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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Jul 06. 2024

현재가 미래에 묻다

등비수열로 알아볼 정기 구독권

그렇게 도서관을 이용한 이용자는 원인도 모르고 도서관 곳곳에서 감염이 될 거야. 그들은 도서관 외에 외부나 각 가정에 돌아가서도 기하급수적으로 바이러스를 퍼트릴 수도 있지. 그렇게 한 명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10일 후, 20일 후면.. 총 몇 명을 감염시킬 것인지. 숫자로 닿아야만 인간이 느끼는 경각심이 극대화되리라 믿기에 수치화해 보려고 해.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예방책은 무엇일지 의논해 보려고 하는데... 예방책에 대해서는 관계를 차단하고 봉쇄하기 이전 단계인 대부분 알고 있는 마스크를 잘 착용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그 외 다른 수학적 접근으로 이해하고 한 번 새롭게 시도해 볼까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얘들아! 선생님은 친구들을 믿는단다. 너희들은 우리의 미래이기에."


-》지난 회 정리하고 이어서


수애의 말소리를  쫓으며 멤버들은 눈동자를 굴려 그림을 그리고 상상을 다. 문제에 집중하고 있던 친구들이 이상하게 조용하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만, 수애의 질문과 눈빛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가 긴장된 그들의 호흡으로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일부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과 호기심 가득한 열정이 느껴진다. 윤이가 지난 시간처럼 제안을 하려는 듯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더니 손을 번쩍 든다. 수애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보내자 윤이는 안경을 고쳐 쓰며 특유의 재치 넘치는 표정으로 눈을 찡긋하더니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혹시 지난 시간처럼 제안을 하나 해도 될까요? 수애샘이 낸 논제를 포함, 친구들과 의논하거나 토론에서 나누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제안하는 형식으로 문제를 정리해서 올리는 건 어때요?" 윤이는 호소하듯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친다. 아이들은 크게 자신을 노출하거나 과하게 자신을 표현하지 않았으나 동의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먼저 거론한 문제를 마무리하려 다시 윤이가 나섰다. 윤이는 텀블러에 든 물을 마시더니 친구들을 둘러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즐겨보는 웹툰이 있는데, 사실 웹툰을 정주행 하는 시간이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빛의 속도로 지난 시간을 확인하며 깜짝 놀랄 때도 있단다. 결재까지 해서 보는 건 망설여지기도 하나 학교며 입시에서 나도 숨 쉴 구멍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윤이는 고개를 살짝 돌려 수애와 눈을 마주친 어색해하며 씁쓸한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생각 많은 표정으로 입을 다문채로 한참 동안 멈춰있었다.


즐겨보는 웹툰을 위해 정기 구독을 결정했어. 그런데, 여기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 묻는 거야. 이왕이면 두 가지 방법 중 내게 더 맞는 좋은 방법을 선택하고 싶어서.


먼저 첫 번째로 연간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어. 첫해 구독료가 20000원이었지. 그런데, 이 업체는 매년 구독료를 전년대비 10%씩 인상한다고 발표했어. 5년 후 구독료와 그때까지 지불한 구독료의 총합은 얼마일까.


두 번째는 5년 정기권을 이용하는 데 정기 구독은 10만 원으로 인상률 없이 구독할 수 있어 단, 10만 원 정기 구독은 환불 규정이 따로 없다고 한다면. 다만, 5년 정기 구독권을 이용하고 첫 해는 환불 가능하고 환불은 먼저 첫 해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누는데 상반기에 해지하면 손해율 20%부터 다음 하반기에 해지하면 손해율 30%로, 이후는 환불 규정이 없는 거지. 그렇게 규정한다면.

 

여러분들이라면 해마다 결재를 할 건지 5년 정기 구독을 할 건지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게 좋을지 얘기 나눠 보려고 해.


