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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Jun 15. 2024

같은 거리에 버스 정류장을 세우려면

실생활에 이용할 수 있는 외심 문제

현중이가 그려내는 설명을 무심한 듯 듣고 있던 윤이가 갑자기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여기저기서 잘 듣고 있던 멤버들도 한껏 웃으며 박수를 쳤다. 수애는 갑자기 멤버들의 일체감이 강조된 박수 소리와 아이들의 미소를 바라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난 글 이어서


윤이는 부모님이 함께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삶에 대해 어릴 때 가졌던 부정적 감정과는 달리 커가면서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생각하는 횟수와 시간이 나이나 성장만큼 잦아졌다. 할머니는 윤이가 생각하고 그려내는 세상 대부분을 지지해 주었고 가끔 그런 세계가 정말 궁금하기도 하셨다. 그것만으로도 할머니와 함께 할 때 윤이의 만족감은 매우 컸다. 할머니는 윤이가 확장해 나가려는 세상을 살피며  염려지만 그 바탕에는 사랑과 신뢰가  깔려있었다. '먼발치'라는 거리를 지켜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할머니가 부모님보다 윤이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그 거리를 잘 지켜주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윤이가 낸 논제는 사실 할머니가 무심코 뱉어낸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지난여름 윤이와 할머니가 여름날 오전 산책 중이었다. 할머니는 집안에 틀어박혀 여름방학 내내 후덥지근한 공기만을 들이마시고 내뱉지 못하는 윤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방학 후 여러 날이 지난 시간 몇 번이고 설득하고 달래서 드디어 아스팔트가 열기로 달아오르기 전에 윤이와 집 밖으로 첫발을 내딛던 날이었다. 조금만 걸어도 콧잔등이며 인중, 눈 아래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힐 때 멀리 시원하게 물이 분사되는 분수를 발견했다. 벤치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그곳에서 어린아이  명이 뛰어놀고 있었다. "햇볕이 가려진 그늘에서 꽃을 보고 앉아서 얘기할 수 있는 벤치가 있음 정말 시원하겠다." 할머니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현중이가 내심을 이용해서 스프링클러의 자리를 정한 벤치 만들기 발표가 끝나자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수애의 귀를 자극했다. 수애는 아이들을 돌아보다 윤이 쪽에서 시선을 멈췄다. 윤이의 눈빛은 맑았표정은 그것보다 더 밝았다. 고교시절 수애는 자신의 학교에서 열정이 넘쳤던 수학 선생님을 떠올랐다. 선생님의 별명은 숲 속의 빈터였는데 아이들이 지어준 별명은 수애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달랐다. 수애가 어릴 적 즐겨봤던 만화가운데 '개구쟁 스머프' 있었다. 벨기에 창작 만화에 등장하는 가가멜이 영락없이 선생님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과 가가멜은 비록 동기는 달랐을지 모르나 연구할 때와 열정이 넘칠 때의 표정과 눈빛은 가가멜보다 더 진지했다. 무엇인집중할 때의 선생님 모습은 진지했으며 습관적으로 하는 동작도 있었다. 쓰고  있던 안경을 분필을 잡고 있던 오른손의 검지 손가락을 이용해서 깊고 길게 누르면서 사뭇 당신에게 머무른 그날의 화두나 생각을 정리하며 진지함을 드러내곤 하셨다. 수애는 주변의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큼 그 선생님의 진지함을 좋아했고 자신도 뭔가에 빠진다면 그런 모습으로 비친다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윤이가 무엇인가 열정적으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갑자기 고교시절 수학 선생님이 떠올랐던 건 열정 이후 그 단어가 주는 몰입이라는 분위기 덕분이었을까.


웅성거림이 계속되는 가운데 생각에 빠져있던 수애의 생각 회로를 멈추게 한 건 현중이가 지난 논제를 다시 읽고 자신이 낸 문제에 집중해서 발표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현중이네 집이 이사 간 그곳에는 그때까지 상가나 교육 등 주변 환경 제대로 형성되기 전이었다. 부모님 직업의 영향으로 여러 번 이사를 다녔기에 현중이 내면에이제는 뭔가 정착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남아있었다.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 매번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장소에 애착을 갖는 게 쉽지 않았다. 그 시간이 쌓이자 부모님도 조금씩 현중이 눈치를 보게 되었다. 사춘기가 시작되었을 무렵 하게 된 이사는 세상과의 새로운 관계가 아닌, 현중이를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학 토론에 퐁당 동아리는 현중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관심이 생겼고 특별함에 정착하게 했다. 누군가가 부르거나 그 아이를 그곳에 불러들인 건 아니지만 현중이 스스로 그런 마음에서 동아리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런 현중이에게 새로운 단지 내 버스 정류장의 위치를 수학적인 요소로 찾아낸다는 건 자신에게도 호기심 가득한 일이었다.


현중이가 다시 지난 시간의 논제를 읽고 설명을 했다.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듣던 친구들 모두 이젠 뭔가 좀 이해가 되는듯한 표정으로 현중이를 바라봤다.  "단지에서 같은 거리에 버스 정류장을 만들 가장 정확한 방법은 외심으로 풀면 됩니다." 하고 민하가 큰소리로 말하며 앞으로 성큼 나갔다. 보드에 도로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의 단지 정문 세 곳에 표시를 하고 그곳을 연결해서 삼각형을 그렸다. 그곳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외심을 체크했다. "외심의 정의는 외접원의 중심입니다. 또한 알고 계신 것처럼 삼각형의 세 변의 수직 이등분선들의 교점입니다. 외심의 성질은 원의 반지름이기도 합니다. 그 반지름은 꼭지각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습니다. 여기 체크된 외심에 버스 정류장을 세우면 됩니다." 민하의 발표가 끝나자 수애는 친구들을 돌아보며 혹시 다른 의견이 있는지 진지하게 묻는다. 친구들은 의견이 모두 같다고 말했다.


잠시동안의 침묵을 깨고 묵묵히 지켜보던 한결이가 중얼거리며 수애를 향해 뭔가 다른 의견을 냈다. 그는 '무게중심'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뱉어 냈다. 그러더니 "저 역시 외심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무게 중심을 그려놓고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해요." 하고 무리수를 둔다. 앞으로 나간 한결이가 보드에 세 지점을 그리고 무게 중심의 정의를 이용해서 중선들의 교점을 찾았다. "무게중심은 중선들의 교점이며 그 성질로 들어가면 무게중심은 꼭지각으로부터 그 길이를 2:1의 비로 내분합니다. 길이가 아닌 길이의 비가 일정한 무게중심을 버스 정류장으로 정하기엔 각 단지로부터의 거리에서 확연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2:1이라는 비가 같을 뿐이므로 거리가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한결의 발표를 들으며 수애는 두 번의 시간에 걸쳐 논쟁을 펼쳤던 동아리의 첫 번째 나눔이 끝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그것이 회의실에 함께 모인 아이들의 도피처나 도약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세상과의 관계를 새로움으로 시작한 관문으로 첫발을 디딘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다음이라는 시간에 괜한 부담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나 곧 다시 시작될 나눔을 기대하는 내면의 소리에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놀랐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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