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거리는 태양의 마중_삶과 죽음

이글거리는 태양이 집어삼키다

by 무 한소

이른 아침 도로 위를 달린다. 사랑하는 자신만의 빨간 애마를 타고 정상적인 속도로 천천히 달리며 다가오는 아침으로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감성과 이성 어디에 더 치우쳐 있을지 모를 사유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사유는 얼마 전보다 아니 어젯밤보다 깊이는 말할 것도 없고 차분히 정리되어 제대로 흐르고 있었다. 누림의 그 시간을 방해라도 하는 거처럼 멀리서부터 이글거리는 태양이 급격한 자리 이동을 하고 있다. 그것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사유의 길에서 잠시 방향을 잃었다. 이글거리는 태양과의 거리는 공차가 음수인 수열의 일반항으로 나타나며 이글거림은 아이를 향해 급수적으로 빠르게 다가온다. 그들 간의 관계는 마치 태양이 다가오는 게 아니라 끝이 보이지는 않으며 불타오르는 그 속으로 스스로 뛰어든 거 같다. 유지하고 있었던 거리두기 대신에 아이는 벌써 이글거림 속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주버님께서 자식의 자리에서의 효와 예가 포함된 사랑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담은 메시지를 전달한 이후 끊임없는 번뇌로 저녁시간 내내 생각과 영혼, 감정은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황하며 혼란을 겪고 있다.


아버님의 온몸에 공생하고 있는 암세포가 처음 폐에서 시작되었을 때를 생각하며 그 속에 잠시 머물러 본다. 아주 작은 세포가 환경을 거부하는 몸에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자리를 잡는다. 그 시점의 영역 안에 앉아있는 암세포가 자신의 자리가 정상적인 위치가 아니었기에 주인이 없는 곳에 방문해서 홀로 자리를 지키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 거처럼 처음 그땐 그것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으리라. 뭔가 반응하면서 그것을 거둬내거나 밀어 버리거나 제거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을까? 아니면 여유였을까? 안타깝게도 암세포는 아버님의 폐에서 몸 전체로 마치 자신의 땅 위에서 기지를 탄탄히 세우는 거처럼 뻔뻔스럽고도 당연하게 적당한 속도로 조금씩 세력을 펼쳐 나간다. 그때의 암세포는 어떤 운동 방향과 빠르기로 퍼져 나갔는지... 짐작하건대 모순적이게도 조용했으며 안정적이었을 거다. 세포가 몸 전체에 퍼져나간 모순적 모습처럼 아프며 안타깝고 특별했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아이가 지금 입고 있는 흰색의 작은 꽃무늬 니트처럼 빛나게 화사했고 그와 같은 느낌이 이젠 평온하기까지 하다.


암세포가 온몸으로 퍼져버린 오늘, 아버님은 당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그것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평온한 죽음을 느끼고 계신 걸까? 책에서 학습한 대로 아주 편안한 죽음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름의 대처를 해 왔다. 감정도 연습해야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학습한 것들을 다시 반복해서 연습한다. 하지만, 감정수업과 코칭은 겉으로 보기에만 차분히 단계를 밟고 있었고 삶은 단지 그런 그래프의 흐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시각적인 결과물들은 아이를 착각하게 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절대로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사랑으로 시작된 관계 속에서의 죽음은 절대로 이성적일 수가 없다. 그 순간에 직면하면 정상적인 흐름에 따른 단계적이고 차분한 감정의 변화만을 보이기는 어렵다.




아이는 생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관계 맺기를 시작했다. 그 시작으로 삶은 복잡해졌다. 물론 관계의 시작은 행복을 주기도 다. 그녀는 탄생하면서부터 바로 또다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죽음에 대하여... 얼마나 모순적인가? 탄생과 더불어 고민하게 될 죽음에 대하여... 그것 중에서도 그들이 바라는 보편적인 죽음은 아주 편안한 죽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어제 문자로 전달된 아버님의 건강상태와 암세포의 진행은 아이를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지게 했다. 그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한다. 여러 복잡한 생각을 단순 명료하게 정리해 보려고 저녁시간 도서관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강하게 어루만진다. 얼어버린 얼굴을 지탱해주는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도 차가운 감각을 느끼지 못할 만큼 죽음이라는 단어는 그녀의 감정 깊은 곳을 뚫고 올라오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무의식적인 상태로 평소 읽지 않던 종류의 책들이 비치되어 있는 총류 쪽에 머무른 자신을 발견한다. 표면적인 독서로 열심히 살펴보다 자연스럽게 죽음이라는 단어가 집중되어 있는 철학류가 있는 쪽으로 옮겨 간다. 하지만 무엇으로도 안정되지 못한 심장이 요동치고 차분히 어루만지지만 '죽음'이라는 단어는 감정에 있어서 언제나 아이를 무너지게 했다.


