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나를 꺼내는 것_비움

새로운 프레임 다시 짓기

by 무 한소

아이는 성장통을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겪는다. 이후 성인이 되는 길 위에서 방향과 속도, 진행 목표, 그리고 그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마음까지도 갈등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길 위에 놓여있다. 여기에 아이의 기록이 있다. 평범한 실생활에서의 특별한 기억, 또 자연에서 오는 일상의 기억이.


여기서 현재의 아이는 나와 너, 우리 모두를 일컫는다. 현실에서의 보편화된 일반인을 총칭하며 대신한다.




<아이의 기록물>


내가 찾은 변화의 길을 무심히 걷고 있다. 비록 그 변화율이 아주 작더라도 그래프 위를 걷고 있는 내 입은 리듬을 따라 노래한다. 입꼬리는 읊조리듯 실룩거리며 주변으로는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살아온 삶에 대하여 겪어낸 점검의 시간들은 앞으로 펼쳐질 생에 직면해 나갈 밑거름으로 충분하다. 과거의 부정적인 감정 비워내기 덜어내기가 변화의 기울기를 지닌 직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비록 기울기가 지나치게 완만하더라도 욕심내지 않고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실행하고자 한다.


치즈 시리즈 책, 그리고 두 글자의 카테고리를 타고 들어가면 스펜서 존슨의 책들이 도드라지게 많다. 작가의 책은 아니지만 두 글자로 된 제목의 책들은 한 때 유행인 거처럼 넘쳐 나기도 했었다. 과거 이 시리즈별 책들을 읽어 나갈 때 참으로 가볍게 읽었고 간단히 보았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전체를 급히 해치우려는 마음의 결여에서 시작된 거 같다. 그때는 양질의 독서습관을 가지지 못했다. 욕심으로 마치 밀린 일거리를 해치우듯 책을 읽어냈다. 독서 토론 시간에 《선물》이란 책이 다음 도서로 결정되었을 때 같은 작가의 여러 책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미쳤다. 그러자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다만 책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재독을 통해서는 예전에 보지 못한 것들을 하나씩 찾아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현재 나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재독은 다시 현재의 지표가 된다.




경청의 마음가짐


책은 눈으로 보고 머리와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그 속에는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경청의 태도가 들어가 있다. 참으로 경솔했던 걸까? 아니, 그때의 역량의 부족함을 느낀다.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머리로만 가능했고 가슴으로는 결코 수용할 수 없었던 거 같다. 반성의 마음과 지금 내면에서 오는 불완전한 에너지를 진정시키는 방법으로'재독'이라는 것을 선택했다.


프레임 속에서 갇힌 나를 꺼내는 것


책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에서는 '과거의 신념'이라는 '허'가 써 놓은 글귀를 확인하고 지금까지 신념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헴'은 글을 남긴다. "신념은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생각이다."


나에게 있어서 '신념'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노인과 바다》의 노인이 먼저 떠오른다. 노인은 낚시 바늘에 걸린 청새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몇 날을 잠도 못 자고 손이 찢기는 고생을 한다. 노인의 고생 안에는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노인이 겪어낸 고생은 고통이 되기도 하고 희열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의 신념일 뿐이다. 청새치를 잡은 낚싯줄을 쥐고 놓지 못하는 노인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과연 우리 삶에서 꼭 쥐고서 절대 놓지 못하는 청새치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며 '신념'에 대해 다시 들여다본다. 노인과 소년은 신념이 같다. 그래서 소년은 노인을 신뢰하고 그 신뢰감은 많은 것의 공감대와 함께 고기잡이와 낚시에서의 여러 가지 경험을 함께 하게 했다. 그들에겐 실패가 계속되어도 어부로서 언젠가는 거대한 청새치를 잡으리라는 신념이 있다.


그렇다면 신념이란 무조건 안고 가는 게 더 좋은 것일까? 책에서는 과거의 신념이 우리를 가두는 쇠창살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것은 우리를 주저앉게 한다. 신념이라고 모두가 자신을 나아가게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자신을 갇히게 한건 궁극적으로 자기 스스로다. 좋은 신념인지 주저앉히는 신념 인지도 모른 채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순간 주변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맹신하게 된다. 결국에는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던 신념이 자신을 가두고 있었던 거다.


