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비단안개로 둘러싸인 그곳의 중심에서 단 한 발짝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 주춤주춤... 사방은 쭉 둘러보아도 희뿌연 연무로 주변을 이루고 있고 어느 한 곳도 뚫고 나갈 길이 없다. 어디가 시작이며 끝인지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존재하는 듯한 꿈일까 아니면 가상공간에서의 현실일까? 꿈속이라 생각하고 덮어 버리고 싶다. '다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최근 20여 일 동안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순전히 1인칭 시점에서 감각에서 아니, 현실이라고 착각하며 마주한 상황이다. 안타까운 것은 나의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벗어나려는 의지도 없으며 반드시 연무를 거둬 내고 헤쳐 나와야만 한다는 의무감이나 당위성도 없다. 하지만 너무도 또렷한 것은 이 경험은 다음에는 절대로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요즈음 힘없고 병든 마음의소리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에게 찾아온 경험이면 피하지 말고 이젠 제대로 마주 하자는 것이 변화를 겪으면서 내가 찾아내고 경험한 후기이다. 그런 내가 최근에 겪은 이 일은 너무나 특별한 것이지만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안 좋은 몸의 신호처럼 20일 전쯤부터 매일 새벽 일어나는 것을 시작으로 내가 겪고 느끼는 일상의 흐트러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루틴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새벽 기상 또한 무너져 버렸다. 다만 포기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로 지켜내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알람 소리에 쫓겨서도 겨우겨우 수동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눈을 뜨고 겨우 만난 세상은 언제부터인지 연무로 가득하다. 주변이 신비한 세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답답함으로 뭉쳐져 있고 온몸의 세포기관은 더 큰 실질적 아픔을 느끼고 있다.
마음은 여전히 이 모든 것을 외부로부터 비롯된 문제점으로 돌리고자 한다. 몽롱한 나의 정신과 미세먼지가 가득한 환경 탓이 아닐까 그리고 습도가 최고치로 치솟는 동남아 날씨를 점점 쫓고 있는 요즘 한국의 날씨 탓으로 돌리고 싶은지도. 그러기에는 이 현상은 너무나 일관되고 지속적이다. 그렇게 시작된 새벽이니 정신 또한 모호한 느낌에서 하루를 출발하게 된다. 스트레칭을 여러 번 하고 커피를 들이켜고 그 어떤 움직임에서도 사유하는 예전의 내 활발한 사고로는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확신한 순간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온다.
좀 더 맑은 세상과 마주하고자 하는 간절한 맘으로 온몸의 세포에 힘을 준 까닭에서인지 두통과 함께 피곤함까지 동반되어 나른함이 찾아온다.
특별한 경험에서 오는 몸의 변화의 원인을 수학적 귀납법으로 풀어보면 '특별한'이라는 단어에서 보이듯 처음부터 모순적 증명을 하게 된다. 경우의 수는 처음 하나에서 시작해서 모든 경우로 확장시켜야 하며 모든 경우의 수 n은 어떤 경우라도 성립해야만 그 원인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경우 어떠한 n에 대해서도 성립되는 원인과 결과가 나타나는 인과관계의 항등식, 절대부등식이 성립된다.
내가 찾아낸 특별한 경우의 원인과는 다르게 안과를 다녀온 후 의사 선생님이 찾아 준 일반적 원인에서는 절대적으로 성립되는 모든 경우의 n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일상적이고 평소 사소한 생활습관에서 드러나는 상황이므로 대부분 모든 경우에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결국 후자에서 보이는 경우의 수는 특별한 경험과 몸의 변화의 원인이 성립되는 항등식이나 절대부등식이 될 수 있다. 절대부등식은 어떤 경우라도 성립되는 부등식이다. 여러 경우의 수에 따라 변화하거나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이나 상황이 생기더라도 성립된다.
1. 스스로 찾아낸 경우의 수 n가지
시험기간에 고3 학생들을 위한 마지막 에너지를 맘과 몸을 다해 쏟았던 탓일까? 항상 인과적으로 결과와 함께 동반되는 스트레스가 너무나 커서 원인을 그것으로도 돌려본다. 아니면 수학이라는 과목을 버거워하며 쫓아오기 힘든 학생들에게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 균일하지도 제대로 안배되지 못한 에너지를 써왔다. 그 사이 몸은 한계를 드러냈고 조금씩 망가지고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사랑하는 중 2 딸의 최근 근황이 나를 힘들게 했고 감정대로 할 수 없는 나의 뇌세포를 하나하나 건드려서 그 세포들이 새로운 자극 속에 견뎌야 했지만 이제는 한계에 이른 걸까?