지구라는 현실 온실에서 우주라는 좌표 공간으로 떠나버린 그 아이의 죽음 이후 많은 노력을 해왔다. "본인이 아닌 타자의 죽음에 대해 자신에게 책임감을 전가하지 말자. 죽음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이기로 하자."라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긴 세월 속에 이제는 좀 단단해졌다고 여겼지만 그녀를 시험하기라도 하듯 삶은 시시때때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단단해져 있는 정신이 혼란스럽게 아주 강한 것으로 곳곳에서 태풍이나 폭풍우가 몰아친다. 폭풍의 두 번째 예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찾아온 아빠의 죽음은 아이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아빠는 그녀를 오랫동안 힘들게 했다. 부담감, 함께 존재한다는 부담감으로 한 때 아이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고 그것으로 지구 안의, 한국 안의 아니 살아서 존재하는 그를 맘속에서는 벌써 단절해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물학적으로 찾아온 노화는 아빠를 바라보는 눈을 따뜻하게 했으며 가끔 연민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그렇게 차가움이 균형을 맞춰 따뜻하게 옮겨가고 냉랭함에 사랑의 감정이 추가되어 아이의 시선이 온기로 변해갈 때쯤 아빠는 세상과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린다. 아이는 더 이상의 감정 낭비로 힘들어하거나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무게 재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젠 정말로 아빠는 삶과 완전하게 단절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이와도.


다시 단단해지려고 맘을 다지고 있다. 그런데 또 예보되어 있는 세 번째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아버님의 죽음에 대해 맘의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가 왔다. 무심한 듯 단단하게 학습한 대로 감정을 다스리고 싶지만 무너져 내려앉는 가슴이 답답하고 버겁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으려고 걷고 있지만 벌써부터 흐르는 눈물이 얼어붙은 얼굴 위를 함께 타고 내려온다. 눈물로 얼굴이 얼어붙었는지 차가운 얼굴 위에 내려온 눈물이 그 온도로 얼어붙은 건지는 알 수 없다.



이제 다시 벼랑으로 떨어져 버린 죽음의 깊이에서 어떻게 나와야 하는 걸까?


도로 위에서 정상적인 속도로 달리다 이글거리는 태양 속으로 들어간 그때 아이는 죽음을 보았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급수적인 속도로 다가올 때 순간 삶을 보았다. 삶의 의지였다. 아이는 그 속에서 빛과 어둠을 함께 보았다. 삶을 짊어진 동시에 죽음을 다시 심각하게 고민해 본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손짓한다. 서둘러 가지 못하는 아이를 집어삼킬듯한 기세로 급수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아이를 강력한 흡입력으로 빨아들이기도 한다. 그 모습은 마치 죽음으로 향해가는 우리들을 마중 나온 것과 흡사하다. 그 결과는 마치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마지막까지 잡고 있는 누군가를 따뜻하게 마중 나온 모습과 닮았다.


가장 자연스럽게 사물을 셀 수 있는 수, 자연수는 1과 소수와 합성 수로 이루어져 있다. 1은 자연수 중에 가장 작은 수로 약수가 자신뿐이다. 소수는 약수의 개수가 2개뿐인 수를 말한다. 1과 자신만을 약수로 갖는 수이다. 합성수는 약수의 개수가 3개 이상인 수를 말한다. 자연수는 이 세 경우의 분류 중 어느 한 가지만 빠져도 자연수가 될 수 없다. 삶과 죽음이 우리의 삶에서 평행선을 이루며 서로의 길을 함께 밟고 있는 것처럼. 분류에서 개수의 유무로 소중함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각자 다른 모양의 역할을 할 뿐이지 소수나 합성수, 1 그 무엇도 경중으로 구분하여 나눌 수 없다. 자연수의 영역에 속한 그것들이 전하는 수학적 언어는 공존이다. 삶과 죽음 맑음과 흐림, 용기와 두려움 등이다. 내면에서 끊임없이 다투고 있는 카인과 아벨이 평행을 이루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것 자체로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며 때로는 아주 편안한 죽음이 될 수도 있지만 사랑의 감정이 있는 타자의 죽음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객관적일 수만은 없다. 다만 감정에 무너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성보다 빠르게 찾아와 무너져 버린 감정에 휘둘리며 그 깊이에서 올라오지 못하는 거처럼... 힘들어하는 아이가 폭풍우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더불어 아버님의 몸속에 함께 하고 있는 세포들의 배려로 통증이 조금이라도 덜하기를 진심을 다해 기도한다.


겨울 추위가 절정인 오늘, 아픔에서 조금 벗어나고자 잠시 멈춘다. 다시 디딘 발걸음은 차가운 밤공기를 온전히 온몸으로 받아낸 거처럼, 홀로 죽음을 체감하고 있는 그들의 두려운 밤 속에서 얼어붙은 듯 점점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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