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시작을 찾아 거슬러 가 보니 그날은 바로 설날 전이었다. 한파가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무척이나 추운 겨울 속 명절 전날 밤이었다. 다음 날 차례상에 올릴 음식 준비로 여러 사람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정신없이 분주한 그곳의 모습은 단지 풍경인 거처럼 보였다. 부엌과 거실의 경계가 모호한 곳의 싸개 이불 안에서 좀 전까지 심하게 울어대던 아기가 소리 없이 누워있다. 그 앞에서 바로 이마에 내 천자를 그려내던 할머니와 무거운 표정의 엄마, 아빠가 표정보다 더한 무게로 아기를 지켜보고 있다.
검지 손가락을 살짝 꺾어 아기의 코 가까이 가져가서 대고는 몇 초간 잠시 멈췄다 뗀다. 한참을 생각하시던 할머니께서는 "이제 다 틀렸다!" 하시며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섞어서 뱉어 내셨다. 그리고 갓난아기가 덮고 있던 작은 싸개 이불을손으로 집어 들고는 아기의 얼굴을 슬쩍 덮어 버렸다.
엄마와 아빠는 강하게 부정하며 아기를 안고 뛰기 시작했다. 당시 그곳은 택시를 볼 일이 거의 없을 만큼 한적한 곳이었다. 두 분은 그날 그 시간 특별히 더 어두웠던 밤길을 달리기시작했다. 시간은 밤이 어둠을 집어삼킨 듯 주변 그 무엇도 두려움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어른들의 심정만큼 어둠은 더욱 깊어지고있었다. 엄마, 아빠의 바쁜 걸음은 정상보다 빠른 호흡을 만들어 냈고 가쁜 숨이 넘쳤다. 그곳의 밤에는 어둠 속 그들의 호흡과 발걸음을 바삐 옮기는 소리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빠는 힘이 잔뜩 실린 팔로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엄마는 그 옆에서 미세한 움직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지켜보고 있었다. 달리는 두 분의 뒤를 조용히 따르며 그들을 지켜주는 달빛에 의지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달빛이 그분들이 안고 있었던 아기를 지켜줬는지는 기억이 없다. 다만 겨우 택시를 탔고 아기를 지켜보던 그분들의 숨결은 매우 격했다. 그 '숨'은 병원이 보이는 곳에서부터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꺾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이후에도 가쁜 호흡은 연장된다. 응급실을 향해 달렸고 그분들 품에서 떨어져 큰 침대에 덩그러니 뉘어지던 순간 아기는 '외로움이, 혼자가 된다는 건 이토록 두려운 거구나'하고 무의식 속에서 깨닫는다. 엄마, 아빠가 지켜보는 가운데 여러 개의 주삿바늘이아기의 몸 이곳저곳에 꽂혔다. 아기를 지켜보던 엄마는 소리 없는 울음으로 코끝과 볼이 심하게 요동쳤다. 아기의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기가 힘들어지자 남편에게 떨리고 힘이 없던 몸의 반을 의지하며 고개를 돌린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기의 손, 발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울고 있는지 옹알거리는 소리인지 깨어났음이 분명하다. 엄마는 긴장이 풀린 탓에 아빠에게 의지하며 지탱했던 몸의 힘이 더 빠졌다. 주저앉으며 울음이 섞인 격앙된 소리로 "감사합니다!"만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그날은 응급실에서 하룻밤을 지새워 보낸 후 아침 일찍 퇴원을 했다. 병원을 남겨두고 세 사람은 평안해진 숨으로 어둠이 물러가고 있는 거리를 다시 돌아가고 있다. 아기가 무의식 속에서도 거부했던 소리가 있는 그곳에 점점 다가간다.
어릴 적 유난히 몸이 약했던 한 아이가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 아이와 세트로 뗄 수 없는 꼬리표는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한국에서 태어난 둘째 딸이라는 것과 몸이 약해서 잔병치레를 계속한다는 것이었다.
위로는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맏이였던 언니는 딸이었지만 첫째이자 장녀라는 이유로 언니를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유별났다. 어린아이를 상징하는 뽀얀 피부와 적당히 통통한 모습이 어른들이 보시기에는 귀여움과 사랑이더욱 넘쳤다. 더해서 착하고 무던한 성격은 언니를 돋보이게 하는 보너스와도 같은강점이었다.
