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낙하운동 이후, 다시 비상하다

유한과 무한의 삶의 극한값

by 무 한소

새벽시간 고요함이 그녀를 자극하고 여기저기 숨어있는 숨소리가 M이 사유하는 틈을 비집고 나오려고 애쓰고 있다. M은 지금 좀 다른 꿈을 꾸는 중인지 눈빛에서 흐르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자신을 돌아보고 현재를 단단히 다독이며 '니체'가 전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실천으로의 도약을 위해 새벽의 긴 시간을 그녀만의 방법으로 보내고 있다.




M과 《어린 왕자》와의 인연은 참으로 길고도 깊다. 《빨강 머리 앤》이 그녀의 삶에서 사춘기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 생각과 마음 다지기를 건강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왔다면 《어린 왕자》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녀를 떠나 있었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던 거 같다. 항상 곁에서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매 순간순간 책을 집어 들고서 가슴으로 지지하며 두 팔 가득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었다. 그때마다 읽어내건 그냥 가지고만 있었건 그녀가 세상을 잠시 등지고 싶었을 때, 또는 삶이 뻥뻥 뚫린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을 때, 어른이라는 집합 속의 삶이나 사회에 지나치게 빠져있거나 삶에 깊이 개입되어 있을 때에도 자신을 잠시 돌아보려는 노력, 그 시간이 정말 필요할 때는 내 품에서 내 손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도 어린 왕자에게 집착 아닌 집착을 하는 것은 그녀가 속한 집합에서는 이젠 더 이상 찾기 어려워진 '어린 왕자'가 가진 순수함 때문이었을까? 어린 왕자만이 가진 우리들 가슴속에 파고들 수 있는 순수한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곧 M은 어린 왕자와의 사랑을 꺼내어 그와의 인연을 풀어 보려고 한다.




어린 왕자와의 인연을 다시 꺼내 준 매개의 역할을 한 것이 있다. [1001호 반상회]라는 독서토론방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눔의 공간, 위로의 공간이 있다. [1001호 반상회]에 가벼운 맘으로 달려가서 편안하게 뱉어 낸다. 강제성이나 의무감으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답답하고 불안한 맘으로 달려갔을 때 누군가가 나타나 뭔가 해결책을 주는 것도 아니며 어떤 이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있는 줌의 공간으로 들어가서 먼저 아이컨텍을 하고, 이후 안정감이 느껴지면 닫힌 내면에 쌓여있는 것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쏟아냄에 대해 지적보다는 나눔을 시작한다. 속의 그 공간에서는 각자 이야기가 자신만의 고민이자 서로의 생활이며 그녀의 스토리가 그들의 이야기가 된다.


먼저 오늘의 새로운 멤버 깜장 작가님의 (self) 자기소개의 시간이 있었다. 첫인사를 하는 순간부터 단단함이 예사롭지 않은 작가님은 걷기 전도사이다. 작가님의 말씀 하나하나는 걷기에 집중되어 있었고 걷기로 그녀가 다시 살게 된 새로운 삶을 강하게 전달했다. 육체와 정신까지 모두 건강하게 만들어준 걷기를 여기 [1001호 반상회]에 모인 분들께도 반드시, 꼭 하기를 권하는 게 아닌가? 현재를 몸소 체험했고 그것으로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알고 있기에 혼자 알고 있는 즐거움보다는 나눔을 선택한 것이다. 걷기는 작가님의 선택이었지만 이후 걷기라는 것이 작가님의 삶에서 얼마나 큰 변화를 주었는가? 걷기가 소재도 되고 제목도 되며 주제가 되는 책을 쓰셨고 그것으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으셨다. 여전히 걷기에 대한 작가님의 경이로움과 찬사는 진행 중이다.


아픔을 겪고 있었던 작가님의 생각이 건강하게 변함으로 가족 간의 긍정적 시간도 매 순간 충분히 누릴 수 있었고 현실에서 아이에게는 생생한 경험을 하게 하신다. 아이들과 함께한 소소한 걷기가 시간과 마음이 점차 더해지며 3일이 일주일로 그리고 2주로, 3주로 그리고 마라톤으로까지... 도전을 하셨다. 새로움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보물들을 얻은 셈인가?