윤이의 질문이 흥미로운지 여기저기 어수선한 웅성거림이 아이들의 경험을 말해주는 것처럼 시끄럽다. 다행히도 아이들 표정은 호기심으로 밝다. 윤이는 아이들의 태도와 표정을 눈여겨보며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의 눈빛과 꼭 다문 입에 집중하고 있다. 신체 중 그 두 곳에서 인간의 의지가 유독 강하게 느껴진다. 힘을 주어 쥔 손에서는 떨림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윤이의 질문을 눈여겨 확인하며 귀 기울이던 수애는 얼마 전의 일이 떠올랐다.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엄마 옥과 사이에서 대수롭지 않게 넘

어 갈 수도 있었던 일이 폭탄이 터지듯 커져 모녀 관계가 어색했던 적이 있다. 꽤 긴 시간 동안. 일의 시작은 너무나 사소한 핸드폰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그것 또한 누적이 된 것이지만. 윤이가 질문한 것처럼 옥은 구독해서 시청하고 싶은 콘텐츠가 여러 개인데 매달 결재를 하게 되면 만 얼마쯤 되는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수애가 자세히 확인해서 보니 매해 인상률이 상당했다. 업체에서 눈속임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화가 났다. 그래서 옥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때마침 함께 있던 친구분 앞에서 목소리가 커졌다. 사실, 이전에도 영옥은 그런 경험이 여러 번이라 수애가 생각한 엄마는 귀가 얇고 마음이 약해 한 번씩 손해를 보고 결재를 한 이후 속앓이를 하곤 했다. 수애는 엄마의 속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화를 심하게 낸 적도 있고 어르고 달래기도 다. 영옥과의 갈등 과정에서  엄마의 선택을 다시 떠올려본다. 해마다 인상되는 걸 알면서도 그걸 선택한 건 아마도 딸의 눈치가 보여 3년, 5년, 10년 단위의 정기 구독을 끊을 수 없었으리라.


수애는 엄마를 생각하며 근원을 알 수 없는 한숨부터 나온다. 엄마에서 시작된 분노나 답답함이 아닌 연민이다. 아빠가 곁을 떠난 지 몇 년 엄마의 목표가 사라졌다. 양귀자 소설 모순에서 작가는 안진진 엄마의 삶의 의미, 에너지는 절대 회복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바닥의 환경 죽음보다 더 치열한 삶이었다. 그곳에서 때론 에너지를 얻기도 했다. 진진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옥은 남편이 자신의 가슴속 십자가 말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죽음에 미끄러지듯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자 이제는 목표를 잃은 사람처럼 눈동자는 총명되지 못하고 얼굴에는 활기를 잃은 지 꽤 긴 시간이 지났다. 이제 다시 남편과 함께 살아왔던 시간에서의 목표를 떠올리며 목적지를  찾지만 길을 잃은 지 오래다. 그런 엄마가 누구보다 아프게 느껴지는 건 수애가 엄마에게서 느꼈던 생기, 에너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 연민에서 시작된 한숨으로 이어지며 결국 화를 낸 것이다. 윤이가 던진 논제에서는 수학적 사고를 요하는 질문 내용이 전체를 이루나 근원으로 돌아가면 인간 각자를 향해 던지물음이다. 조심스럽게 해결한다. 우린 각자 자기 자리에서 천천히. 사람들의 심리도 엿볼 수 다. 과연 질문을 들은 그들의 생각과 어떤 경우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더 유리한 선택일지. 5년 정기 구독권 대신 해마다 인상되는 구독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건 시간에서 오는 문제가 아닐까 더듬어 본다. 엄마의 자존심을 긁고 상처를 낸 그날 수애는 처음으로 옥이 걱정되었다. 옥의 울음이 밤새 수애의 귀를 떠나지 않았기에.


수애가 옥과의 일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잠시 집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윤이는 친구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을 덧붙이고 있었다. 각자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30분 후 다시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아이들의 생각이 날개를 달고 높고 멀리 어디까지 움직일지는 짐작할 뿐이다. 다만 수애가 놀랬던 건 친구들의 질문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가 아이들의 질문과 연계되어 하나씩 떠오른다.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 속에 과거 자신의 모습과 그 순간 태도가 보인다. 아이들은 여전히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공백이라는 단어, 빈 공간을 사랑한다. 수애는 좋아하는 커피나 케이크를 삼킬 때보다 이전의 배경을 좋아하고 빈, 비어 있다는 그 의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줄곧 쫓아왔다. 아이들은 공백 이후  날개를 달고 여기저기 좌충우돌 튕기며 움직이던 생각을 정리해서 곧 다음 이야기를 펼쳐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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