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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Jan 20. 2024

카페에서 퍼지는 아우성

아우성과 백색 소음의 공존

도피처가 필요했다. 이 시간 나를 받아 줄, 안아 줄, 내버려 둘 그런 곳. 아무도 묻거나 관심 갖지 않는다. 다른 세계로 전환될 수도 있는 나의 세상을 존중해 줄 그런 곳. 가끔은 무관심이 좋다. 초점 없는 타자들의 눈동자를 쫓아 내 눈은 가끔 허공에 머물러 있다. 그 공간은 세계의 확장처럼 현실보다 솟아있는 이상과 가치가 발바닥을 땅에 붙이며 제대로 된 공부를 하라고 소리친다. 무작정 목적지를 정했고 바삐 움직였다. 그곳이라면 하는 신뢰만으로. 멀리 그곳의 입간판을 보자 몸속 깊숙이 숨어있던 세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콩닥콩닥 나의 생각, 감각과 감정이 되살아 나리라는 기대를 움직이는 걸음에 얹고서 카페 문을 열었다.


도착한 그곳엔 정적 속에서 내가 즐겼던 고독의 잔상도 처절한 외로움을 돕던 잔잔한 음악도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할지 갈등하기 시작했다. 선택의 순간부터 혼란스럽다. 그런데도 나는 뛰쳐나가지 못했다. 그곳의 기억은 여전히 나를 잡아끌었고 미련이라는 티끌만 한 세계의 확장에는 문을 열어두고 있었으므로. 스스로 이전 느낌을 끌어내겠다 다짐하며 카페 전체를 탐색하듯 훑어보았다.


자리를 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평소와는 다른 아우성의 어수선을 피해 나만의 의식을 확장시킬 단출한 자리가 필요했다. 편안함을 피하는 의지처럼 딱딱한  의자와 평소 덜 선호하던 원탁의 테이블을 골랐다. 아메리카노와 스콘으로 곧 예전의 감각을 찾으리라 믿으며 머릿속을 정리할 책을 펼쳤다.


그때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가 조심스럽고 수줍게 들렸다. 고개를 들자 정말 오랜만이지만 익숙한 얼굴이 나를 빤히 내려다보며 빙긋 웃는다. 반가움에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 잠깐 과거 기억이 스쳤다. 꽤 긴 시간이 지났고 시간은 쌓이고 쌓여 먼저 쌓인 지층의 기억이 사라진 거처럼 새로움으로 다시 그 사이를 덧입히고 있었다. 과거 한순간이 그리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사진을 찍어둔 듯 선명하게 지워지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참으로 신비한 경험이다. 그날의 기억 그 무엇이 특별했거나 나에게 각별함으로 남은 것이 있을까? 포근하고 따뜻한 봄날 아지랑이가 올라올 만큼 더위가 가까워진 어느 초 여름 초등학교 앞 공원에서 아이들의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놀이와 먹거리가 있었다. 놀이는 개최자에 의해 다양하게 준비되었고 아이들과 일대 일로 또는 이 대 일로 보호자인 엄마들도 함께했다.


엄마들에게는 수다를 목표로 한 공유와 자녀 교육이라는 목적의 화젯거리가 있었다. 같은 반 같은 나이 아이의 엄마라는 것.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 10년이 지난 지, 축하를 나누고 싶어 과거 그들을 소환하고 싶다면 물리적 시간과 함께 사라진 그녀들의 열정과 사랑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을까. 사실, 내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에는 그것들도 계획되어 있다. 기쁨을 나누며 축하를 하고 받을 수 있기를 그 수단으로 읽고 싶은 책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커피를 마음 가득 제공하며...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쩌면 이 일은 누가 봐도 실현 불가능한 일이기에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아닐까?


