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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Jun 29. 2024

일상에서 찾은 수열

자연의 범위에서 계절이 이루는 규칙

승연이의 결혼식에 다녀온 후 수애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설렘인가. 그들의 찬란한 앞날을 축하해 주고 새로움, 시작이라는 기대대신 당장 내일 만날 동아리 회원들과 나눌 과제에 대해 생각이 많다. 결혼식 안에서 찾았던 수열과 일상에서 찾은 규칙을 나누려고 준비하고 있다. 승연이의 결혼식은 그녀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주었다. 동아리 회원 전체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동아리 회원 여러분, 편안한 시간 보내고 계신가요? 내일 나눌 실생활 토론의 주제는 수열, 규칙입니다." _수애선생님_


"늦었다!"

옥은 수애가 어젯밤 뒤척이느라 새벽 늦은 시간에서야 겨우 깊은 잠에 든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새벽녘, 아침 일찍 깨울 수가 없었다. "세상 가장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엄마가 동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군. 엄마가 아니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옥은 중얼중얼 생각이 많다. 최대한 시간을 미루며 최소한의 준비를 하고 바삐 나갈 시간만큼 기다렸다 딸을 깨웠다. 수애는 영옥만큼 계획적이지 않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는 일의 순서를 확인하지도 못한 채 허둥지둥 보낸 시간이 벌써 10분이나 갈아먹고 있었다. 바쁜 아침 시간 10분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시간인가.


이후에도 옥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녀는 시간 안에 준비를 끝내지 못하고 급히 집을 나섰을 것이다. 너무 서두른 나머지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서 아주 얕은 턱도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 그것에 걸려서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넘어졌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거슬러 생각해 보니 막상 생각에 사로잡혀 얕은 턱의 희생양이 된 것도 얼마나 많았는가. 그 순간 그녀의 뇌리에 꽂히는 가장 중요한 대처 방식 중 하나는 누구나 그렇듯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구의 시선을 끌었을지 모른다는 의식 아래 재빨리 그곳에서 도망쳐야 했다. 벌써 태양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색을 감추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200미터만 걸음을 옮겨도 그녀는 상처가 자신의 것이 아닌 듯 의기양양 가던 길을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도서관으로 토론을 위해 바삐 옮기는 발걸음 주변으로 요즘 거리 곳곳에서 만개했다 떨어지는 벚꽃 잎은 원주율을 그렸다. 가창 찬란한 숫자를 의기양양 방출하며 최대한 아름다운 자태로 뽐내듯 떨어진다. 만개한 벚꽃 잎 사이로 선명한 하늘이 고개를 내민다. 선명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진해지고 배경이 되는 파란 하늘 아래에 있는 벚꽃 잎은 바람이 살짝 불어 운동방향을 돕자 찬란함이 극에 달한다. 흐드러지며 꽃잎이 하나씩 쏟아진다. 아름다운 그 아이를 벚꽃잎이라 부른다. 그 아이가 쏟아지기 전 잠시 머무른 팝콘 기계 나무가 벚꽃이다. 그 근원은 민족 간의 아픔과 상처가 될 수 있겠지만 봄을 닮은 아이를 보면 어느새 부정적 현실은 모두 사라진다.

정신적 사랑, 삶의 덧없는 아름다움, 순결, 의식의 아름다움이 흩날리며 흩날리며 원주율을 그려낸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원주율을 그려내던 꽃잎이 바닥에 닿는다.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때 그것들은 팝콘 기계에서 뿜어져 폭발했다 내려오는 폭죽을 닮은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은 처음 벚꽃 가지 위에 싹을 틔웠을 때, 2에서 4, 8,16,32,64,128,256,512,1024...

그렇게 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수열이다. 수열을 이루고 있었다. 꽃잎이 이루는 수의 규칙은 등비수열로 이루어져 있다. 최초의 팝콘의 개수가 a개라면 시간에 따라 튀겨지는 팝콘의 개수는 a×r^ (n-1)이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까지 벚꽃 나무가 꽤 많다. 수애는 몸을 돌려 걸어온 길을 다시 보았다. 길 양쪽으로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벚꽃 잎은 하나의 나무에서 기하급수적으로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펑펑~ 펑펑~ 공비가 3일 때 4일 때... 상상의 나래를 펴고 걷고 있을 때 도서관이 벌써 수애의 눈앞에 있었다.

혹시 토론 동아리 친구들과 마주할까 기대와 부담을 한꺼번에 안고 주변을 살폈다. 수애는 자신의 기대감이 과하다는 느낌이 들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동아리 회원들이 모인 교실 문을 살짝 열었다. 어제까지 연락이 없었던 멤버 중 누군가가 갑자기 생긴 일정으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까 봐,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일까. 교실 안을 살짝 살펴보며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동아리 회원 모두 수애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숨이 턱 막혔다.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 아이들은 싱글벙글 시끌벅적 웅성거렸다. "선생님이 먼저 제안하시는 오늘의 실생활 활용문제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아침에 눈이 번쩍 떠졌어요." 윤이나 한결이 18세의 다른 친구들보다 한 살 어리고 귀여운 우영이가 말했다. "맞아요. 저도요. 30분이나 일찍 왔다고요." 영성이가 친구를 도와서 한마디 거들었다. "오~ 그래? 그럼, 지금부터 조용히 하고 선생님 이야기에 집중해 보렴." 수애는 갑자기 신이 났다. 친구들이 준비해 온 문제도 더 궁금해졌다.


"2019년 시작된 우리나라를 휩쓸고 다닌 바이러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는데 친구들의 관심이 필요하단다. 지금도 앞으로도 코비드_19만큼 강력한 바이러스의 확산이나 변이종은 없을지도 모르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일지도 모른단다. COVID_19의 팬데믹 상황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인식과 연구, 경각심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고 그 예방책은 '차단'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마스크 착용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단다. 너희들도 기억하고 있지? 이제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란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바이러스 확산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지역에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생했어. 제일 처음 도서관을 방문한 어느 한 사람이 외부에서 감염되어 왔다고 가정했을 때, 이 바이러스는 두 배로 감염자가 증가한다고 하자. 그렇게 도서관을 이용한 이용자는 원인도 모르고 도서관 곳곳에서 감염이 될 거야. 그들은 도서관 외에 외부나 각 가정에 돌아가서도 기하급수적으로 바이러스를 퍼트릴 수도 있지. 그렇게 한 명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10일 후, 20일 후면.. 총 몇 명을 감염시킬 것인지. 숫자로 닿아야 인간의 경각심이 더 확실해지리라 믿기에 수치화해 보려고 해.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예방책은 무엇일지 의논해 보려고 하는데. 예방책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 있는 마스크를 잘 착용하는 것 외에 수학적 접근으로 이해하고 한 번 새롭게 시도해 볼까 하는데. 어떨까 얘들아! 선생님은 친구들을 믿는다. 너희가 우리의 미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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