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의 가을은

삶의 밀도와 농도는 살아온 햇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by 무 한소

어느 가을날 수술실에서 마취가 덜 깬 상태로 나온 아이와 재회했다.


오늘 그동안 미뤄왔던 아이의 수술이 있었다. 입원실에 대기하면서 자신의 이중적인 맘을 헤아리느라 마취상태의 아이를 부축하며 들어오는 간호사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잠시 동안 내가 체감한 시간에 대하여... 아이의 수술시간은 온통 나를 찾으려는 의지와 노력에 묻혀 잠시 잊혔나 보다. 환자복 차림으로 진통제를 투여하는 링거병이 연결된 주삿바늘을 꽂고 몽롱한 상태로 병실에 들어온 그 애가 오늘은 더 아련하게 느껴진다.


"수술은 잘 되었다는데 다시 문제가 생겼는지... 뭔가 마음이 달라진 거처럼 수술을 하고 나온 직후 감정의 결이 달라졌더라고. 마취가 덜 깬 상태였는데 눈물을 보이며 죄송하다고 이젠 엄마에게 정말 잘하겠다고 하며 했던 얘기를 반복하고 반복해서 다시 하더라고."


조카를 걱정하는 언니에게 수술 결과와 앞으로의 경과에 대해 전달하고 통화를 마무리하며 다시 운전에 집중한다. 하늘은 드높고 청명하다. 하늘과 땅 사이사이로 미세먼지가 조금씩 곁을 함께 하지만 그래도 이쯤은 뭐... 이런 맘으로 주변을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벌써 가을이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게 곁에 있었던 것이 한참이 되었나 보다.


가을은 늘 내 곁에 있었는데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건... 우리가 무척이나 길고 깊은 겨울을 겪은 이후 짧은 봄과 지친 긴 여름을 지내고 다시 가을로 돌아와서 일까? 아니면 그 가을이 내가 살아가는 이곳을 곁에 두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까닭일까? 어쨌든 가을은 오늘 같은 아련함이 뭉쳐서 온통 고독으로 채워진 날 나와 함께 해주었다.

병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주저리주저리 맘 고백을 한 아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갑자기 울컥해진다. 그 애 혼자 겪고 감당해야 할 세상은 벌써 시작되었는데 내 안의 그 애는 아직 어릴 적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엄마가 좀 더 성장해야 아이도 단단해지리라. 혼자 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런 맘을 가을이 보듬어 주는 거 같아서 위안이 된다.


차로 호수로를 달리고 있을 때 눈도장을 찍듯 가을이 넘치게 들어온다. 가을은 다채로운 색의 각각의 나뭇잎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진을 찍어내듯 내 눈에 새겨주고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의 마지막 모습까지도 섬세하게 신경을 써 주는 거 같다. 호수로가 노랗고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곳, 그 과정 위를 나는 열심히 달리고 있다. 가끔 추억 안에 담고 있는 작년 이맘때의 가을을 떠올리며 꾸준하게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그 애의 가을도 이렇게 다채로울까? 지금까지의 그 애의 가을은 내가 온전히 느껴왔던 가을보다 무게도 깊이도 덜했을까? 그 속에서 내가 느끼는 쓸쓸함보다는 좀이라도 얕고 덜한 고독이 그 애에게 찾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오늘 내 맘속에 자리 잡은 감성적 요소로 인해서 아이가 덜 아파하길 바랄 뿐이다. 비록 찰나이긴 하지만 가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편안히 가을 속에 들어가서 순간을 충분히 누리길 진심으로 바란다.


아이는 그동안 두려워서 시간이 없어서 후유증이 생긴다고 해서 만족도가 그렇게 높지 않을 거라는 숱한 여러 가지 후문을 염려해서 미뤘던 만성 부비동염 수술을 했다. ct 결과를 확인한 후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미안함이 몰려온다. 부모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스스로 되묻는다. 강제성을 가지고서라도 억지로 수술을 진행했어야 하는 걸까? 아이 스스로 이젠 더 이상 미룰 수도 갈 곳도 없다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정을 한 후에도 겁이 많은 그 애는 걱정 속에서 뜬눈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수술과 함께 강한 아픔이 있었지만 체감은 딱 적당했다. 물론 앞으로의 회복기간 동안 계속되는 여러 통증이 아이를 힘들게 할 것이다.


하지만 기대되는 건 이제는 그 애가 지금까지의 가을과는 전혀 다른 가을 안에서 숨을 쉬고 그 숨이야말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기라는 것을 인지할 거라 생각하니 호흡 안의 이 세상이 보인다. 각자의 한 호흡 안의 가을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무엇보다 감사하다.


아이의 호흡과 비례해서 세상의 넓이와 깊이도 움직임을 함께 한다. 그 과정 중에 오늘의 수술로 턴을 시도했고 결국 운동방향을 바꿨다. 호흡만큼 주변에 퍼져있는 면적 안의 숨을 들이마실 거라 예상한다. 또한 곳곳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있는 숨을 찾아내어 호흡을 하리라 생각한다. 운동방향을 바꾼 그때 속도 v(t)=0이다. 새로운 출발로 다시 '0'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호흡도 세상도 제대로 보고 천천히 시작하리라. 운동방향이 바뀌는 그 시점에서 수학이 전하는 수학의 언어는 v(t)=0을 기준으로 일단 경험해 보라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세상에 대해서는 일부 호기심이 생기겠지만 경험한 세계에 대한 간절함이나 그리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애가 겪는 이번 가을은 참 아름답다. 엄마 맘을 제대로 읽어주니 더 신뢰가 간다. 가을 공기의 신선함도 그 애가 이번 가을부터 느낄 수 있는 특혜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호흡을 한 적이 있었을까? 없었기에 더 간절하지는 않았을 거다. 경험해보지 못한 거라.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자연스러운 숨이 아이에게는 얼마나 귀한 것이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 잡혀 자연스럽게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청명하다. 가장 가을다운 어느 가을날이다. 그 애가 가을의 냄새와 향기 맡기를 이제 겨우 시작한 거처럼 어느 누군가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주변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호수로를 달리며 내 눈에 새겨진 가을은 울긋불긋한 자신의 심리를 좀 더 과감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와 같은 표출로 시각화된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이 보는 세상은 과연 어디에 머물러 있는 걸까? 헤쳐 나올 수 없는 곳일까?


알프레드 테니슨의 《이녹 아든》에서 처럼 이녹은 배가 난파되고 헤쳐 나올 수 없는 어느 섬에서 오랜 시간 살기 위해서 버틴다. 이녹이 외로움을 이겨내며 긴 시간 버틴 그곳처럼 그들의 세상도 그와 같은 곳에 머물러 있을까? 가을을 느끼고 호흡하면서 아들과 그 기분을 공유하지 못했던 건 결코 아이의 탓이 아니었던 거처럼 아름다움을 가슴에 간직하며 그 아름다움의 노래를 부르지 못한 것도 현실과 직면해있는 그들의 책임은 아니다. 단지 함께하지 못한 감정이 아픔으로 다가올 뿐이다.


이제는 좀 가벼워진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아픔보다는 아이의 실질적인 아픔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콧노래가 나올 만큼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건 아이와 지금의 가을 공기를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애의 가을은 오늘부터 더욱 진한 향기로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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