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보다 앞선 무례한 감정_ 쫓아내기

휘둘리는 감정 _중심잡기

by 무 한소

가을을 지나 겨울 문턱에서 우리는 이미 바람을 스치고 온 이 계절이 겨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시 한번 확인이라도 하듯 입으로 뱉어내고 나누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벌써 겨울의 감정을 전달했고 그건 현실에서 존재하는 날씨의 변화보다 훨씬 빠른 기울기의 변화율을 보였다. 겨울의 감정만큼 우리 곁을 함께 하며 변화를 더 부추기는 건 청명한 가을 하늘과 단풍, 그리고 계절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끝나 버린 아쉬움과 답답함이다. 그 가운데 준비하지 못한 각자의 상황이나 준비된 마음 이전에 갑자기 찾아온 겨울처럼 요즘 여기저기에서 축가가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부드럽게 들려오는 소리는 결혼을 하는 신랑, 신부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의 맘으로 프러포즈를 하듯 절절하고 애타게 부르는 축가이다. 또한 이 계절에 신랑, 신부를 향한 축하의 맘으로 예식장을 찾은 하객, 우리 모두를 위한 따뜻한 위로의 축가이기도 하다. 물론, 낳아준 부모님을 위한 감사의 맘을 전달한 축가이며 사실은 그 어떤 날보다 축복된 날, 바로 오늘을 위한 환희의 축가이기도 하다.




축가를 들을 때마다 그녀는 눈물로 화답한다. 이 순간처럼 10년 전에도, 또 그 10년 전에도 결혼식에서 하객으로 앉아 있었던 매 순간 그녀는 축가를 들으며 눈물을 슬쩍 감추어 보였다. 하지만 눈치 없는 감정은 끊임없이 휘둘리고 자극을 받는다. 결국 펌프질을 하듯 눈물이 과하게 흘러나온다. 축가가 울려 퍼질 때 과거의 추억과 아주 오래 전의 일들이 갑자기 영상처럼 확대되어 비친다. 그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곳곳에 존재하는 시간 속의 자신이 떠오르고 이후 상처까지도 그리워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움이란 그녀에게 어느 시점부터는 힘이 되어 주었다. 과거는 우리에게 긍정만을 선물하지 않는다. 어쩌면 부정적인 아주 많은 바탕과 배경 속에 긍정적인 몇 가지 요소가 소재 또는 주제로 가끔은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신기하게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을 만들어 주었다.


축가가 울려 퍼지는 그곳에 과거를 회상하고 주위 눈치를 살피며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는 그녀가 앉아있다. 그리고 주변을 의도적으로 바라보듯 꼼꼼히 살핀다. 사람들과 분위기 그리고 그들의 관계의 시작부터. 우린 여기서 왜 이렇게 대면 대면하고 있는 걸까? 삶을 먼저 살아온 그분들과 이 시간을 함께 공존하며 쫓고 있는 우리, 공존의 감정을 소외된 특별한 감정처럼 느끼지만 자유로움이 더 편안한 지금의 친구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다 모둠별로 다시 살피고 있다. 관계는 어떤 모습으로 보면 겉보기로 이어진 거처럼 보이지만 다른 모습 속의 다음 관계는 단절되어 보이기도 한다.



사라진 시간 속에 그녀의 한 순간이 보인다. 사라진 시간 안에 그들의 어느 시점의 순간이 드러난다. 그들은 아쉬워하며 후회의 감정들로 호소한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얼굴을 붉히고 쑥스러워하며 보고 싶었다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녀는 그들의 안부를 묻는 관심과 묵은 부정적 감정을 내려놓으며 따뜻함과 세월에서 무뎌진 감정들을 보게 되었다. 지나온 삶에서 그들에게는 무엇이 그토록 중요했던 걸까? 지나온 시간 속에서 무엇이 그들의 굽힐 수 없는 자존심을 놓지 않았던 걸까? 표면으로 드러난 주름 하나하나 처진 눈꺼풀과 피부 근육이 불편해서 웃음까지도 맘대로 할 수 없는 듯 사라진 시간 속에 누적된 무거움이 침잠되어 있다.