깜장 작가님의 변화와 따뜻한 맘을 전달받으며 문득 인간의 삶에서의 무한과 유한의 경계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 사람들은 삶이 유한하다고 혹은 무한하다고 생각할까? 양극단에서 내가 생각하는 삶은 어디에 가까이 있는 걸까? 무한의 삶 가운데서 유한을 살고 있는 우리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한계치는 무한과 유한 어디에 가까운 것일까? 이 질문에서는 벌써 답을 의식이라도 한듯한 표현 '한계치'라는 단어가 나왔다. 한계라는 건 끝에 이르다. 끝이 보인다. 끝에 가까워졌다. 극한값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극한은 값 자체가 정확하지 않기에 근삿값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극한값은 구할 수 있다. 그것을 유한의 값으로 하자는 일종의 수학적 약속 같은 것이다. 알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수학적으로 극한값이 존재함은 어떤 함수가 연속이 되기 위한 통로, 조건 같은 것이다. 그러니 유한인 것은 무한의 조건으로 마치 공통처럼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은 이제 몇십 년 후면 끝나는 유한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의 딸과 아들을 통해서 그리고 다음 세대에 의해서 인생은 거듭되고 있다. 그것은 곧 우리들의 삶이 무한함을 증명해준 예라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극한의 수학의 언어는 극한값으로 나타나는 무한의 삶 역시 조금 더 건강하게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유한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 낼 때, 마침내 무한의 삶까지의 여정이 조금 더 안정되고 순탄할 거라 전한다. 잠시 흔들렸던 M이 마음을 잡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건 줌 공간의 작가님들과의 소통과 나눔으로 가능했다.




삶의 순간도 마찬가지다. 삶을 살고 있는 어느 순간 우리는 끊임없이 낙하를 경험한다. 낙하는 지구의 운동 중에서 중력이 작용되어 그 질량이 클수록 더 빠르고 깊이 내려간다. 그렇다고 낙하 운동을 할 때면, 그때마다의 삶은 나락으로 끝이 나는 걸까?라는 생각이 뇌의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자 앞서 있는 두려움으로 깊은 번뇌에 다시 빠진다. 낙하운동도 그 시작점은 존재할 것이며 근원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낙하는 새로움으로 좀 더 단단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비상하려는 새 처럼 그 힘을 더 강하고 크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 본다. 어른인 내가 그 깨달음을 얻는 데까지는 긴 여정을 지나왔으며 지금도 그 과정 위에 있는 것처럼 비록 냉정해 보이겠지만 지금의 청소년들 역시 긴 낙하 운동을 제대로 정확하게 경험해야지만 다시 떠오르는 비상을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결국, 낙하 운동은 좀 더 바른 비상을 좀 더 좋은 각도로 다시 정확하게 하고자 새롭게 시작되는 비상을 위한 전 단계라고 생각한다. 마치 진자의 움직임처럼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질량과 속력에 따라 양 극으로 움직였을 때보다 가운데로 갔을 때 속도는 점점 증가한다. 증가한 속도는 최고의 빠르기에서 방향을 바꾸어 다시 양끝으로 갈 때는 탄력이 이용된다. 그 탄력으로 양끝의 최고 높이에 다다르면 그때는 속력 v(t)=0 이 된다. 그것은 일시적인 멈춤이지만 새로운 곳으로의 도전, 다른 도약의 시작이다. 방향점을 틀어 그 기준으로 다시 비상하는 것이다.


어린 왕자로 시작된 이 이야기의 요점은 삶에서 우리는 시시때때로 낙하를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각자의 방향점, 전환점의 시점과 방향은 다를 것이다. 그녀의 인생에서 그 방향점 역할을 해준 건 바로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들이었고 그중에서도 그녀가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항상 옆을 함께 해 주었던 《어린 왕자》가 있었다. 오늘 다시 만난 어린 왕자는 그 어느 때보다 급격히 낙하하고 있지만 이제는 덤덤히 그 순간을 겪고 있는 그녀를 차분히 위로하고 있다. 끝없이 낙하하는 거처럼 보이지만 M은 낙하의 극소점 v(t)=0인 적절한 시점에서 방향을 전환해서 다시 높이 높이 오를 것이다.


다시, 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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