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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Jun 07. 2024

기대를 담은 희망을 품은 웃음

내심으로 풀어낸  분수를 품은 벤치

두 사람이 멤버들에게 낸 문제는 창의력이나 수학적 사고만을 요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두 친구가 쭉 생각하고 제안했던 문제의 바탕에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이 들어가 있다. 그 바탕에는 내면에 깔려있는 사랑 안의 '배려'가 첫 토론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성취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수애는. 조금 유연해진 윤이와 용기를 내 준 현중에게 감사함이 넘쳐 새로운 벅참으로 이어졌다. 수애는 기대하고 있다. 수애는 앞으로를 더 기대한다. 함께 나눔을 했던 퐁당 토론 동아리에서 그들은 희망이란 단어로 가슴이 점점 부풀어 올랐고 오늘의 배려와 관심으로 새로운 내일을 기대할 수 있었다. ->5화 이어서


내일이면 다시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수애는 동아리 멤버들을 좀 더 잘 파악하려고 아주 간단히 메모되어 있는 8명의 자기소개서와 나이 등을 확인하며 지난 첫 토론에서 아주 긴 시간 집중하고 있었던 아이들의 눈빛을 떠올렸다. 3시간 내외에서 끝날 줄 알았던 토론 시간이 4시간이 훌쩍 지났었다. 논제를 각자에게 과제로 생각해 오는 책임이나 즐거움 정도로 남기지 않았다며 시간은 어느새 5~6시간이 지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수애는 다음 시간을 위해 마무리를 해준 윤이가 고마웠다. 미소에 흐뭇함이 묻어 그 시간 윤이 모습이 점점 생생해진다. 윤이의 용기는 무엇일까. 호기로움에 대한 그녀의 실천의 태도는 어디서 온 것일까. 또래보다 왜소해 보이지만 강단 있는 그녀의 태도에 가끔 수애는 어른인 자신이 기대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이번에도 퐁당 토론을 하며 수애는 머리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쯤이면 토론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무어라 정리하고 중간에 이어지는 흐름을 어떻게 끊어야 할지. 한 명 한 명의 눈빛과 상처를 줄까 염려되는 그녀의 사소한 마음이 읽히는 거 같아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때 윤이가 여유롭게 나타났다. 현중이와 함께. 윤이가 논제를 과제나 미리 생각해 올 문제로 남기지 않았다면... 생각과 아이들의 모습 사이를 오가며 열심히 뜀박질하던 수애는 언제부터 깊은 잠으로 넘어갔는지 먼 언저리에서 주변을 요란스럽게 해서 그녀의 생각을 방해하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서 자신이 잠에서 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햇살이 창을 넘어 수애가 누워있는 방구석을 헤집고 들어왔다. 굵고 은 여려 빛들이 자기들의 밝기와 깊이를 서로 뽐내기라도 하듯. 어쩐지 오늘은 더 기대된다. 현관 입구에서 신을 신으며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정리하다 거울 속 다른 세계에 잠시 눈을 돌렸다. 지난 시간 마지막 질문을 떠올리며 수애는 자신이 생각한 방향과 아이들이 첫 시간 보였던 토론 분위기를 생각하니 흐뭇해진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마지막 문제를 냈던 현중이를 잠시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식탁을 정리하던 어머니가 어제저녁부터 수애에게 잊힌 핸드폰을 급히 전하는 게 아닌가. 폰을 가져다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저 정신에 언제까지 혼자 지내려고 하는지. 사람은 자고로 태어났으면 남이 하는 건 다 해보고 죽어야지.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 언제까지 엄마랑 살며 재미없게 보내려고 하누?" 출근할  때 할 얘기는 아니었지만 경옥은 그동안 맘에 담고 있었던 속내를 촌각을 다루는 바쁜 아침 출근시간에 속사포처럼 딸에게 내뱉고 말았다. 거울을 보며 혼자 중얼거리는 수애가 안쓰럽기도 고 얼굴에 미소까지 보이자 내심 걱정이 되었다.


경옥은 슬하에 딸 둘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아들은 결혼 후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들다고 숨이 막힌다고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서로 각자 자리를 인정한 것이 벌써 10년이 지났다. 먼발치에서. 그 순간 경옥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으나 어머니가 같이 가도 함께 하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아들의 성의 없는 책임을 담은 언어에 더 화가 났던  같다. 오기를 부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한국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같았다. 경옥은 환경이 많이 다른 며느리와 한집에서 지낸다는 일이 마치 삶에서 새로운 관문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했다.