프레임 속에서의 자유가 과연 자유일까?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자.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발전하려는 태도에서 위안을 얻는다. 정답을 쫓으며 계획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차곡차곡 노력해서 얻은 결과 자신의 루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 본다. 한 가지의 루틴을 위해 최소한 1~2년 이상의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후엔 새로운 루틴을 생활 속에 다시 정립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는 애씀 자체만으로도 에너지가 생겼다. 뿌듯함은 토닥임으로 전해진다. 프레임 속에서 스스로 규정하고 목표로 하는 것이 정리되어갈 때, 그곳에서 자유를 함께 누린다고 생각해왔다. 그 순간은 사실 자유로웠다. 하지만 문득 가슴 깊은 곳에 있던 자신의 자유가 어디론가 밀려 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그토록 누리려고 한 자유가 지금의 프레임 안에서 사라져 버린 거다..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새로운 신념으로 지은 프레임


책은 현재의 마음 상태를 고스란히 전해 준다. 방황하며 겪고 있는 지금의 순간이 천천히 집요하게 보였다. 사라진 자유를 프레임 안에서 다시 찾아야 하는 걸까? 그 자유는 스스로 진실 혹은 사실이라고 믿는 신념이다. 프레임 밖에서 다시 안을 들여다보니 과거의 신념이 보인다. 지금은 판단해야 하고 이후 최선의 선택의 기로에 섰다. 다시 새로운 루틴을 정해 바삐 움직여야 한다. 거기서 만든 프레임 안에서 맘껏 자유를 누리고 싶다. 아니면 지금까지의 방법과는 다른 프레임 밖, 지금까지의 루틴이 아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걸까?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미로 안에서 이곳저곳을 뒤지며 정신없이 다니는 것에 대해 짚어 말한다. 만약 복잡함으로 미로 속을 헤매다 보면 복잡함은 더 큰 복잡함으로 문제의 해결점은 결국 보이지 않는다.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자. 미로 밖으로...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신념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그것은 신념이 될 수 없다고 믿어왔다. 신념은 다시 선택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결코 버리거나 바꿀 수 없다고. 프레임 밖으로 나와서 다시 시작해보자. 전자도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고 후자 역시도 변화의 과정 위에 있는 본인의 모습이다. 신념이라고 해서 반드시 꼭 쥐고 있는 것이 옳지 않다. 새로운 신념이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미로 밖에는 우리가 상상조차도 못할 놀라운 일이, 프레임 안에 갇혀 있을 때는 절대 보이지 않았던 새로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믿음과 용기로 미로 밖으로 뛰쳐나가야 한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끝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인 것이다.


프레임 바깥세상에는 안에서 도망 간 자유가 있다. 자유는 버젓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자유가 자신에게 전달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강하게 손짓하는 자유를 쫓아가 보니 입장 바꾸기와 생각 바꾸기 등 바꿈에 대한 메시지를 남긴다.


믿음이 있다면 좀 바꿔보면 어떨까? 프레임 바깥세상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있어도 안에서는 그곳이 존재하는 세상 전체라고 믿는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으며 그런 세상에 존재해 있다. 보이는 것만을 진실이라 믿는. 사실이라고 믿는 생각이 때론 우리를 가두고 있었던 것도 모른 채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거다.




일상에 녹아 있는 수에서도 완전수가 있다. 완전수는 이름에서 벌써 완전함, 완벽함이 드러난다. 수학에서 완전수는 자신을 제외한 양의 약수의 합으로 표현되는 양의 정수를 말한다. 예를 들어 가장 작은 최초의 완전수는 6(1+2+3)이다. 다음으로 28(1+2+4+7+14)이라는 수 또한 약수들의 안정감을 본다면 참으로 균형감 있게 보인다. 우리는 왜 끊임없는 노력으로 완전수에 집착하는 걸까? 그것 또한 호기로움과 수학을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서의 평행을 이루는 곧은 신념이라 할 수 있겠다. 일상이 수학적인 삶이며 그것은 비단 수학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프레임 바깥세상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프레임 안에서 비움을 하고 평행을 이루는 프레임 바깥에서의 채움. 함께 나가는 신념을 완전수로부터 배운다. 자기 자신은 없지만 약수들의 힘으로 자신을 창조해 내는 완전수가 전하는 말은 균형의 감각이다.


이제는 현재 나에게서 벗어난 자유를 찾아 지금 스스로 가두고 있는 프레임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비록, 그것이 다시 짓고 있는 새로운 프레임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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