몸이 긴장하는 것을 느끼지 않았던가... 그 후에 오는 후유증이겠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눈을 지그시 감고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 지금 순간에도 눈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강한 두통이 줄곧 함께 하고 있다.
요즘 매일 같은 환경에서 시작되는 나의 세상은 자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세상과는 다르고 그 어떤 사람은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경우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만큼 힘들고 특별한 경험이다. 고통의 날들은 연속되었고 그 가운데서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으며 다행스럽게도 시험은 끝났다.
2. 안과 의사 선생님이 찾은 경우의 수 n가지
출근하면서 걱정스러운 맘을 전달했던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시험이 드디어 끝났으니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병원을 가자고 했고 지금 곧 태우러 갈 테니 되도록 빨리 준비를 끝내라고 했다. 간단히 외출 준비를 했고 아파트 입구로 나간다. 그 순간에도 고통스러운 그 현상은 계속 동반되었고 더 심해진듯한 느낌이 이젠 눈을 뜨고 있기도 힘이 들었다. 남편을 만나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일시적이긴 하나 쉼 속에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는 거처럼 그냥 편안하게 호흡을 했다. 남편은 안쓰러워하며 일을 좀 쉬는 게 어떻겠냐고 염려하는 마음을 조용히 전달했다. 사실 잠시 후 병원(안과)에 도착하면 지금의 대화들이 그냥 아무것도 아닌거처럼 이번에 내가 느끼고 체감한 특별한 경험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었다.
두려운 마음과 함께 병원(안과)에 도착했다. 접수를 하고서도 걱정스러운 맘은 계속되었지만 그 맘을 덮고감추며 기다렸다. 나의 차례가 되어 의사 선생님과 만났고 진료를 끝내고 고개를 갸웃하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물어보신다. "혹시 과거에 각막 궤양을 앓았던 경험이 있지요? 다시 재발했고요. 물론 더 심해졌습니다. 엄청 힘드셨을 텐데 괜찮았어요? 수면부족과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안압이 차서 그 지금의 상태가 시작되었으니 약을 드시고 치료 기간에는 되도록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좀 쉬세요." "네....." 알겠다고 답했고 남편은 웃으며 다시 반복한다. "좀 쉬세요! ㅎㅎㅎ" 진료가 끝났고 약을 챙기면서 남편이 몸을 좀 챙기라며 맛난 점심도 사주고 몸과 맘이 많이 상한 나를 위한 위로인지 헤이리 쪽으로 자동차 주행 방향을 변경하며 향과 맛과 분위기가 좋은 곳에서 커피를 사 주겠다고 했다. 남편은 오후의값진 두 시간을 온전히 아내에게 투자했다.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던 중에 눈에 조금씩 변화가 찾아온다. 20일간의 긴 시간 동안 나를 괴롭게 했던 연무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만큼은 남편의 사랑과 맘 씀이 그 어떤 사랑보다 더한 은총으로 나를 돌봐 주었으며 지금 이 순간은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집에 도착해서 약을 먹고 잠시 잠이 들었는데 이후 다시 만난 세상은 요 며칠간 주기적으로 나를 괴롭게 했고 가둬뒀던 비단안개의 세상과는 확연하게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조금은 살 거 같다는 감정과 확연히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답답함이 공존하며 혹여 다시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까 봐 염려가 된다. 감춰진 두려움이 그림자로 함께 따라왔다.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것과 이젠 정말 이별하고 싶은 맘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었던 경험으로 '소중함'이나 '의지' 그리고 '시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랬으니 어떠한 경험도 헛된 것은 아니었다. 항등식이나 절대부등식에서 전하는 수학적 언어는 그 어떤 경험도 헛된 것은 없으며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원초적 가치와 소중함이다.
지금 이 순간 정말 소중한 게 무엇일까? 그 가치를 알고 느끼고 함께 해야 한다. 지나치게 치열하고 멀고 높은 곳에 소중함과 가치를 올려 두지 말자. 사랑하며 진정 아끼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을 만나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여러 자아의 나를 두려워하지 말고직면해 있는 상황과 그 속에 있는 자신을 인정하고 자기를 만나는 과정을 다시 열렬히 경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