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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Mar 22. 2024

시작은 떨림

다채로운 상실감

시작은 가벼운 떨림이었다.


책을 읽고 나눔을 해온 오랜 벗들과의 모임에서 공간 안의 시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 보이지 않은 무의 공간조차 떨림이 있었다. 미세한 떨림은 공기에 눌렸다 팽창하듯 점차 커졌다. 작년 어느 봄, 공간과 시간은 붕괴했고 지금까지와는 색이 다른 상실감을 겪게 되다. '읽고 나누고 성찰한다는 것이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과 글에서 뭔가를 놓쳤다고 생각한 어느 날 《관계의 수학》 원본 파일돌아보게 되었다. 


관계의 수학》_권미애/궁리


다채로운 뿔이 전하는 수학의 언어는 '상실감은 각기 모양이 다를 뿐 어떤 것이 더 크고 무거운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삶의 중요성이나 가치를 점수로 매길 수 없는 것처럼. 상실감은 결국 온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급격히 낙하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부딪혀야 한다. 그래야 좀 더 급한 기울기로 높이 비상할 수 있다.


책을 읽은 후 상실감을 처절하게 겪고 부딪히려 했다. 온몸으로 감당하려고. 그리고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이별을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글로 그들을 향한 마음을 대신했다. 그 기억은 비록 아프지만 다시 소환해서 온몸으로 부딪히려고 한다.


마음이 아픕니다.


"가끔씩 당신의 몸은 다른 누군가의 유령이 사는 집이 된다. 사람들은 당신을 바라보지만 오직 죽은 사람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과거의 어느 책에서 읽고 많이 고민하며 인간의 모순을 생각했던 문장입니다.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그대로 담지 않은 책, 그런 문학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좀 더 편하고 오래도록 읽히는 거 같습니다. 지난번 언급했던 《숨그네》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죠. 작가는 수용소에서의 참상을 간접적으로 겪었기에 비극을 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 좀 덜 아프게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모순이겠죠? 말과 글이 갖는 특별함과 독특함 그리고 마음. 각자 마음에서 시작된 전함에서 진실보다는 부담과 불편함으로 느껴지는 현실의 모순. 그동안 함께 하며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처럼 우리 모두 변화의 과정을 겪으며 성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제안처럼 시간이 잠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변화의 여정에 시간은 필요조건입니다. 숙고하고 숙고해서 내린 결정. 겸허히 받아들여야겠지요. 그런데요, 지금은 힘든 과정이며 시간이겠지만 잠시 또는 긴 쉼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해요. 서로에게 시간을 주기로 다시 한번 우리 모두에게 부탁합니다. 다만 깊은 번뇌를 감내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갖출 수 있기를 바라며 그때까지 건강 잘 챙기시길요. 멤버들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 순간이 오면 우리 그때 다시 만나요.

<깊은 고민으로 밤을 지새운 후 마음을 대신해 온전히 싣지못했지만 마음을 담은 글 남깁니다> 


이후 모임은 영구적으로 해체되었고 그들과 나눴던 좋은 기억만이 잔상으로 남아있다. 마지막일지도 몰랐던 그 시간들이 힘이 들었기에 아픈 마음이 조금 누그러 지길 기대했다. 하지만, 모임 해체 이후에도 그때의 고민은 영속된다. 멤버들의 색깔과 이미지가 여전히 그림자로 함께 남았던 것처럼.


나는 오늘도 제대로 된 낙하를 꿈꾼다. 반복된 낙하를 하며 안개를 걷어내고 다시 길을 걷는다. 급한 기울기로 낙하하며 더 높이 비상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진실보다 더 한 거짓된 진실을 모순으로 분류한다. 삶에서 모순을 찾는다는 것은 여전히 글을 쓰고 마음을 견디는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삶의 일부인 모순이 온통 나를 지배했던 어느 날 반대편 직선에서 걸어가는 모순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저 함께 걸을 뿐이다. 시작은 미세한 떨림이지만 떨림 안의 진실과 거짓된 모순이 상실감으로 표출된다. 이제 좀 더 격하게 겪어내리라. 온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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