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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Jan 12. 2024

아픔의 색으로 채워진 아름다운 정원

아픔의 기억으로 물든 아름다운 정원

성장의

어린 소년 하나

채운 그 자리

나머지 어른 여럿

집은

모순의 총체


소중한 찰나

희미한 기억

두 개 별의

소멸은

아픔의 잠식

집은 그림자


결국,

해결되지 않은 관계

분사된 상처

흩뿌려진 악의 감정

서슬 퍼런

집은 분노한다


소년만이

성장했고

집은

해체되어 사라졌


과거부터 연결된 환경과 상황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때.

벗어나고 싶다는 일시적 감정이 매일 나를 몰아세웠다. 그때는 짓눌렸던 감정이 가장 앞서 있었다. 상황을 모면하기에만 애썼다. 위기 모면이 가장 우선이었다. 직접 부딪혀 나누고 진심을 전하려고 해 본 적 있었던가. 그렇게 아빠와 나의 관계는 새롭게 시작되었다. 아빠와 딸이 아닌 인간과 인간에서 다시 단절된 관계로, 분리된 감정으로 긴 시간을 지나왔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당신을 대접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삶에서 아빠를 밀어내 버렸다.


아빠는 외부 세상에서 내가 정한 프레임의 세상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빈틈없는 그 주변을 한없이 맴돌다 세상과 단절된 것이다. 어린 영주처럼 촛불 끄는 흉내를 내거나 자유로운 감정 표현이라도 마음껏 하며 나눴어야 하는 걸까. 우리 곁에도 다른 모습으로 단 한 사람의 동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래서 이제는 내가 동구와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동구의 생각은 춤을 추듯 날갯짓한다. 동구의 의식은 주변의 어른들처럼 정체되지 않았다. 상황과 방향을 노래한다. 동구는 날고 날아서 서글픈 마음을 남겼다. 그것은 마침내 책 속 등장인물들을 움직이게 했다. 서로 간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게 하는 것 역시. 작가는 동구를 도와 그들 간의 관계를 위해  영주를 등장시켰다. 관계의 움직임과 희망이 아주 작은 빛으로 시작되는 듯 보였으나 영주가 사라지며 관계는 다시 극단으로 단절된다. 소멸은 그 순간 경악하고 울부짖는다. 울부짖은 후 단절되지만 상처 계속 잔상으로 남아있다. 결국, 누군가를 탓하고 다시 타자의 탓으로 돌리다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우리 가족들은 마치 신호등이 고장 난 네 갈래 길에 각각 서 있는 당황한 사람들처럼, 서로 말을 걸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로 바라만 보게 되었다. 우리의 소통이 엉키지 않도록 요술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는 기다리게 하고, 누군가는 직진하게 하고, 누군가는 좌회전하도록 지도하던 우리의 푸른 신호등은 영원히 잠들어 버렸다. 우리는 신호등 없이는 교차로를 지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어른들의 중심에는 항상 자기 자신만이 있었다. 인간의 삶에서 해결하고 최소한 개선해 나가야 할 건 무엇일까? 삶에서 희망이 없는 할머니의 끝도 없는 자기애, 상황과 환경, 대책과 실천에 직면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회피하는 태도, 강한 듯 똑 부러지면서도 적당히 삶에 순응해 나가는 엄마. 그들 가운데 가장 생각이 많은 동구는 아프다. 마음이 아프고 생각과 의식이 아프다. 동구의 어린 시절은 아픔으로 물들여져 있다. 어쩌그래서 동구의 난독증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난독증은  동구가 바보라는 것을  증명하지만 사실 동구는 오래전부터 마음의 병을 앓았다. 모든 것을 짊어지려는 마음 여리고 말을 잘하지 않은 어린 동구에게 병으로 찾아온 난독증. 집중하지 못하고 안정된 마음을 갖지 못한 동구에게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깊숙한 곳에 숨겨둔 내면을 들킨 듯 가슴이 아팠다.


슬프고 아픈 동구의 아름다운 정원은 과연 무엇으로 꾸며졌을까. 그곳에는 동구가 아름다움을 말하던 곤줄박이가 여전히 태양빛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여러 슬픔, 할머니와 아빠 엄마와 주변에서 해결되지 못한 관계가, 지치고 쓰러질 때도 포근하고 평안히 감싸 줄 수 있는 집, 가정과 그곳에서 다시 보게 된 죽음까지도 그 모든 것이 동구의 정원에는 심어져 있으리라. 그 모든 것을 자신이 가꿔야 한다는 의무였을까. 아픔과 슬픔을 이겨내려고 발돋움하는 꿈을 꾼 건 아닐까. 그토록 좋아했던 박 선생님에게 조차 숨기려 했던 마지막 자존심까지 동구는 자신만의 정원에 감췄으리라.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묵직한 의무가 나를 괴롭힌다. 집이라는 모순의 공간에 대하여, 년 동안 동구는 시간만큼 성장했다. 생각이 많았던 아이는 생각을 정리했고 앞으로의 방향을 나이답지 않게 합리적으로 모색했. 정체된 어른들 사이 힘없이 서 있던  동구만이 성장했다. 집은 모순의 총체였고 아름다운 정원에는 슬픔이 놓여있다.


아픔의 색으로 물든 아름다운 정원이 오늘은 더 애잔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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