상대적으로 그녀는 집안에서 기다리지 않는 두 번째 딸로 태어났고 출생과 동시에 건강하지 못한 몸이 집안 어른들의 잔소리 거리가 되었다. 마른 몸과 뽀얗지 못한 피부까지... 그래서인지 아기는 번갈아 가며 부모님 등에 업히는 것에 집착한다. 출생과 동시에 그 갓난아기는 자신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직감이라도 한 듯이 부모님의 사랑을 유독 갈구했다.
시간이 지나 딸만 둘이 있는 아들이 귀한 아이의 가정에서 보석과도 같은 남자아기가 태어났다. 사내 아기의 탄생은 그녀에게 이제 인생이 더 복잡해졌음을 말해주었다. 아기였던 그 시절부터 그녀는 불편함이 무엇인지 그런 경쟁구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기, 사랑받기를 넘어선 쟁취하기... 등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그리고 실천하기에 이른다.
남동생의 탄생으로 몸이 약했던 그 아이의 앞날에도 힘든 일들이 조금씩 생겼다. 더구나 남동생은 성격과 식성이 좋아서 예쁜 아기라고생각하는 최상의 표본을 지녔다. 잠도 잘 자고 엄마젖을 잘 먹어서 하얗고 뽀얀 피부에 통통한 몸까지... 다른 아기들과 견주었을 때도 누구나가 탐낼만했다. "그놈 참 잘생겼다."또는 "그놈 참 복되게 생겼다."등사내아이인 동생을 보면 누구나가 습관처럼 내뱉는 수식어였다. 동생은 그렇게 찬사와 함께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사랑을 뺏겼다고 생각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엄마 아빠의 사랑스러운 시선을 갈구했으며 그것을 자신에게로 향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상처가 되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기억조차도 없다. 다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환청이 되어 무의식에 깔려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들이 제자리를 찾아 나선 듯 한 번씩 올라오곤 한다. 순간순간 올라온 그 소리들은 그녀를 지우고 싶은 과거라는 늪에서 끊임없이 괴롭히고 지금도 가끔 힘들게 한다.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에 머물러 있는 그녀는 가끔 자신의 모습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사랑을 갈구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얻어 내려는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릴 적 그녀를 힘들게 했던 정확하지 않는 소리의 근원을 떠올리며 지금도 무의식 속에서본능적으로 많은 것을 쟁취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제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함께 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한숨과 함께 뱉어냈던 그 소리는 그녀의 지우고 싶은 환청 속에 맴돌고 있다. 환청 속에서 맴도는 소리는 할머니의 혼 마저도 둘째 딸을 미워하신다는 의미처럼 강하게 와닿곤 한다. 왜 그것은 지워지지도 않고 할머니 혼의 성대를 통해서 나온 거처럼 약하디 약한 그녀를 지금까지도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그분들을 대신한 부모님, 자식과 부모의 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아주 먼 과거로부터 그 인연은 친화수(우애수)의 관계는 아니었는지 다시 수의 말에 귀를 기울여본다. 우애수는 항상 서로 함께한다. 함께 움직인다. 평행선을 이루든 교차하든 친화수는 함께 하고 마주 한다. 마치 복제품을 지니고 태어난 거처럼. 친화수는 존재하는 두 수의 쌍에서 어느 한 수의 진약수를 모두 더하면 마주하는 다른 수가 되는 것이다. 220(1+2+4+5+10+11+20+22+44+55+110=285)과 285(1+2+4+71+142=220)는 대표적인 친화수(우애수)이다. 친화수는 원초적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관계에서 회자되는 우리의 삶이 보인다. 친화수가 전하는 수학의 말은 "관계에서의 조화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다"라고 할 수 있다. 세대를 거듭하는 관계에서 물리적인 시간에서 찾아오는 노화와 단절은 유한의 삶을 전한다. 하지만 그것마저 극복이 되는 삶의 영속성과 세대를 통한 의식과 기억의 전달은 무한한 삶을 말하기도 한다. 우애수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그 두 가지의 조화로운 형태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이제는 지워버리고 비워내려고 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은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닌 그분들의 혼이었다. '그 혼'까지도 원하지 않았고 미워했던 그녀는 지금 누구보다도 맑고 밝게 성장했다.부모님이 주신 아름다운 모습의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