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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Dec 01. 2023

나를 읽고 쓴다

해본 적 없었던 나를 말한다_ 그림 by규림

가을이 흔적을 남기고 간 겨울의 한 자락, 한 귀퉁이에 메시지가 남아 있다. 급격히 기온이 떨어지고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이라는 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까 조바심이 . 단지 바닥을 구르는 낙엽만이 얼마 전까지 이 계절을 가을과 함께 나눴노라며 가을의 아쉬움을 책임감 있게 전한다. 그들의 책임을 존중하며 더 맑고 높아진 하늘을 염탐하듯 천천히 살핀다. 사랑의 감정을 스스로 끌어올리듯 바라보던 하늘이 얼굴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돌린다.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며 입을 가린 하늘을 향해 집요하게 묻고 또 묻는다. 하늘은 스스로 자신을 노래한 적이 있었던가. 타자가 읽어 주고 낭송하고 아름다움을 그려준 거 외에 나를 읽고 말한 적이 있었을까. 고사 직전의 겨울나무는 자신을 말하고 있었다. 제발 나를 좀 봐달라고. 이제 곧 겨울잠, 동면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해마다 겨울이면 현실에 직면한다며 이 시기 생물들의 흐름을 놓치곤 했다. 그것들만큼 나도 추위를 많이 탄다. 자연 섭리에서 최선이란 게 있을까. 인간이 만들어 준 자리며 그 자리에서의 책임을 자연은 의무처럼 지켜왔다. 절대 안 되겠다는 변곡의 시점부터 그것들에게 방어기제가 자연적으로 발휘되어 동면이나 숨김으로 자신들을 표현하고 드러냈다. 외형으로 벌써 생명을 다한 듯 겨울나무의 생명이라는 건 고작 가을 낙엽이 말라서 고사 상태가 되어버린 것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추앙하는 건 태도이며 책임이다. 그것은 단지 자유로움으로 감추어져 있 이다.


잠시 뛰어든 '허수'의 세상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허수'에게 올해 마지막을 거센 바람과 영하의 날씨가 다그치듯 묻는다.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노을은 멈칫한다. 노을은 자신을 말하지 않았는가. 노을은 여전히 자신을 읽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사라진 뒤로 얼마만큼 아픔과 사랑이 다채롭게 남아있는지 몰랐다. 온통 붉은색으로 쏟아낸 자신의 잔여감정과 마음을.


얼마 전 주변 공원을 돌며 그곳을 별천지로 만들었던 단풍이 마지막 책임을 다하며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는 걸 보았다. 몇 바퀴를 돌며 축제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려는 별천지의 단풍을 오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과정에서 소임을 다한 마른 나뭇잎은 바스락 소리와 시각으로 나에게 좀 더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주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더 적극적으로 쓰고 있었다. 하늘은 또 어떤가. 높디높은 고도로 가을임을 세상에 공표하며 우리의 마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고운 색으로 그려주지 않았던가. 주변 자연도 나에게 그것들에 대해 속삭였다. 때론 노래로 가끔은 냄새로... 다채로운 색을 써가며 자신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나는 과연 나를 읽고 쓴 적이 있었을까. 하루 온종일 일에 파묻혀 공부방을 벗어나지 못하던 어느 날 경계밖으로 비친 바깥세상이 거세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루 걸음이 백 보도되지 않은 날이었다. 전환으로 동네 공원을 돌다 독립 서점에 들러 책을 읽고 와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선 세상에서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없었다. 공원을 돌며 공기를 긴 호흡으로 들이마셨다. 요즘 나를 잃어버렸나. 잠시 외출한 걸까? 사실은, 외면하고 있었다. 집을 나서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바로 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 속에 비친 낯선 사람의 정체를, 그때부터 계속해서 나를 쫓고 있었던 그녀를 느끼고 있었다. 이렇듯 나에겐 내가 없었다. 누군가 낯선 모습으로 나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자신을 괴롭혔다. 생각은 발걸음을 더 복잡하게 했고 처음 계획보다 공원을 더 오랜 시간 돌고 있었다. 돌고 돌다 보면 나를 떠났거나 길을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울한 이런저런 생각은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지 못하게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 순간 대부분 고민이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과 서점으로 바로 가서 안정을 취하고 싶다는 양가감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맑은 하늘을 통해, 이미 고사된 나무를 통해 여기저기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통해 짙은 겨울 공기와 호흡을 통해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노력으로 "나는 누구인가." 물으며 나를 읽고 쓰고 있지 않았는가.


이젠 안정이 필요하다. 손끝이 아렸다. 발끝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무작정 방향을 바꿔 이랑서점으로 향했다. 이랑지기님이 창가 경계에서 손을 흔든다. 아마도 표정은 평소처럼 미소 짓고 있겠지. 이곳에 와서 따뜻하게 몸을 녹이며 자신을 천천히 찾아도 되는데 너무 오래 헤매다 온건 아닙니까. 새침한 듯 말하는 입꼬리 끝에 미소가 남아있다. 아메리카노를 고집했던 이유가 갑자기 사라졌다. 카페라테를 시키며 명백한 이유대신 변명을 하고 싶었다. 깔끔함 대신 포근하고 따뜻함에 위로를 받고 싶었나 보다. 창가가 보이는 경쟁이 치열한 그 자리가 아니라도 이랑에서는 경계 너머 세상과 남다른 소통이 된다. 이곳에서 다시 잃어버린 나를 찾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으며 다시 상념에 빠졌다.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오만함은 어디에서 온 걸까. 타자를 말하고 주변을 노래할 때도 몰랐다. 나 이외의 것들에 공감하며 감정을 분리하지 못할 때는 더 깊은 나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만든 나, 만들어진 나. 결국 나는 '척'에 익숙해 있었다. 수많은 나의 자리는 나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합리화하며 '척'하며 아름답게 나를 그려내고 있었다. 나를 찾는 과정을 즐기기를 바랄 뿐이었는데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이것이야말로 모순 중에  모순이다. 데이비드 소로를 아니 그가 살았던 삶의 자세와 태도를 추앙하며 소로처럼 가만히 온전한 '나'로 그 순간에 있고 싶었다. 잘해야 한다는, 책임도 의무도 아닌 그 속에 가만히 나로 머무르기를 바란다. 삶과 주변과 자연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은 그런 나도 괜찮다고 가볍게 어깨를 토닥인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뭘까.


내 안에 사라진 나를 찾는다. 길을 잃은 나를 찾는다. 해본 적 없었던 나를 말한다. 이제야 온전히 나로 이곳에 앉아서. 내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서 있고 존재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내면은 어떤가. 나는 내가 되고 싶다. 그냥 나로 살아가고 그런 나를 읽고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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