남편이 몇 해 전 세상을 떠났고 이후 경옥의 걱정은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수애뿐이었다. 경옥은 자신이 수애를 자유롭지 못하게 옭아맨 것은 아닐하는 고민에 빠졌다. 늙은 게 죄일까. 늙음에 대해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 같아서 어느새 지금 나이가 되어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가끔 자신을 괴롭히며 불쑥불쑥 올라오는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자신 앞에 서 있는 딸에게 경옥 자신의 시선이 더 담겼을까. 아련하게 서있는 수애를 바라보고 눈인사를 건네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수애는 자신이 잠시 딴생각을 한 것 같다며 허둥지둥 문을 열었다. 다녀오겠다며 크게 외치던 소리는 현관문이 닫히면서 함께 작은 메아리로 사라졌다. 경옥은 수애가 떠난 자리에 시선을 고정하며 한참을 그대로 서있었다. 늙은 부모를 둔 자식의 업보를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이 커지자 눈물이 흐른다.


도서관으로 가는 동안 주변을 전혀 살피지 못했다. 도서관에 도착해서도 수애는 마음이 바쁘다.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잠시 거울 속 다른 세계에 사로잡혀 결국 허둥지둥 시간에 쫓기는 꼴이라니. 한 번씩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자신을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헐레벌떡 뛰어서 토론방 문을 열자 그제야 숨이 가쁘다는 것을 눈치챘다. 헉헉 거리며 강의실 전체 공기를 살폈다. 벌써 모두 모여 있었다. 토론에서 오늘 마지막 출석자는 리더인 수애였다. 수애가 헐떡이며 문을 열자 모두 동그랗게 눈을 뜨며 한눈에 수애에게 집중했다. 그들의 열정에 갑자기 행복해진다. 수애는 벅찬 감정을 억누르며 지난 시간 마지막 논제를 정리해서 다시 올렸다. 윤이와 현중이가 낸 문제를 다시 정리하며 뽑아온 A4프린트 용지를 나눠주면서 아이들과 설렘으로 눈빛 교환까지 마쳤다.


윤이가 낸 논제를 요약한 첫째장을 모두에게 전달했다.


논제 1.

싱그러운 봄 끝자락에 있다 보니 더운 날이 잦아지네요. 한 낮, 태양과 마주하며 아파트 곳곳, 공공장소나 주변으로 분수가 시원하게 물을 뿜어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동네 공원 근처에 아주 작게 분수대신 물이 흐르고 있지요. 그곳에서 흐르는 물은 뭔가 시원하기보다는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태양빛이 강한 요즘 가능하다면 제가 그려온 시원한 벤치를 만들고 싶습니다. 첫째, 삼각형 모양의 화단 밖 벤치에 물이 튀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최대한 많은 꽃에 골고루  물을 주는 위치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고 합니다. 분수의 물이 벤치에 닿거나 튀지 않아야 합니다. 분수까지 가장 가깝게 삼각형 모양으로 벤치를 만들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천천히 생각해 보시길 부탁드립니다.


논제 출제자는 웃고 있다. 기대를 품은 웃음일까. 희망을 담은 웃음일까. 수애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마음을 다졌다. 윤이는 멤버들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눈으로 누군가 함께 풀어냈으면 하는, 그 과정을 함께 하고픈 마음이 목적인 것처럼 선명한 미소가 역력하다. 두 번째 논제를 낸 현중이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며 자신이 풀어낸 풀이 과정을 확인하더니 앞으로 나갔다. " 저는 여기서 내심에 대해 끌어 내 보겠습니다. 내심은 각 변의 수직 이등분선들의 교점인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내심을 중심으로 해서 그릴 수 있는 내접원입니다. 내접원에서 반지름의 길이는 모두 같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어디에서나 그 길이가 같은 내접원의 반지름 길이입니다. 바로 물줄기가 최대한 춤을 추며 끝까지 뻗어 움직일 수 있는 최대 거리이기도 하고요. " 현중이가 그려내는 설명을 무심한 듯 듣고 있던 윤이가 갑자기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여기저기서 잘 듣고 있던 멤버들도 한껏 웃으며 박수를 쳤다. 수애는 갑자기 멤버들의 일체감이 강조된 박수 소리와 아이들의 미소를 바라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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