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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Jun 22. 2024

너의 결혼식 안의 수열

심박동 수와  낙조의 수열

쁘기도 하고 세련되기도 한 두 사람의 걸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든든한. 그 걸음에는 수애가 심은 수열이 있었다. 그 설렘에는 드러나지 않으나 점점 빨라지고 있는 그녀의 심장박동수와 피보나치 수열이나 등비수열과의 연관성이 있었다. 수애는 아름다움과 설렘의 감정 안에도 수열을 찾고 있는 자신에게 조금 짜증이 났다. 지금 수애가 눈시울을 붉히며 감격하고 있는 하얀색이 가득한 이 자리에서는 그녀의 제자였던 승연의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다.


평온해 보이기만 한 그들의 과거도 자갈밭을 걷는 것 같은 수애의 걸음처럼 아프고 힘이 들었을까. 수애의 기막힌 과거의 사건, 사고들이 그녀 곁에 흡착되어 있는 것처럼. "우린 모두 아픔을 걷는다. 우린 모두 슬픔을 밟고 있으며 건너뛰기도 한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난 세상에는 놀랍고 괴로운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언제부터 수애는 그런 생각으로 자신을 다독이며 지나왔다. 아픈 일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의 마음을 다독였다. 수애의 마음 같지 않아서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수애는 삶 가운데 있는 자신이 서툴렀기에 삶이 더듬거리고 시간이 길을 놓쳤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육체와 마음만 책임지면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수애나 타자들 모두, 삶은 관계에서 넘쳐나도 모자라도 항상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을  왜 그토록 몰랐을까. 그녀가 스승이며 멘토라고 믿는 아이들에게 공부란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이라 얘기했으며 깨우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건 단지 바람을 타고 지나가는 마음이었을까. 바람결에 들리는 과거 그녀의 소리였을까. 울고 다짐하고 다시 울며 일상을 았다. 일상에 스며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최소한 한 명이라도 동참하게 하려는 노력을 피하지 않았다. 수애가 이번 동아리를 모집하고 시작한 건 단지 지식이나 정보 공유가 아니라는 것을 멤버인 아이들이 더 잘 알거라 믿는다. 승연이의 결혼식은 그녀의 또 다른 자극이 되었다.


신부와 함께 발맞추어 한발 내딛는 그 아이의 걸음에 그녀는 이입된 자신의 심장을 확인했다. 설렘!!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감정인 설렘이 주는 에너지에서부터 수애는 결혼식장의 규칙을 보았다. 신랑, 신부 측에 질서 정연하게 앉아있는 하객들, 대칭을 이루며 등장하는 신부와 신랑의 부모님. 수애가 보았던 꽃으로 장식된 식장의 분위기와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나오는 음식까지.

경우의 수와 수열이 순서대로 차근차근 연상되었다. 승연이는 긴장을 대신한 미소 가득한 얼굴로 신부를 쿡쿡 찌르며 손으로 수애를 가리켰다. 신부는 건강하고 환한 웃음과 함께 어여쁜 각도로 꾸벅 인사를 했다. 하얀 웨딩드레스, 하얀 면사포, 하얀 테이블 보, 하얀 작약, 하얀 호접란, 투명한 꽃병... 결혼식에는 상징물들이 많다. 결혼식에서 하얀 많은 것들을 선호하는 까닭이 뭔지 수애는 문득 궁금해진다.


목표를 잃고 혼자 섬에 표류했다고 생각한 어느 날, 그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빠의 죽음이 그녀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여러 날 먹지도 잘 수도 없었다. 영옥은 배우자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보다 아빠의 죽음이 더 중요한 것처럼 자신의 감정에만 빠져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이 든 딸을 보며 원망스럽기도 했고 깊은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무엇이 수애를 그토록 힘들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영옥의 의미 심장한 눈과 그것보다 더 진한 표정을 보면 그 이유나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상실감 이후 수애는 동네 공원을 걸으며 시간과 세월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에 감격해서 울었다. 잘 차려지지 않은 밥상에 혼자 앉아 입안 가득 상추쌈을 넣으면서도 소리 내어 울었다. 창밖 세상을 눈여겨보며 그녀를 제외한 세상 모든 곳에 행복이 넘쳤고 돌아다니는 것 같아 그들이, 그들이 살아내는 삶이 원망스러웠다. 우울증이라는 병명은 최근에 그녀가 자신을 조금씩 찾아가며 알게 되었다. "다행이야." 수애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영옥은 자신의 감정과 수애의 것은 빛과 색이 다르지만 수애를 이해했다. 그러면서도 내면에 부정적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깨닫는다. 수애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엄마인 자신의 감정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결혼식에서 돌아가며 담아가는 감정은 수애가 인지하는 한 설렘이다. 승연과 신부의 미소, 그들의  걸음과 동작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분명 설렘이었다. 한때, 스승과 제자의 인연에서 시작해 새로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을 해 나가는 그 아이를 보며 새로운 다짐을 했다. 순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학토론에 퐁당 동아리가 떠올랐다. 귀갓길 석양 주변으로 해가 뚝 뚝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보며 또다시 아이들과 나눌 주제를 정리해 본다. 동아리 친구들과 나눌 이번 주제, 실생활 문제는 '수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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