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조=9(터트린 꽃망울의 길)의 역사

지키려는 자와 지켜지는 곳

by 무 한소

어느 해 사월

봄볕을 잔뜩 받고서 콧노래가 저절로 나올 법도 한데 꽃샘이 아직 시샘하는지 새로운 마음이 겨울에 느껴지는 한파를 대신해 맑지 못한 바람 소리를 낸다.




우리 집 나의 공간

매일 그녀의 움직임이 그득한 공간, 그곳은 자신이 호흡하는 미세한 움직임에도 관심의 모습으로 그녀에게 집중한다. 그 의식이 흐름을 잃고 어딘가에 무료함을 앞세워 봄기운을 흡수하기 위해 살짝 열어 두었던 창틈 사이를 바람을 타고 비집고 들어온다. 이미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인지 아니면 평온한 안도감의 역동적 표현인지 그녀의 고개는 꾸벅꾸벅 무의식의 자유로움에 내맡겨졌다. 잠시 꾼 꿈이지만 그 편안함이 영원의 즐거움으로 남길 기대해본다. 번의 찰나와 순간이 그녀의 고개와 함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아래로 떨어진다. 간만의 자유로움이고 안도감이다. 무르익은 봄볕과 나른함이 적당한 주말 오후에만 느낄 수 있는 무료함을 맘껏 즐기는 중이다.


디지털시계의 오후 4시 50분이라는 숫자보다 자연이 주는 그 숫자가 그녀의 몽롱한 의식 속에 꽂힌다. 떨어진 고개를 의식을 갖고 치켜세우며 무의식인 듯 느껴지는 그 세계에서도 남은 일정들을 순서대로 나열해서 옮겨 적는다. 그때서야 남편이 곧 도착한다는 것을 급히 깨닫는다. 갑자기 의식도 동작들도 빠르게 움직인다. 순간 다음 일정들이 마치 짜인 데이터가 순서대로 정리되듯 하나씩 혀를 내밀며 불쑥 튀어나온다. 우리가 함께 강화를 향해 출발해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으며 무료함 속에서 꽃놀이를 즐기던 그녀의 무의식을 급히 끌고 나왔다.




차는 일산대교를 가로지르며 달려가고 있다. 밀폐된 자동차 내 공간에서는 남편과 그녀 둘만의 모습이 보인다. 저물어 가는 오후 햇살은 끝이 보이지는 않지만 길게만 뻗어있는 긴 도로 위를 끊임없이 달려 나가던 우리 차가 마치 목표물인 거처럼 마지막 남아있는 빛 하나까지도 쫓으며 놓치지 않는다. 빛이 조금씩 자리이동을 하고 도로 가운데를 달리던 차가 한쪽으로 벗어나자 '강화'는 우리 곁에 점점 다가온다.


강화 가는 길

곳곳에 벚꽃잎과 함께 이미 터져버린 꽃망울들이 봄을 알리며 여기저기에서 메시지를 보낸다. 이곳은 우리의 시간을 평균 1~2주쯤 늦춰주고 그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 현실에서 체감하는 시간은 편안하게만 느껴진다. 자연스러운 편안함이 전하는 기운으로 그녀의 시선과 마주하는 봄의 시간들을 맘껏 감상하고 있다. 아직 시작도 전인 봄의 축제로 들어가 기분을 만끽하는 중이다. 가는 동안 남편과 그녀가 함께하는 차 안 공기가 다소 무겁게 느껴져 창을 활짝 열어 보았다. 경쾌함이 코끝을 스치고 상쾌함이 한 움큼 들어오자 분위기가 좀 전환되고 그제야 강화에 대해 '강화 가는 길'에 대해 물어본다.


조선으로 거슬러 가 보면 강화는 주로 나라에 버림받고 또는 나라를 버린 자들이 새롭게 자리를 굳건히 지켜야 했던 곳이었다. 왕들과는 나인들과 보좌할 식솔들이 함께 보내지곤 했었는데 그들에게 이 유배지 강화는 죽음의 길이었으리라. 또한 삶을 지켜주는 귀한 땅이었으리라. 섬 안에서 대부분의 것을 해결해야 했던 강화에서의 삶은 비록 고되지만 더 단단하고 오래갈 수 있었다. 그것은 곡식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과 많은 재료들의 풍요로움, 욕심으로 잔뜩 웅크리고 있었던 긴장감이 땅끝으로 내던져진 숫자 '9'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일까. 강화는 조선을 의지하게 했다. 어느 해 성벽으로 둘러싸인 겨울 강화는 조선을 지켜주었다. 아니, 혼자 일어설 수 없게 만들었다.


