션 없는 텐션 다 끌어올리듯이, 내 몸도 위로 끌어올리는 힘을 길러야 바르게 세워진다.

노란색 박스에 있는 게 아니라, 분홍색 박스에 있을 수 있도록!


엎질러진 물을 두고 한탄하고만 있을 수 없다. 느리지만 확실한 조각들을 발견하지 않았나. 무너진 자세를 차곡차곡 쌓아 다시 올려줘야 하겠다. 그래야 하복부도 제대로 쓰이고 하체 힘의 균형도 맞아진다.


강사님이 "골반을 세워보세요"라고 하면 나는 앞뒤로 쓴다. 오답을 당당히 정답이라 생각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세를 출력한다. 골반자체를 움직여 세우는 것이 아니라 허리를 억지로 앞뒤 힘줘 세운다. 이때 갈비뼈는 활짝 열려 앞으로 빠져있고 엉덩이는 과하게 오리엉덩이가 된다. 그 여파로 허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무리가 온다. 나는 분명 위로 키가 커진다 생각하고 바른 자세로 세운다. 그렇지만 한 번도 아랫배를 쓰며 위로 길어져 본 적이 없던 나는 단지 허리힘으로만 세우려고 과도하게 힘을 쓰는 것이다.


앞뒤로 쓰는 게 아니라 위로!


그래서 필라테스를 하면 허리의 힘을 많이 가져다 쓴다. 원래 그렇게 쓰는 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좀 역할을 분담해줘야 할 때다. 갈비뼈가 앞으로 나오지 않게 잘 닫는다. 그 상태에서 하복부에 힘을 딱 주고 위로 커진다. 공중부양한다는 생각으로, 진짜로 허벅지 뒤쪽이 살짝 들린다 생각하고 위로! 위로! 그러면 허리에 집중되었던 압박이 자연스레 분산된다. 평소 10시간을 앉아 있을 때는 과도한 힘으로 긴장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중력 방향과 대응한다는 느낌정도만 가진다. 등은 의자에 편하게 다 기대고, 앉은키가 찌그러지지 않고 커지도록.


필라테스 수업은 내가 수십 년 동안 반복해 온 자세와 습관들까지도 교정하는 것과 같다. 당연히 출산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소리만 들으면 이건 뭐 거의 '산고'다.


항상 곡소리 나는 수업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평소에도 자세를 연습하다 보면 마침내 평온해지지 않을까? 구름 뒤에 있는 태양을 볼 수 있을 때까지! 평소에도 의식적으로 발바닥을 딛는 힘을 느끼며, 아랫배가 점점 쓰이고 그 뱃심으로 발 안쪽을 꽉 누르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구성원들이 적절히 제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 탱자탱자 놀고 있거나 혹은 과업 하는 이가 없도록.



필라테스 지도자 과정을 들으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것들이 아주 많다. 그중 한 가지는 바로 '호흡근육'인데 이는 자세를 유지하는 근육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즉, 많은 호흡근들은 자세를 정렬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역도 당연히 성립한다. (둘 중 한 가지가 좋아지면, 나머지 한 가지는 자동으로 좋아진다.)


· 자세가 좋아지면, 호흡도 좋아진다.

· 호흡이 좋아지면, 자세가 좋아진다.


지금 당장 확인할 수도 있다. 거북목처럼 목을 앞으로 쭈욱 빼고, 어깨를 라운드 숄더처럼 말고, 허리를 한껏 구부린 채로 호흡을 해보면 호흡이 짧고 급해진다. 반면에 목 어깨 긴장을 풀고, 가슴을 펴고 자세를 조금만 바르게 정돈해도 호흡이 훨씬 길어지고 쉬워진다.


호흡을 올바르게 하면 전신의 근육들이 실제적으로 작용하여 정상적인 자세를 만들 수 있다.

- Joseph Hubertus Pilates


실제로 나는 필라테스를 시작하기 전 가끔씩 호흡이 잘 되지 않았다. 들숨이 시원하게 잘 안 돼서 항상 답답한 느낌을 받았다. 숨이 짧았다. 어느 순간! 필라테스를 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호흡은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조금은 자세가 좋아져 자연스럽게 호흡도 괜찮아졌던 것이다.


현재는 평소 호흡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제는 자세유지근들의 힘을 키워줄 때이다. 그렇게 열심히 필라테스를 해도, 자세유지근에 효율적으로 힘이 안 간 원인을 또 발견했다. 바로 나의 호흡에 있었는데..! 정말 미세하게 바람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곳을 발견했다. 여기서 이것까지 적으면 너무 길어져 다음번에 가져와보도록 하겠다.


푸바오일 때 vs 사람일 때

바른 자세만 잘 유지해도 근육의 힘, 바른 정렬은 물론이거니와 옷태도 달라 보인다. 곰같이 듬직한 연인을 바랄 수 있어도 내가 곰이 될 필요는 없지 않나. 이제 그만 푸바오를 놓아줘..! 제에-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