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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Nov 03. 2023

이기적인 동침

서로를 위한 배려의 시작은 무엇일까

새벽 430분. 동상이몽으로 잠자리에 누워있는 남녀가 있다. 그의 감정과 그녀의 감성의 합의점은 결국 찾을 수  없었다. 단지 그들 각자가 내놓은 결론이 있을 뿐이다. 여자는 정자세로 누워 누군가 몸을 잡고 있는 것처럼 인위적인 몸짓을 하고 있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바로 불편하게 누워 있는 남자에게 시선이 간다. 그는 1분도 안되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몸을 꿈틀다. 리듬에 적응하기도 힘들 만큼 반복적인 몸놀림은 계속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나름의 배려인지 조용히 숨소리를 죽이며 생각에 빠졌다. 사실, 그 시각 남편은 아직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


#수애의 시선

 새벽 공기가  J와 나의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시키지 못해 조금 불안하다. 심장이 심하게 요동친다. 옆에서 잠든 거처럼 보였던 J의 숨소리만으로도 잠을 자는지 아니면 그 과정에 있는지 잘 안다. 긴 결혼 생활에서 변화는 우리 두 사람의 기대만큼 컸던 것은 아닌지 모른다. J는 분명히 변화되었다. 그가 변한 만큼 나도 변했다. 변화 후 J모습이 긍정적으로 다가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도 그의 단조로운 숨소리에  심장은 요동친다. 마치 큰일이 일어나기 전의 전야제처럼.


사실, 늦은 귀가와 그 시각 배려 없는 움직임과 반경을 따라 움직이던 J의 뻔뻔함에 잠이 깬 지 오래되었다. 자유를 꿈꾸며 J와 내가 오후 늦게 마신 커피를 탓하며 핑계를 댈 뿐이다. 분명 J는 늦은 시각까지 잠들지 못했다. 그의 자세가 불편해 보인다. 자는 일정하게 같은 자세로 누워있는  모습에서도 불안함이 영역하다. 어느 날부터 조용했던 숨소리가 요란한 코골이로 변해야 옆에서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존재가 느껴져 때론 감사했다. J에게는 건망증의 문제뿐만 아니라 몸에도 변화가 있었다. J에게 느끼는 변화다. 그의 몸은 에너지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자존심은 물리적 나이보다 훨씬 강하고 꼿꼿했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수용하기에 그는 노화를, 겪는 자신을 인정했. 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기에는 이미 선을 넘어버렸다.


# J의 시선

정적을 깨고 마침내 벌떡 일어난다. 무엇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게 한 걸까. 오래전 그날이 트라우마가 되어 불편을 뛰어넘고 불안한 기운을 몰고 왔다. 새벽의 정적을 깨는 태도는 최소한의 예의도 지킬 줄 몰랐다. 의 분위기는 잠을 자기 힘들 만큼  뭔가 불편하거나 불만이 있는 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새벽은 공허함이 공기와 함께 우리를 기다리다 숨어있던 좌표 곳곳에 자리매김을 한다. 간간이 들리는 숨소리는 새벽의 정막을 좀 더 높이 쌓았다. 수애의 숨소리도 한몫한다. 그녀의 규칙적인 심박수는 나를 다른 영역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경계를 더욱 단단히 해주었다.


표면으로 드러난 의 사랑에는 "서로의 아픔은 나눠야지."라고 습관처럼 뱉었다. 그 속의 숨은 의미를 "자신의 아픔은 나누고 상대의 아픔은 배려할 줄 모르는 거 같아요." 라며 수애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공허한 새벽 신음과 내가 뱉어내는 소리는 모두 그 새벽을 깨어버릴 만큼 충격라고 했다. 의 사랑은 나이와는 비례하지 않는다. 다른 색깔과 모양의 그 사랑은 어린아이의 사랑에 가깝다. 지칠 줄 모르고 양보가 없다. 양보하기 싫다.


#수애의 시선

많이 힘들었던 걸까. 맘대로 되지 않은 내 몸이 낯설기만 하다. 어느 밤공기를 싸늘히 만들었던 J의 마음과 자신만을 향한 배려심이 나를 아프게 한 적이 있었다. 이후 그 에너지와 분위기는 트라우마로 한 번씩 나를 쫓아다닌다. 그런 밤 그런 새벽은 여러 번 나를 괴롭혀 왔다.


오늘 J는 편안한 숨으로 잠을 청하다 불편한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다리가 심하게 아프다며 한밤의 배경 음악처럼 연신 신음을 뱉어낸다. 그러면서도 결국에는 나를 사랑한다고 호소했다.




수애가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을 꿈꿨던 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아주 어릴 적 삼 남매가 함께 방을 썼던 그 순간, 이후 20대에 언니가 결혼하기 이전까지 언니와  같은 공간을 쓰며 공유했던 많은 긍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방을 갖기를 원했다. 결혼 전 그녀의 가장 큰 욕구였다. 그때부터 경제적 독립을 꿈꾸었던 거 같다. 강렬하게 원했던 그 시간의 보상은 아주 짧은 찰나 달콤하게  찾아왔다. 이후 온 힘을 다해 벗어나려고 했던 동거를 다시 시작했다. 그녀가 선택한 남들보다 좀 이른 결혼으로.


수애와 J의 거리는 딱 그만큼일까. 지켜야 하는 그들 사이의 예의, 사랑의 거리는 존중과 배려로 시작된다. 그 기준이 정해진 것은 아니겠지만. 결혼이라는 계약이나 문서로 맺어진 약속 외에 둘은 깊이 사랑했었다. 물론 열정을 지참했던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었다. 유효기간 이후 사랑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거리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존중과 배려. 거리는 그 둘을 지켜주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제 수애는 J에게 제안하려고 한다. 그것이 둘 사이의 사랑을 지켜주는 길이기에.


"각자 방을 따로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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