그 관계 속에서도 묘한 관계의 법칙이 있다. 위치와 자리에서의 노릇에 대해. 한 가정에서 역사와 문화는 무엇으로 결정되는 걸까? 그 집안의 지나온 시간들은 불과 한 세대가 지나면서 완전히 단절되기도 한다. 또한 몇 세대가 지나도 여전히 역사와 문화가 그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기도 하며 아주 오랜 시간 후에 기억되기도 한다. 물론 여러 집안에서의 장자와 주변인들의 자리는 각자 처한 위치에서의 차이를 보이므로 시선의 높이, 각도, 반경까지도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들 간의 체감은 그냥 말로 형언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는 아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공유하려는 노력을 하지만 그 깊이를 감당할 수는 없으리라.


이 땅에서는 여전히 유교사상이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장자라는 자리의 부담이나 삶에 실린 짐의 무게는 더 강하게 다가온다. 아들이 귀한 가정에서 처음부터 가치 없는 '숨'을 가졌으며 삶에 대해 힘들어했던 그녀의 입장에서는 부러움을 탐했던 자리이다. 그냥 주어진 중요한 자리, 탄생과 함께 주어진 위치. 물론 그 책임감에 대한 부담감이 그토록 큰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그 시선의 위치와 각도, 반경까지 어떤 것도 궁금해하거나 관심조차 없었을 거다.




크고 일관된 마음의 장자는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신념을 갖고 여기 이 시간까지 지나왔다. 지나온 시간 가운데 장자의 강한 신념으로도 모양을 만들거나 방향을 바꿀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꼬인 위치. 윗 세대들 간의 관계에서의 서로를 향한 꼬인 위치는 그들 간의 생각이 공유되거나 평행을 이루며 마주하지 않았고 지나가며 같은 생각으로 서로를 향해 한 번의 만남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 꼬인 위치는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서로의 만남을 한 번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으며 마주하고 긍정의 마음으로 서로에게 끝까지 나아간 적도 없었다. 그래서 서로를 표현하기 이전에는 그 어떤 위치에서도 만나거나 마음을 읽어 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축가가 울려 퍼진 이곳에서 그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자존심은 세월이라는 시간 속에 건강하지 못한 신체를 빌려서 각자가 서로뿐이라는 존재의 중요성으로 대신 대체되었고 지나간 세월 속에 존재하는 서로의 과오를 실어 보내려는 의지를 보인다.


그렇게 시작했다.


이성보다 빠르지만 침착하고 안정되지 못한 감정의 무례함으로 후유증을 아주 긴 시간 겪었다. 길고 긴 세월이 들어가 있는.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은 감정이 전체를 압도적으로 지배하듯 휘둘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단절된 관계에서 그들은 단절로 인한 기다림의 아픔으로 시작해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냈으며 그리움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시작한다.


모난 줄 흉한 줄 몰랐다. 얼마나 높은지도 모르고 쌓아왔던 자존심을 허물기 시작했다. 그 기울기가 조금씩 내려가며 모양이 변하고 있다. 결혼 축가가 울려 퍼지며 함께 시작된 그분들의 사랑의 메시지는 자존심이라는 기울기를 갑자기 완만하게 만들었다.


기울기는 일차함수부터 다항함수 그 외의 다양한 함수에서 찾을 수 있는 미분계수와 같다. 미분이 가능한 어떠한 경우도 미분계수를 찾을 수 있다. 그분들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전달한 사랑의 메시지가 미분계수의 완만한 기울기로 나타나고 그건 곧 노력의 징표로 표현된다. 휘둘리지 않은 노력의 표상이다. 이경우 기울기가 소리를 내며 전하는 수학의 말은 그 무엇도 그리움과 대체될 수는 없다는 거다. 시간에 덮인 거처럼 보이는 그리움은 항상 힘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자존심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처음과 많이 달라진 기울기처럼 조금은 완만하게 시간 속의 그리움을 지키며 성장한다.


다시 내려놓은 감정이라기보다는 무례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각자가 행복에 한발 가까이 다가간 이성에게 예의를 차린 보조의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보조의 감정으로 조화를 찾은 내면과 부수적인 역할로 균형을 찾게 한 현재의 관계가 모두 정상적인 흐름을 찾아 나간다.


모두 그렇게 또 한 발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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