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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Aug 24. 2024

신비한 수_불평등 조약

 대가 없는 일

상큼한 열기에 묻혀 덜 복잡한 에너지를 곁에 둔 토론에서 수애는 진실이 거짓이 될 수도 있을 세상을 언급하며 가능한 천천히 자작시를 낭송했다. 반짝이는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그곳엔 상처가 되어 이미 부서진 그들의 내면이 있었다.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 수애는 마침내 그곳에 닿았다.


->지난 글 이어서



수애가 수를 처음 접했을 때, 실수의 세상은 인류가 움직이고 확장해 나가는 가운데 온갖 기억으로 조작된 세계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 조작은 긍정적으로 삶을 바꿀 수도 있으리라 믿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소명은 욕구로 점점 확장되었고 어느 날 수애의 내면을 가득 채웠다.


수애는 어느덧 수의 세상을 넘어서 세대가 전환된 그곳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수 자연수를 만났다. 친구들에게 수의 세상을 소개하며 자신에게 닿았던 수의 처음을 떠올린다. 셀 수 있는 수, 자연수를 시작으로 0, 자연수에 음수(-) 기호를 붙여서 만든 음의 정수를 통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응했으며 이후 자리하고 있는 좌표까지 비교하게 되었다. 먹이사슬의 얽힘으로 관계 맺기를 지역 사회로 옮겼고 대응 영역을 정수로 확장시켰다. 그렇게 확장한 정수에 분수를 합쳐서 유리수로 범위를 좀 더 넓혀나간다. 광장 어느 곳에 자리한 유리수를 수직선에 옮겨 대응시켰을 때 '수'사이의 간격이 이전보다 조밀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리수 사이사이에 수직선을 완전히 매울 수 없는 영역의 수가 숨어있다. 수애는 자신이 숨 쉬고 쉬어가고 움직이고 의식하는 그곳이 유리수의 범위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었던 바로 무리수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리수를 정의하면 순환하지 않은 무한 소수를 말한다. 무리수까지 수직선에 옮겨 하나씩 대응했을 때 비로소 수직선을 완벽하게 채워나갈 수 있다. 가끔 수애의 목표는 수직선은 좀 더 조밀하게 채우기, 점점 더 조밀하게... 물론, 완전히 채워 나가는 건 이론만큼 쉽지 않다. 영역을 확장시켜 나갈 때도 잊지 말아야 할 수체계에서의 규칙이 있다. 실수 범위까지는 하는 '수'에 들어 있기에 현실에 존재하는 기본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우리 현실에서 지켜야 할 법과 규범처럼. 그래서 유리수와 무리수는 완전히 다른 색깔을 가졌지만 실수 세계의 규칙을 함께 따른다. 수학 세상에서의 공리는 우리나라 국민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헌법을 지켜야 하는 것과 같다. 수애가 오늘 친구들과 나눠야 할 논제는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지켜야 할 약속과 '대가 없는 일'관해서이다. 지금의 친구들이 아닌 수애 자신에게 묻고 싶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인지도.


대가 없는 일에 대해 떠올리며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모순을 생각했다. 삶의 모순. 대가 없는 일은 없다 하고 단정 짓기도 하나 대가를 바라는 일에 대해서 또 그 대가라는 건 물리적 보상뿐만 아니라 긍정이나 부정의 결과로 인간을 위협하고 따르기도 한다는 것.


수의 세상에서 지켜야 할 약속은 자신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범위를 확장해 나가는 곳에서의 규칙과 지켜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것과 같다.  복잡해진 관계를 유지하려면 우리에겐 저마다 지키고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건 바로 수애가 지키기로 한 다짐이었다. 물론 그 선택은 각자의 몫이며 강제성은 없으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않기당부한다. 세상에 대가 없는 일은 없기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수 허수가 등장하며 실수를 벗어난 수를 어떻게 묶고 정리해야 할지 규칙과 범위가 필요했으리라. "허수의 세상에 불평등한 조약이 생겼어. 실수의 세계에서는 평등과 불평등이 비록 가려진 공정함처럼 안정감이 있었다면 세계가 전환된 허수의 세상에는 아직 정하지 못한 불평등 조약이 몇 가지 생겼어." 수애는 세계를 흔들어 놓았던 허수의 세상으로 자신의 좌표를 옮겨본다. 닿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곳에서 자신의 좌표를 찾아보니 그곳에도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생각하는 수체계에서의 관계와 의미를 수학 토론에서 퐁당 친구들과 함께 나눠보리라 질문을 던졌다.


친구들의 강력한 눈빛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수애를 향해 다그쳐 묻고 있었다. 


"대가 없는 일이 존재할까요?"


대가 없이 주어지는 건 없다고.


아직 강한 햇빛과 가끔 눈앞에서 사라지는 습도 때문일까, 수애는 여전히 무겁게 느껴졌다. 어디에서도 하지 못한 허수 세상에서의 불평등한 이야기를 수의 세상으로 옮겨 진리가 진실이 되기도 거짓이 되기도 하는 현실을 고민하고 나누기로 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지지 않은 허수 세상에서의 규칙이야말로 가장 평등한 조약일지도 모른다라는 의구심이 일었다.


여러분이 처음으로 만난 수는 자연수였겠지. 물론, 정수이나 자연수가 아닌 0을 먼저 접한 친구도 있으리라 생각해. 지금 여러분이 쓰고 있고 공부하는 그 수가 자연수였는지도 모르고 자연수를 보고 생각하고 거지. 물론 셀 수 있는 수라서 모든 수가 셀 수 있을 줄 알았겠지. 시작은 연필 한 자루, 공책 한 권에서 1의 개념을 알게 된 거지. 그렇지? 1의 개념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을 거고. 그걸 셀 수 있는 단위로 옮겼을 때 마치 눈에 보이는 처럼 여겼. 그럼, 수의 범위를 포함관계로 나타내 볼까. 여기서 약속이라는 것에 다시 집중해 보면 보이지 않은 어떤 것들을 존재하는 가치의 단위로 만들어 주는 것이 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단다. 앞서 언급한 대가 없는 일이란 수로 환산해서 생각한다면 성과라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겠지. 0,-1,-2... 이란 대가라는 관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수가 성과로 이어지니 기준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그것이 대가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상, 허수의 세상에서의 약속은 어떨까? 실수의 세상에서의 약속이 효력을 잃게 되는 거. 전제가 다른 두 세상도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앞서 언급한 대로 허수 세상에서의 불평등 조약이 어쩌면 가장 평등한 조약일지도 모르는 것처럼.


친구들이 경험한 세상과 수의 세상에서의 약속이 현실로 연계되어 강력하게 내 의지를 꺾는 부분이 있다면 들려줄 수 있을까?



수애가 이야기를 끝내자 아이들의 모습은 뒤섞여 있다. 멍해진 눈으로 수애를 쳐다보는 규선,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숙이는 향기, 눈을 더 반짝 반짝이는 윤이, 다소 집중력이 떨어졌으나 교실을 움직이며 뭔가를 찾고 있는 현중, 한결... 아이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과 노력을 알리고 있었다. 수애는 아이들 모습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보다 더 깊이 빠진 시선을 건져냈다. 그녀수직선에 대응할 수도, 크기 비교도 할 수 없는 허수의 세상에 존재하는 조약이 비록 불평등이라 하나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가장 평등한 조약이 되기도 한 그런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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