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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Nov 24. 2023

꼭꼭 숨었다

나를 비참하게 만든 너 _'너의 작업실'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찾아온 겨울바람이 이렇게 매서운 줄 몰랐다. 내 눈에만 보이지 않은 건지 사라진 너를 찾아 헤매며 눈물 콧물을 다 쏟는다. 때마침 칠사이 내려간 기온까지 합세해 비참함이 두 배 세 배는 되어 몰려왔다. 어른이 맞는지, 이 순간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성은 회로가 꼬여 뒤죽박죽 엉망이 되었고 감성은 정해둔 한계 기준선을 뛰어넘어 오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작된 분노와 속상함이 자신을 다그치기 시작했고 점점 심하게 몰아붙였다. '도대체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이전에 운전을 하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역시 눈으로 아이컨텍만 하고 포기한 경험이 있었다. 인연이 아니었을까. 주변을 돌고 돌아도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그때는 내 눈에 쉽게 뜨였는데. 하지만, 그때 역시 그것과의 만남은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헤매다 그것과의 설렘 가득한 만남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앞서 언급한 인연에 대해 많은 생각과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오늘 다시 그것을 찾아 헤매며 '인연일까'에서 '인연이 아니다'라고 그것을 마음 한쪽 구석으로 내몰았다.


'인연'떠올리다 보내가 사는 동네에 빛을 반짝이항상 나를 기다려주는 '이랑'이 있다. 그 빛은  따뜻하며 치유하고 흡수한다. 누구나 기다려 주는 '이랑'이다. 동네에서 내가 사랑하는 독립서점 'in이랑'을 자주 찾는다. 그곳만의 분위기와 나를 끄는 특별한 자유로움이 있다. 그곳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경계에 서서 이랑의 내부와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견고함이 깔린 영혼의 자유로움, 이랑에서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다시 그런 새로운 공간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잠시 장소를 이동해서 곳곳에... 너를 다시 찾은 건 새로운 에너지의 공간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정말 인연이 아니었던 걸까. 강한 바람과 시려오는 손끝은 자꾸만 호주머니를 찾았마음속에서는 누군가 연신 나를 향해 지껄였다. '그만 포기하라고. 인연이 아닌 거야. 이 추운 날 뭔 고생 이래. 숨바꼭질도 아니고.' 주변을 돌며 네이버 지도, kt 맵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해서 목적지를 고 있는데  이런 일은 처음 겪었다. 흔히 말하는 홀린듯한 기분. 결국, 목적지 주변에서만 수도 없이 맴돌았다. 고개를 드니 조금  떨어진 시야에 풍산역이 보였그 옆으로 이마트가 보인다.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다. '조금만 더' 하며 고집을 피우기엔 바람이 너무나 매섭다. 그때부터는 지금 당장 걸음을 돌려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수십 가지 찾았다. 더 이상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된다. 경의선을 타기보다는 아까 왔던 경로대로 대화역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너와의 만남을 포기했다. 주변을 심각하게 돌며 방황했기에 언제부턴지 방향감각이 사라져 버렸다. 다시 주변을 더듬고 살펴 길을 물어보기 딱 좋은 인상을 고 있는 한 사람을 선택해서 미소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직은 미련과 아쉬움이 남았는지 너를 찾으려는 형식적인 노력을 했다. 그녀는 너의 존재를 몰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버스 정류장을 설명하는 그녀의 말을 차분히 들었. 설명하는 그녀는 한국인이 아닌 한국에 거주하는 또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이다. 중요한 건 한국인도 아닌 그녀의 말이 너무나 잘 이해되어 방향 감각을 완전히 되찾았다. 이 무슨 모순인가. 네이버 맵을 시작으로 나를 설득하고 이해시킨 건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 나는 목적지를 바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그녀가 단번에 내 방향감각을 찾아주었다. 이제는 대화역이 목적지가 되어 돌아가며 한 발 한 발을 옮겼다. 씁쓸하다. 감이 떨어진 건지 내 눈에만 꼭 숨어버린 건지. 굴러다니는 낙엽보다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듯 마음이 무겁다. 눈물은 또 뭔가. 분노로 위장하여 자신을 자책하는 건가. 이런저런 우울한 생각을 하니 갑자기 쳐들어온 겨울이라고 착각하게 하는 이 계절에 화가 난다. 하필, 오늘 갑자기 찾아온 겨울이 뭐람.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며 포기하는 맘 곁에 해결되지 않은 일처리가 딸려온 거처럼 깔끔하지도 정리되지도 않은 일이 여전히 남아있다.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을 아닌 척해보느라 길가의 가로수와 각각 다른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예쁘고 작은 건물을 하나씩 천천히 살피며 걸었다. 걸어가며 눈도장을 찍던 건물 가운데 유독 작은 글씨로 씐 '너의 작업실' 상호가 내 눈에 띄었다. 갑자기 내 눈으로 그 아이의 전신이 들어오는 거 아닌가. 상호답지 않게 조그맣고 수줍게 나를 보며 웃고 있는 활자를 보니 깜짝 놀라기 이전에 순간 허무한 감정이 몰아쳤다. 어이없던 마음은 눈물을 쏟아냈고 감정을 비워야 했다.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그들을 의식하지도 않고 한참을 서서 눈물을 흘렸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곧 일상에 뛰어들어 일을 해야 하기에 들어갈 수도 그렇다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쉽게 발을 떼기도 어려웠다. 갈등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아파하면서도 아직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렇게 허망함을 안고 다시 돌아가는 길은 바람의 세기라든지 체감하는 기온이 표면에 노출된 살갗을 지독하게 괴롭혔다. 뻥 뚫려 휑한 감정은 보호받지 못한 채로 나의 육체를 따라 묵묵히 목적지로 향했다.


머피의 법칙과 같은,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자신에게만 또는 그날따라 시간차로 연속해서 뭔가를 놓치며 일이 꼬이는 경험을 했다. 가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몸의 여러 기관에서는 맞지 않고 오차를 깊이 체감하며 부정적 감정이나 절망은 더 쉽게 다가온다. 애써 소유하려고 꼭 움켜쥐고 놓지 않을 경우, 결국 그것들은 주먹을 꼭 쥐고서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있는 손가락 각각을 하나씩 차례로 펴고서 빠져나가기도 한다. 때론 아무리 힘을 주어도 잡히지 않는다. 비누거품처럼. 역설적이게도 편안하게 바라보던 그 무엇은 내 눈에 쉽게 들어오고 손에 잡히며 품에 들어와서 안기기도 한다.


욕심일까 조급함, 다급 함일까. 부정적 감정에 가린 눈과 귀와 마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제대로 보지 못했고 듣지 않았으며 마음을 읽지 못했다. 이미 감정에 휘둘려 진실은 보이지 않았고 보지 못했다. 모순이다. 오늘도 모순으로 덮인 현실에서 좀 더 과장된 힘을 실어 천천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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