순수함을 잃었고 에 좀 더 깊이 들어가 타협하고 때론 순응하며 살고 있는 그녀들, 사실 현실적으로 더 실현불가능한 건 그녀들이 아니라 현실 안에 더 깊이 들어온 아이들 일지도 모른다는 잔상이 남는다. 입시와 현실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던 아이들이라면 그런 이상적 페스티벌은 참여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꿈의 도서관 혹은, 독립서점은 규모가 상당히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그곳에는 나의 괴짜 친구인 책, 노트, 필기구들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고 소통을 위해 나눔을 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독립서점 ㅇㅇㅇ, ㅁㅁㅁ 도서관의 이름으로 이인 일조 또는 삼인 일조의 그들을 초대했고 초대 문구도 정했다. "추억하지 말고 기억하는 한순간이 이어준 다른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책이 연결해 준 세대를 전환하고, 세계의 확장을 이곳에서 펼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여기 카페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그들은 소리로 때로는 울림으로 가끔 침묵으로 아우성친다. 웅성웅성 그들의 아우성은 목적지를 잃었을지 모르나 처음에는 제대로 걷고 있었으리라. 시작은 따뜻함이었고 배려였다. 아우성이 웅성거림으로 이어져 과거 어느 시점의 자유롭고 순수한 아이들과 오버랩이 되어 표정과 소리에 집중되었다. 그 순수함이 미래의 나의 시간, 현재의 목표를 정해주었다.


나는 왜 그들의 아우성과 백색 소음이 공존하는 모순의 이 공간에서 추억이라 착각하는 기억을 꺼내 그 시간에 매몰되어 있는가. 내가 이끄는 실천의 페스티벌을 꿈꾸며 현재를 과거의 기억과 함께 묶어 미래로 전해본다. 전달된 메시지의 흔적을 감추지 않고 세대는 전환되며 세계는 다시 확장된다.




연재시간을 놓쳤다. 금요일인 어제는 시아버님의 두 번째 기일로 오전부터 일과 다음 일정이 꼬리를 물고 대기하고 있어 시작부터 조급했고 점차 복잡해졌다. 아름답게 추모하려는 나의 마음이 조금씩 힘을 잃는 순간이었다. 시간 안에 숨어버린, 감춰진 여러 일이 때론 점이 되어 사라지기도 하고 나눠진 많은 점들이 모여 선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출발 전 어떤 상황에 대한 대처나 태도 문제로 남편과 큰 갈등이 있었다. 물론, 나의 몸부림과 소리는 의미 없는 속삭임이 되어 메아리쳤고 곧 우울해졌다. 시댁으로 가는 길은 관계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으로 이미 대기하고 기다리는 양적인 일과 의미를 찾으려는 의식으로 무겁기만 했다. 상차림부터 일이 많았고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모든 일이 끝나고 귀가할 수 있었다. 가끔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게 뭘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본다. 사실, 하루동안 나를 몰아세웠던 많은 일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다시, 하루를 돌아본다. 가족들의 사랑과 웃음이 에너지가 되어 나를 웃게 했다. 조급했던 마음이 차츰 풀어진다. 그 중심에 계시는 어머님께 감사하는 맘이 가장 크다. 정신없이 설거지를 하며 쌓인 일의 무게보다는 가족 간의 사랑이 보였다. 일을 마무리하면서 가족을 생각하고 사랑을 표현하시는 어머님의 태도를 보며 현명하고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나를 모성의 아픔인지 감동인지 눈물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집에 가려고 정리를 하던 중 얼마 전 결혼한 조카와 형님께서 나눈 대화를 듣게 되었다.  임신 중인 둘째 딸과 형님께서 주고받는 대화를 듣다가 나도 모르는 눈물이 흘렀다. 가족 일에는 평소 몸을 아끼지 않는 조카가 음식쓰레기를 챙기자 형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으니 엄마는 우리 딸이 좋은 것 이쁜 것 깨끗한 것만 많이 봤으면 좋겠구나. 지저분하고 힘든 건 엄마가 할게." 앞으로 우리 아이들도 수없이 많은 경험을 하게 되겠지만 그게 부모의 마음이고 성이 같은 딸, 나의 유전자에 대한 모성,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진한 감동으로 울컥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나의 유전자인 딸아이에게 부모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라고.


묘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버님의 기일이었던 그 시간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던 건 우리의 사랑이 그만큼 성장했기에 가능해진 걸까. 아니면, 생전 아버님께서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나누어 주신 덕분일까. 많이 힘들고 어려웠던 몇 시간 전을 떠올렸다. 모순적이게도 아버님의 기일인 어제는  우리 가족에게는 사라지지 않은 시간, 연결된 직선을 만든 의미 있는 점을 또렷이 찍었고 그은 한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뿌듯해진다. 세대가 전환되어도 사랑이란 수많은 점으로 연결된 직선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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