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시간이 자신에게 배려한 여유로움을 대신해다시 정리해야 할 생각들, 재독 할 책들을 쌓아둔 자리가 나를 옆으로 슬며시 밀어내고 '업'을 위한 또 다른 일을 앞에 두고 조금 답답한 맘으로한숨을 뱉어내며 그것들을 바라본다. 오늘 내 생각들과 함께 다독이고 추스르며 정리해야 할 일들이 층층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새벽, 소중한 긴 시간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재독 하며 보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의 의미에 대해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왜 이렇게 하염없이 흐르는 걸까...? '인류애'와 같은 거창함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광활한 코스모스 안의 나는 비록 먼지나 티끌보다도 작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이란 감정에 대하여 원시적, 거시적으로 들여다볼 때 그 관점이 같아서 일까? 새벽시간의 일들 또한 밀리고 해치워야 할 것들을 어쩔 수 없이 이행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일들이 소중한 경험이며 그렇게 변화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 또한 뿌듯함이고 행복이라고 돌아본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건 관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다.
아침 단상에서 깨어나 애매한 시간 샐러드와 빵으로 브런치를 하기로 한다. 딸과 함께 하는 귀한 시간이니 기대만큼 맛을 제대로 즐겨 보려고 했다.
그런데, 일어나서부터 뭔가 예고 없이 부정적 모습들을 보이며 그 에너지를 전달하는 딸에게 변화를 위한 위대하고 소중한 경험들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본다. 대화중에 일요일 오전부터 그녀를 온통 부정적으로 만든 건 바로 오후에 하게 될 논술 수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뭔가 부정적인 요소가 강할 때는 그 요소의 원인들은 아주 세세하게 다르다. 모든 것에는 각자 입장에서의 정당화된 이유가 있다.
토론 수업으로 진행할 때는 재미있지만 요즘은 토론이 별로 없고 읽기 힘든 책을 계속 읽어야 하며 무엇보다 논술 선생님의 독단적 자세에 거부반응이 점점 커졌다고 말한다. 물론 아이가 자신의 관점에서 전달한 내용이다. 자신의 입장에서의 진실된 마음이다. 마음 가짐의 중요성과 누군가를 대면할 때 처음부터 벽을 만들지 않고 긍정 에너지를 전달해야 그 기운이 다시 서로에게 발산된다고 얘기하며 아이의 부정적인 맘을 살짝 건드려 봤다. 하지만, 아이에게 이 이야기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딸은 자신의 얘기가 호소력을 잃었다고 생각되었을 때쯤 다음에는 다시 눈물로 호소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오늘은 그냥 부정적 느낌의 상대에게 그들을 향한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대로 경험해보기를 강하게 강하게 권고했다. 아이는 그 관계를 불편해하며 미리부터 힘들어하고 자신이 쳐 둔 프레임 안에 근접하지 못하게 했다. 오늘 딸의 눈물이 호소력을 잃은 것처럼 내 설득력도 그다지 맘의 동요나 위로가 되지는 못하는 거 같다. 프린트를 핑계 삼아 잠시 외출을 하겠다고 말하고 아이가 마무리 지어야 할 책에 대해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찾아주고 일단 집을 나섰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각자의 시간을 잠시 가져본다.
나는 진정 아이가 부정적 경험을 하든 긍정적 경험을 하든, 자신의 경험이니까 앞으로도 그냥 지켜볼 수 있을까? 아이는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대할 때의 태도에 있어서, 반응과 현상으로 드러나는 여러 경험들 이후 부정, 긍정적 판단이나 반응이 결과로 드러남에 있어서 기준이 지나치게 오만하며 자칫 '섣부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또, 아이는 항상 모든 상황에서의 반응을 미리 그 어떤 경험 이전에 자신의 섣부른 판단을 앞서 하려고 한다.
요즘 친구들의 '결핍의 부족'에서 오는 오만한판단과 같은 양상일까?
생각이 꼬리 물기로 깊어질 때쯤 갑자기 "지금의 이유 있는 이 경험들을 나에게 준 까닭이 있지 않을까"라는 판단이 선다. 아주 미세한 다짐으로 마음을 정리하자 오히려 오늘 갑자기 울어버린 딸이 더욱더 사랑스러워진다. 그와 같은 생각이 들자 아이에게 발걸음을재촉하며 움직이고 있던 발을 힘과 속도를 더하여 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딸의 눈빛은 여전하다. 하지만 다시 아이를 향한 사랑의 맘으로 제안해 본다.
"엄마랑 엄청 달달한 크로프 먹으러 갈까?"
"당 섭취를 제대로 하고 나면 주변이 아름다워 보일 거야."
아이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이것저것 얘기하며 서둘러 준비하기를 촉구했다. 함께 외출을 하면서도 연신 대화를 시도한다.변화되는 것은 앞서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들을 통한 것이며 그 경험을 통해 변화가 이루어지길 바라고 처음부터 스스로 미리 많은 것을 차단하지 않기를 다시 한번 진심을 담아 얘기한다. 긍정적 부정적 그 어떤 경험이든 두려워하거나 차단하지 않고 경험하길.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있을 때 아이가 문득 크로플은 자신이 사고 싶다고 했다.
