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규정한 자식 노릇에는 부모를 향한 효와 공경의 맘으로 기본을 다하며 그 외에, 가려진 일상의 경제적 힘이 가중되어 있다.
부모의 자리에서는 나눔이 허용된다. 자식의 자리 또한 능력 있는 자식이나 여러 명의 자식들이 분산해서 그들이 앉은자리 값을 다시 나누면 된다. 그 기본으로 들어가면 부모의 자리에는 사랑이, 자식의 자리에는 효가 강조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무로 다가왔다. 해마다 닮아있는 길을 다른 태도와 맘을 가지고 어느 해의 5월 8일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본다.
아이는 자식이고 어버이이다. 그녀의 자리는 결혼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중적이었다. 사실은 확대해서 생각한다면 다중적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책임감을 늘 의식적으로 지참하고 생활해야 했다. 그녀의 위치는 자식으로서 기본적인 효는 물론 다 해야 하며 부모로서의 책임인 자식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려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자식의 노릇이라는 책임이나 부모의 노릇이라는 위치에서의 공통은 경제권이 확보되어야만 1차적으로 그 책임을 다 할 수 있다. 더불어 사랑을 기대한다는 건 우리에게 주어지는 플러스 알파일뿐이다. 여기서 알파는 상품 구입 시 기대하지 않았던 프로모션이나 능숙한 일 처리에 대한 대가로 획득한 인센티브와 같다. 따라서 덤으로 하고 얻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알파는 그것 자체만으로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경제적 요건과 함께 다니는 보조적 역할을 할 뿐이다.
원에 내접하는 삼각형에서 한 호에 대한 중심각과 원주각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문득 부모나 자식의 위치에서 각각의 노릇과 사랑이 수식으로 연상되어 다음과 같이 연결해 본다.
중심각=원주각 × 2
부모 '노릇'=자식 '노릇'× 2
부모의 사랑=자식의 사랑 × 2
a/sinA=b/sinB=c/sinC=2R
(원에 내접하는 삼각형에서 a, b, c:변의 길이 A, B, C:각의 크기 R:반지름 )
물론 위의 수식에서는 예외적인 부분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사랑의 크기에 대한 효와 사랑을 비율적으로 다 담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그 노릇이나 사랑의 비율은 일정하게 나타난다. 부모의 노릇은 그 자리에서 자식의 노릇보다는 훨씬 큰 경제적 지원과 그것이 무조건적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가페적인 사랑을 베푼다. 물론 예외적으로 현실의 어느 가정에서는 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모든 경우에서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자식에게는 특권이 주어진다. 조건이라는 그리고 능력이라는 특권이 주어진다. 그들은 의무감으로 많은 것을 해결하지만 때로는 조건이 맞지 않아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자식의 노릇이나 위치에서도 예외적인 경우는 항상 존재한다.
20ㅇㅇ년 5월 5일 어린이날(화요일)
5월 8일 어버이날을 앞당겨 모두의 앞선 감사의 맘을 담아냈다.
어느 해의 어린이날이었다. 그해의 어린이날도 지금까지와 같은 일상의 모습이 그려졌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가족에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오늘도 그들은 '나의 아이들'을 챙기기 이전에 어버이 날을 앞당겨서 자신들의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코스요리를 선보일 중국 음식점에서 그 맛에는 충분히 감탄하며 분위기에 취해 다소 과장된 목소리와 동작으로 담소를 나누었다.
오늘의 그 시간까지 '자식 노릇'은 아주버님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서글픈 특권이었다. 곁에서 함께했던 나머지 자식들은 소외된 일부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이후로 아이 또한 자식 노릇이라는 그 의무감에 나름의 깊고 큰 마음을 담아 준비해온 음식(양장피)과 케이준 샐러드, 꽃바구니+코르사주, 그리고 딸의 작품(캘라그라피_가족 모두에게 전달함)을 선보였다. 경제력을 앞세워 볼 때는 비록 소소하지만 큰 사랑도 담고 그 노릇에 충실하고자 최선의 맘을 담아 준비해 왔다.
오늘의 그 쏟음에 대하여 여러 가지 딜레마에 빠지며 고민이 시작된다. 일반적인 일인칭의 '나'를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대표적 대상으로 보고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첫째, 나의 '자식 노릇'은 과연 시댁(처가) 부모님들과의 사이만으로 한정되어야 하는 걸까? 오늘도 나는 엄마께 조금 먼발치에서 지극히 객관적 입장에 있는 거처럼 돈을 입금하고 언니(형)와 맛난 음식을 드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메시지를 함께 보낸다. 그러면서도 그 '노릇'에 대하여 그나마 용돈을 입금할 수 있음을 큰 다행으로 여기며 '매 해의 어버이날'을 경험한다.
둘째, 자식 노릇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난 효와 사랑 속에 덮여있는 내면의 맘 씀에 있다. 그러나 현실은 형식적일지라도 실천하고 있는 효와 사랑의 표현들을 덮어 버리는 강력한 경제력이 항상 우세하다는 것이다.
셋째, 이런 모든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의 시작인 관계 맺음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좀 피하고 벗어나고자 맺음을 확실하게 잘 마무리하려고 한다. 어버이날이 가까워지면 항상 이런 고민으로 불편해진다.
