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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Dec 29. 2023

길냥이들의 집사

상대적 결핍에서 사랑을 찾다


일요일에 만난 그녀

캣맘일까. 호호 아줌마일지도. 에너지 바는 아닐까.

포근하고 따뜻한 베풂을 마음에 담아 귀갓길이 춥지 않았다. 겨울바람에 몸을 기대어 움직이는 은빛 볼이 반짝인다. 여러 빛이 모인 그곳을 남겨두고 어둠이 깔린 도로 위에 서있다. 잠시 서서 뒤를 돌아보며 아직 작은 불빛이 반짝이는 그곳으로 환상 여행을 다녀온 거처럼 눈가가 촉촉하다. 너무나 예쁘고 반짝이는 그 아이들. 좀처럼 쉽게 다가오지도 좀 더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그 아이들. 좀 전에 만났던 사람을 경계하던 길 고양이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내가 꿈꿔왔던 크리스마스의 기대와 희망. 슬픈 캐럴이라도 듣고 싶었다. 꿈틀 되는 희망이 되살아 날 거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과는 다른 결의 사랑이 있었다. 어쩌면 같은 것인지도. 그녀의 마음이 내 혀끝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채워준 거처럼 길냥이들의 경계심에도 닿을 수 있기를. 어느 순간 그 아이들이 경계심을 허무는 것을 보았다.


일요일. 눈 가득 김서린 찬 기운을 가지고서 동네 공원을 딱 두 바퀴만 돌고 돌아가야지 했었다. 그러기엔 내 눈을 사로잡는 것들이 곳곳에 있었다.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날이었다. '왜 겨울을 나러 따뜻한 곳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이 추위를 견딜 수 있을까.' 염려가 커지자 의도적으로 과감히 눈을 질끈 감고 잠시 후 가야 할 목적지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변곡점에서 그곳까지. 얼마나 걸었을까 고독이 너무 깊어 눈물이 흐른다. 다 그런 거라고 외로움이 위로한다. 다 그런 고독을 감당한단다. 하는 말로 위로하고 싶었다. 단단히 맘먹자고 내면에 장착된 슬픔이 다시 다독인다. 너무나 깊은 고독이 만든 눈물인지 매서운 추위에 콧물과 함께 의도치 않게 그냥 흘러나온 눈물인지.


멀리 온기가 있는 그곳에서 작은  여러 개의 볼과 오르골 소리가 반갑다고 손짓한다. 순간 흐르는 눈물이 걱정되었다. 나를 아는 누군가 눈치채고 염려할까 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소매 끝으로 가볍게 닦아내면 그만일까. 그런다고 내면 깊숙이 자리한 고독이 사라질까. 어쨌든 이번 고독은 잠시 묻어두기로 했다. 몸에서 잘 떼어지지 않는다. 떨어지지 않은 고독을 겨우 떼어내고 움직이지 않은 근육을 움직이며 미소를 지어본다. 앞선 인사 연습이 어색하다.


일요일의 그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사실, 얼굴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녀에 대한 정보는 단지 알고 있는 얼굴이라는 것, 오가며 인사를 나누었다는 정도. 인사를 거듭하며 쌓은 신뢰의 에너지는 남아있다. 사람을 대하는 오래된 내 습관이다. 그저 반가웠다. 환하게 웃어주는 그녀의 따뜻함이 장소가 갖는 의미만큼 힘이 된다. 평소답지 않게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우유 거품의 부드러움과 따뜻함 그리고 악마의 맛이 느껴지는 커피를 한꺼번에 느끼고 싶었다. 어쩐지 그래야 아직 내면에서 꿈틀대는 고독이 잠잠 해 질 것 같았다.


길냥이와 마주하다.

다시 창가 경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잠시 고독과 싸우며 눈물을 쏟아냈던 그곳이 걸어온 길 사이사이에 보인다. 바로 앞 시선에 길냥이들이 이곳에서 준비한 물과 사료를 먹으러 오가며 들리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은 사람을 경계하며 보이지 않을 때, 눈에 띄지 않은 순간에 움직였다. 혹시 눈에 띄는 시간이면 한참 동안 경계의 시선으로 응시한다. 나와 맞서기도 했다. 길냥이들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으나 그 아이들의 처세술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그들만의 처세술을. 잠시 물을 먹고 사료를 흡입하는 길냥이의 눈빛을 보았다. 냥이들은 살려는 의지로 이곳에 왔다 갈증을 해소하고 배를 채운 후 다시 위험한 자신의 공간으로 나아간다. 길냥이들의 눈빛에서 나를 보았다. 들킬까 두려워서 아련한 냥이의 눈빛에도 더 다가갈 수 없었다. 마침 그때, 그녀가 나를 다정하게 불렀다. "라떼 나왔습니다!!" '딱 좋다!' 적당히 진한 커피에 우유 거품이 부드럽게 스며있다. '오늘 라떼는 끝까지 마지막 방울까지 마실 수 있겠다.'


일요일의 그녀는 라떼가 맛있다는 인사에 함박웃음으로 화답하고 갑자기 분주해졌다. 길냥이들이 마실 물과 사료 때문이었다. 뜨겁게 여서 내놓은 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얼었고 사료도 꽁꽁! 이것저것 여러 걱정이 그녀를 아주 바삐 움직이게 했다.


일요일의 그녀는 길냥이들의 집사다. 맞춤 바리스타이기도 하다. 타자의 마음을 끌어올리는 에너지 바인지도. 마음을 쓰는 그녀의 사랑이 아름다움으로 전해진다.


어제라는 시간과 그곳이라는 공간에서 그녀는 일요일을 빛나게 했다. 단정하고 정직한 직선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곡선이 함께 어우러진 거처럼 일요일은 너무나 추웠기에 라떼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살갗을 스치는 칼바람이 너무나 매서웠기에 일요일의 그녀가 길냥이에게 쏟은 사랑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른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고독과 치열하게 싸우느라 일요일의 그녀가 존재한 공간에 닿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곡선과 직선이 한데 모였다. 그 둘은 서로 교점을 찾을 수 없는 공간에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알게 되었다. 고독은 대중 속에서 더 깊어지며 사랑은 상대적 결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오늘 나는 일요일의 그녀를 만났다. 직선과 곡선이 한 공간에 모인 거처럼.


#캣맘#일요일의 그녀 #직선 #곡선#길냥이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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