곳곳에 벚꽃이 흩날리며 원주율의 순환되지 않는 부분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다. π=3.141592653589793238.... 벚꽃 잎 1, 벚꽃 잎 2, 벚꽃 잎 3, 벚꽃 잎 4... 무한한 그 꽃의 잎..... 깊이 또한 '우리'였다고 한다. 지금은 일본과 참 많이 닮아버린 그 꽃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해 덧 씌워진 역사의 왜곡처럼 벚꽃 잎 하나하나에 가슴 끝이 저려온다. π가 전하는 수학적 언어는 규칙과 불규칙이다. 원주율은 무리수지만 그것을 많이 닮은 떨어지는 벚꽃잎에서는 규칙을 찾게 된다. 아름다움 끝에 매달려 있는 아픔도 읽을 수 있다. 역사의 왜곡으로 터져버린 꽃망울은 다시 수학적 언어를 숫자 '9'라고 전한다.




일산의 집, 우리 집에서 강화의 펜션까지 총거리는 42.2km(약 43km)이다. 출발해서는 시속 60km의 빠르기로 움직였고 응축된 강화의 깊은 봄을 맛보며 움직임을 최소로 한다. 그때의 빠르기는 시간당 40km이다.


꽃망울이 꽃으로 터지는 순간 꽃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었으며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맘에 결국 차를 잠시 세우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꽃의 여운을 맘껏 스스로 의식과 심장에 담는다. 그 여운은 한참 동안 그녀를 그 자리에 꽁꽁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잔여 감정을 말끔히 정리한 뒤 다시 출발한다. 우여곡절 끝에 시간이 우리를 '정담'의 펜션 앞에 데려다 준건 1시간 15분 만이었다.


강화의 새 봄은 우리를 낙조=9의 그 흐름 속에 묶어 버렸다.


이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출발할 때의 시간과 도착시간을 기억해 두자. 처음의 시속과 강화의 응축된 봄을 만끽하며 천천히 움직였던 속력은 차이를 보인다. 여기서 자동차가 60km로 움직인 거리와 40km로 움직인 거리를 확인해 보고자 한다. 도착까지 어디에서 강화의 봄에 가장 오랫동안 마음을 빼앗겼는지 확인하고 기록해 두고자 한다.


풀이: 조건 정리

1. 60km로 움직인 거리:x, 40km로 움직인 거리:y

2.60km로 x만큼 움직일 때 걸린 시간:x/60

40km로 y만큼 움직일 때 걸린 시간:y/40

3. 20분 동안 급속히 떨어지는 낙조를 놓칠까 봐 눈으로 찍어둠

x+y=43, x/60+20/60+y/40=75/60

2x+40+3y=150, x+y=43

2x+3y=90........ 1.

2x+2y=86......... 2.

1식-2식은 y=4km, x=39km

∴60km/h로 달린 거리:39km

40km/h로 달린 거리:4km




※ 강화의 소중함과 봄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소개하고 싶은 몇 가지를 올려본다.


9를 닮은 낙조 그리고 교동의 우리나라 전통시장 (3,5, 7일장과 같은 느낌의)과 같이 먹거리가 풍성한 풍물시장, 연산군 유배지... 강화는 부족한 것이 별로 없는 자체적으로 자급자족이 충분히 가능한 섬이었다.



그녀에게 강화는 매번 가는 길 위에서 함께 했던 살아있는 감정과 자연이다. 꽃망울이 터지면서 급속히 땅속으로 하강하는 9를 많이도 닮아버린 강화의 낙조에서도, 또한 낙조를 보려고 항상 잠시 멈추었던 길과 자리, 그 길 위에 존재하는 모든 역사이다.


이들의 조화로움이다. 그 조화로움이 봄볕과 함께 시시때때로 닫혀있던 봄 꽃샘추위와 같은 나를 유혹한다. 오늘도 여전히 강화 가는 길에 다짐을 해본다.


다시 여기, 이 길 위에서 낙조= 9의 역사와 함께 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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