경제권으로 충분한 베풂을 한다고 해서 효를 다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권이 없다면 시간과 마음이 그것을 대신하여 그 이상의 양만큼 모두 쏟아부어야만 '자식 노릇'이라는 것을 정상적인 크기와 모양으로 제대로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경제력이 없는 맘이란 한국의 현실에서는 가치를 부여할 때 그저 이상적인 미덕쯤으로 여길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부모님들은 능력이 안 되는 자식들을 향한 마음을 과연 어떻게 표출할까? 안타까운 맘이 앞설까? 아니면.... 능력이 되는 자식에게 가려진 그림자쯤으로만 비칠까?
스스로 묻는다. 자신은 과연 어떤 부모인지. 지금보다 시간이 흘러 어떤 부모로 얼마만큼 자리매김이 되어 있을지. 그렇다면 우리 부모님들은...? 이상과 현실에서는 교육적 현실에서 느껴지는 괴리감 외에도 '노릇'이라는 큰 벽에 직면하게 된다. 자식이기 때문에 '자식의 노릇'으로 당연히 받아들이고 안고 가야 할 문제도 있다.
우린 어떤 자식인지 (우리들에게) 그(녀)는 어떤 자식인지. 아픈 자식, 든든한 자식, 자랑스러운 자식... 과연 여러 가지 다양성을 가지고 생각해 본다면 누군가가 경제적 측면을 가장 중요시한다면 부정적 맘이 앞서겠지만 그것에 기대게 되는 건 그 '노릇' 때문이다. 이상적이지 않지만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위치, 직책에서의 책임감을 가장 크게 담고 있는 경제력이 극대화된 '노릇'이 아닐까 하고 여겨진다. 나는 그 '노릇'을 잘해 왔을까? 또한, '노릇'을 철저히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 '노릇'의 강제적 압력과 압박으로 숨을 쉬기 힘들었는가? '노릇'은 지금의 나를 다시 단단하게 조여준다.
때때로 '노릇'은 내 의무감을 지치게 한다.
봄기운 가득 담은 태양을 살피니 그것의 일관성과 책임감, 분산된 사랑의 나눔이 보인다. 자신의 자리에서 노릇은 한 가지뿐이었다. 아니다. 오늘 새벽은 구름 사이로 가려져 보이지 않은 태양을 의심하며 열심히 지속적으로 다그쳤다. 그것의 '노릇' 또한 넓이에 힘들어하고 '노릇'의 깊이에서 벗어나고자 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의 마음은 단 한 가지였다. 구름에 가려진 태양은 사라진 거처럼 보였지만 사실 태양은 자신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었다. 단지 구름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엄마(부모) 노릇, 딸 노릇, 며느리 노릇, 와이프 노릇, 친. 인척들 간의 노릇,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집단에서의 많은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첫 번째로 경제력이 해결되어야만 그 '노릇'을 수행하기에 기본은 되었구나라는 현실에 있다. 그것은 자신을 힘들고 슬프게도 하지만 더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어준다.
오늘 태양이 전달한 메시지와 같이 내면에서 시작되든 외부에서 들어오든 사랑을 의심하지 말자.
오늘의 수학의 언어는 '노릇'은 삶에 다양하게 들어가 있는 마음이며 마음의 씀에 대한 함수 식이다. 함수 식의 결과로 천천히 마음에 대한 함숫값을 하나씩 대응해본다.
f(x)=사랑과 정성*현실에서의 경제력=드러냄 안의 맘의 능력치를 씀*현실적 경제력=자리에서의 깊음을 드러냄*책임감=노릇
NOTE
_사람들과의 관계(원): (어떤 한 자리)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자취, 네트워크로 내가 시작이 되어 관계 맺기의 자리를 뻗어나간다.
_원에 내접하는 삼각형: '관계 맺음'이 있는 '사이'들, 삼각관계, 관계 맺음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_내접하는 삼각형의 한변(현) -> 총 3개의 변(현), 자리, 노릇
_활꼴:현과 호로 이루어진 활 모양의 도형 -> 중심각의 크기에 정비례하지 않는다.
_삼각형의 각 꼭짓점과 원의 중심 연결=2개의 반지름+호=부채꼴 -> 중심각의 크기에 정비례한다.
_한 호에 대한 중심각은 오직 한 개,
한 호에 대한 원주각은 무수히 많다.
_중심각=원주각 × 2
가장 긴 현=지름
_sin(사인) 법칙
a/sinA=b/sinB=c/sinc=2R
각의 크기: 사랑의 크기, 효의 크기
변의 길이: 맘 씀(내면의 씀), 경제력(외형의 씀)
원에 내접하는 하나의 삼각형에서 각각의 각의 크기와 대응 변의 길이는 비례한다. sin값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부채꼴의 호에 대한 원주각의 크기나 시랑이 극대화될 때 변의 길이인 맘 씀이나 경제력 또한 극대화된다. 그들 간의 관계로 드러난 원의 반지름의 길이는 어디서나 일정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원이 전하는 수학적 언어를 살펴본다. 원은 한 정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자취, 흔적이다. 여기서 일정한 거리는 부모의 사랑과 관심으로 대체된다. 원이 전하는 수학의 언어는 자식을 향한 먼발치에서의 적당한 사랑이다. 그것은 일정한 거리인 원의 반지름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맺음이라고 할 수 있다. 원에서 가장 긴 현(지름)은 각 자리 중에서 부모에 대한 효, 서로에 대한 사랑과 맘 씀의 경제력의 총체인 바로 '노릇'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