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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Jan 05. 2024

《나의 괴짜 친구에게》_ 행복과 슬픔의 모순

행복이 슬픔으로 닿다

토론 이후 줄곧 유전자와 개체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난 유전자의 지휘로 철저하게 움직이는 보잘것없는 개체일 뿐이다. 토론 후에 인간과 그들이 속한 삶, 그리고 중심에 있는 자신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스스로 세뇌하듯 반복적으로 말해왔다. 나와 남편, 나와 주변, 나의 또 다른 자아인 딸... 이제는 충분히 나를 이해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해를 마무리하며 삶의 허무나 의미 부여를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허무와 고독을 잡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연말이면 허무가 깊어져 울이 주변을 맴돌며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슬픔이 울적함으로 향하는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 이곳 독립 서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책을 뒤적이고 있다.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고 감정이 연속되던 시간... 잠깐.. 그림책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자세를 고쳐 서서 고  한참을 보았다.  사이 책에 묻혀있던 작가의 감정을 꺼내 읽었는지, 스토리에  깊이 집중했는지, 그림에서 의식 어딘가에 숨겨진 슬픔을 찾았는지 삶의 허와 실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다시 처음부터 책을 뒤적거리다 급기야 눈물을 흘렸다. 한 번 시작된 눈물은 출 줄 몰랐다. 볼을 타고 하염없이 내리던 눈물이 피부를 따갑게 파고들었다.


《나의 괴짜 친구에게》_고정순


너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면 아버지가 만들어 준 키 작은 접이식 의자에만 앉았어.

사람들은 그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았지.

낡고 삐걱거리는 보잘것없는 의자에만 앉던 네가 괴짜처럼 보였나 봐.


나는 그 작은 의자를 섬세한 손길로 매만지던 네 모습을 잊을 수 없어.


(... 중략...)


환호와 박수 소리 대신 침묵과 고요 속에서 피아노의 노래를 듣고 싶었던 너.

모든 생명에게 저마다의 소리가 있다고 믿었던 너답게 말이야.


네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순간에도 나는 너와 함께했지.

지금도 나는 네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이 그리워.


나의 유일한 선율이 되어 준 나의 괴짜 친구에게...


너의 의자가.


《나의 괴짜 친구에게》 일부 발췌



나의 결핍일까. 각별한 사이였고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나에게 특별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가끔 사로잡힌다. 의자와 괴짜 친구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함으로 서로에게 각별한 의미가 되었다.


작가의 마음을 의자에게 이입해 단 하나의 하나뿐인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가 진심으로 말해 주었다. 삶의 변곡점을 맞닥뜨린 우리에게 그 길을 선택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가끔 그 길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다. 사실, 시간이 지난 그때 그 지점에서 다시 길을 선택해야 한다면 조금은 가볍게, 좀 더 쉽게 길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좀 더 용기 내서 닿으라고. 그림책에서 긴 시간 헤매던 답을 찾은 거처럼 그 순간 설렘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나는 뭔가에 집중하면 주변을 잘 보지 못한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세상과 척을 지기도 고 관습에 지나치게 익숙한 그들을 경멸하기도 했다. 그렇게 주변인들과 방향이 다른 길을 걸었다. 같은 방향으로 향하던 내가 보이지만 그 끝에는 내가 없었다. 나의 존재가 사라졌다. 가끔 모두가 움직일 때 혼자 멍하니 서 있기도 고 대부분 소속된 집단에 어울리지 못하고 튕겨져 나와 있기도 다. 내가 사랑하는 책, 노트, 필기구 등 언제라도 나와 함께 했던 여러 가지를 떠올리며 나 역시 그들에게 애정과 사랑 그득한 친구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오늘 밤은 눈물을 대신해 슬픔에 취한 나를 안도하게 다. 그것들의 기다림이 하염없이 애잔하다. 소중한 책 노트 필기구에 내 호흡이 있으며 숨결이 느껴진다. 가끔 깊고 깊은 천둥소리처럼, 때로는 맥이 약한 나의 호흡처럼.


혼자 간직하고 있는 친애하는 나의 의자가 항상 나를 지켜주리라는 믿음이 오늘은 조금 덜 외롭게 한다. 수도 없는 삶의 모순 중 너무나 행복해서 그것이 슬픔의 감정으로 귀결되었다는 것만큼 나를 혼란스럽게 한 게 어디 또 있으랴. 그리고 오롯이 행복하다는 감정이 다시 슬픔까지 닿게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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