달달하고 예쁜 {(크로플:크로와상 반죽을 와플 기계에 눌러 익힘) 외형-와플, 내면(맛)-크로와상} 크로플+초코시럽+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천상의(구름 위에서의 봄의 향연) 하모니
크로플(초코시럽)&커피
y=sinx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y=cosx
=》천상의 하모니(오일러의 공식)
e^ix =cosx+i×sinx
x=π 를 대입
e^iπ =cosπ +i×sinπ =-1+0
∴ 천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식 오일러의 항등식이 나온다.
오일러의 항등식
e^iπ+1=0
(단, e=2.7183....., 자연상수, 무리수
i=허수, 가상(허상)의 수: i^2=-1
π=3.141592....... 원주율, 무리수)
아이는 때론 덤덤하게 때론 시크하게 깊은 속을 드러낸다. 어처구니없게도 오늘 크로플을 자신이 사는 건 항상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말한다.
"그럼... 좋아, 음료는 엄마가 쏠게!"
그래서 나는 음료를, 아이는 크로플을 서로에게 한턱 내기로 했다. 달달하고 사랑, 귀염 움 폭발인 크로플을 한 조각 베어 물고 함께 커피 한 모금 입에 살짝 대니 내 귀와 눈에, 그리고 입으로부터 봄의 향연이 시작된다. 크로플과 천상에서 가장 하모니를 이루는 음료는 커피가 아닐까 싶을 만큼 서로를 더욱 깊고 때론 달콤하고 진하게 존중해준다. 모차르트 교향곡 21번이 내 귀를 사랑스럽게 만지듯 스쳐 지나간다. 스치다 귓불을 간지럽힌다.
봄 이 순간 아이와 함께 크로플과 커피를 마시며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너무나 소중하다.
둘이서 귀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딸아이가 말한 알고리즘이 재미를 더해 준다. 나를 호기롭게 한다. 웃음과 함께 놀라움을 준다. 외할머니라는 공식에 엄마라는 수식 값이 나온 것도 신기하고 엄마라는 새로운 함수 식에 너무도 다른 함숫값 '자신'이 탄생한 건 경이로움에 가깝다고 소리 높여 얘기한다.
f(x)=외할머니 =》 f(a)=엄마
g(x)=엄마 =》 g(b)=규림(자신)
(단, f(x)와 g(x)는 함수, a와 b는 상수)
크로플과 커피의 환상적 조합에 푹 빠져서 긴 시간을 보냈다. 아이와 나는 현실의 '봄 맛' 가득한 이 '봄 길'을 함께 걸어 나간다. 모차르트 21번 교향곡 2악장을 들으며 리듬 있게 떨어지는 벚꽃 잎들과 함께 봄을 춤추며 노래한다. 계절의 급변을 수식으로 나누며 '봄 향기' 진한 '봄 길'을 걸으며 그녀의 긍정, 부정적 많은 경험들에 의한 새로운 변화를 다시 한번 모두 응원한다.
'자아 찾기', '나를 찾아가는 과정'..... 또한 지식과 함께 내게 주어진 주변의 상황과 환경을 더 잘 해결하고 싶은 것도 지금 내가 '그것 앞'에서 여러 결과를 두고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거까지도 손에 쥐어진 '도구'에 대한 의지(욕심)가 아닐까 하고 잠시 고민해 본다. 그 모든 도구들을 때론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고 버리고 다시 새롭게 '나'를 마주해야 하는 건 아닐까... 삶에서 나를 알아차리는 과정과 수학이라는 것은 늘 함께 하고 있었다. 방향성도 그로 인한 목적도, 목적으로 가는 과정까지도 모두가 같은지는 알 수 없다.
과연 그 과정에서 나와 함께하며 마주 보는 수학이라는 학문 또한 도구일 뿐일까?
생각이 깊어지면서 상념에 빠진 자신을 '깊어짐'과 '풍성함'으로 착각하며 보낸 시간들을 돌아보고 '깨달음'으로 그 생각에 '힘'을 더하고 있다.
여기서, '힘'을 가한다고 생각하면 물체가 감속하거나 멈춤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멈춤에 힘(생각)을 더하면 움직임이 시작되고 더 나아가 생각의 깊이(가속도)까지 더해진다. 하지만, 복잡한 생각들(움직이고 있는 물체들 ) 속에 다른 생각(힘)을 더하면 복잡함이 정리 (속도가 줄어든다) 되거나 진행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이때의 v(t)=0
때로는 움직이는 물체에 (외부) 힘을 가하지 않아도 물체 자체가 갖는 마찰력으로 속도가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정지한다. v(t)=0에서의 위치는 최대, 최고의 높이를 나타내고 그때가 위치가 변하는 기준점이 되는 것이다. v(t)=0은 변화의 기준점이고 생각 전환의 시작점이다. 방향점이 되는 것이다. 결국, 최고의 위치를 만나는 순간은 v(t)=0 일 때, 그것이 곧 방향점이 되는 거처럼 지금까지의 '길'과는 다른 많은 여러 경험에서의 '최선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의 변화 (v(t)=0)'는 오일러의 하모니를 계절(삶)의 아름다움으로 알아차리고 깨닫는 순간이다.
크로플과 커피+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봄... =(봄의 향연). 이 시간 수학이 전하는 언어는 봄의 향연 바로 오일러의 항등식이다. 천상의 하모니를 넘치게 감상한다. 봄의 맛을 충분히 누리고 아름다운 수식으로 지금의 봄 안에서 그것들을 가득 채워 넣는다. 모든 감정을 담을 수 있는 문학 작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