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속에서 만나는 새로움

'0'의 경계 속으로_ 세계를 보다

by 무 한소

긴 시간을 방황하고 찾아 헤매던 자유가 내가 찾지 않아도 그냥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맑은 가을날, 딸과 함께 먼길을 움직인다. 벌써 몇 주째 아이와 일산에서 역삼까지 설렘으로 그 길을 걷고 있다. 이제 겨우 15세인 아이가 그토록 과감히 원했던 댄스를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자 했으며 지금은 그 길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아침부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토요일이면 대부분을 왕복과 기다림으로 할애해야 할 시간이 미리 계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쌓여있는 일의 부피나 무게가 차분히 계획하고 정돈된 내 사고의 범주를 넘어서 침범하지는 못한다. 자유로운 사고를 하기에 적당히 가볍고 그 적당함은 사유할 수 있는 순간의 뇌를 더욱 탄력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 길을 함께 하 나에게 찾아온 새로운 값진 시간을 획득했다. 같은 좌표축에 위치해 있는 근처의 핑크 핑크 한 카페에서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 건물 외부는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가 살법하고 숲 속 가운데서도 자연 깊숙이 존재하는 핑크빛을 띤다. 실내는 외부에서 본 우리의 생각보다 다채로웠다. 배치되어 있는 모습이 일관성이 없어 보이고 소파나 의자, 테이블들이 제각각이지만 미세한 변화가 아기자기하고 새로운 규칙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이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


수제쿠키 전문점인 이곳에서는 다양한 쿠키를 직접 만들어서 판매한다. 내 입에는 쿠앤크와 민트 초코가 가장 잘 맞다. 그것들을 따뜻한 커피와 곁들이면 쿠키의 촉촉하고 달콤함이 더욱 살아난다. 가끔 운이 좋으면 쿠키를 만드는 시간에 카페에 머무르게 되는데 혀 끝으로 직접 맛을 감지하고 느끼기 이전에 뇌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쿠키가 구워지면서 먼저 내게 오는 향은 후각을 건드리고 다음으로 자극하는 향이 뇌에 도달해서 에너지의 변화를 준다. 도파민이 분수처럼 터져 나오고 침샘이 분비되어 미각을 자극한다. 혀끝에 쿠키의 촉감과 달콤함이 느껴지기 전에 벌써 상상 속의 맛을 완전히 다 느끼고 있다. 가끔 꿈꾸었던 상상 속의 그 맛은 현실에서 경험한 맛과 동일하다.


책 읽기의 흐름을 방해하지도 않고 때론 글쓰기를 하며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묶어두기도 한다. 그 카페 내부에서 흘러나온 소리의 데시벨이나 음파가 '나'와 정말 잘 맞는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가끔 예외적인 시간을 제외하면 4시간을 넘게 한 곳에 앉아있어도 전혀 힘들다는 느낌이 없다. 그곳에서 글을 정리하고 마무리를 하다 보면 기분 좋은 쾌감과 어우러지는 커피맛이 더 품격 있게 다가온다. 적당히 무겁고 산미가 추가되어 있으며 혀끝에 단맛이 느껴지는 동시에 한 모금 목으로 넘어갈 때의 부드러움까지... 딱 좋다!


그곳에서의 시간들이 나에게 특별함을 준건 아마도 숫자에 있어서의 내 인식의 기억 때문이다. 나에게는 수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물과 사람, 감정까지도 수와 많이 엮으려고 하는 습관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때부터도 현실 도피적 마음이 강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은 수로 변해 있었고 가끔은 감정도 수로 연계해서 생각하곤 했다.


아주 생소하고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한 그곳은 깊은 숲 속에 위치해 있었다. 아니 과거부터 그랬던 곳이었을까? 전자파 전기등이 존재하지 않는 숲 속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궁전 같은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떠오르는 수가 희미해서 보이지도 생각나지도 않았다. 다만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0'의 경계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무엇인가 잡아당기는 듯 그곳의 중심점에는 강력한 끌어당김의 힘이 있다. 그래서 집중이 잘 되었던 것일까? 그래서 그곳은 숫자 '0'과 연결된, 다시 말해서 숫자'0'을 도구로 쓸 수 있는 곳이 된다. '0'은 안과 밖, 겉과 속으로 구분 지어주는 경계의 테두리로 볼 수 있다. 그래서 '0'은 시작인 동시에 끝이 되기도 한다. 출발점이자 맺음의 마침표이기도 하다.


경계의 해체인 듯 보이지만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응결의 시작을 두고 '0'이 전하는 수학의 언어를 잠시 생각해 본다. '0'은 덧셈에 대한 항등원으로 어떤 수에 '0'을 더하여도 그 수를 변함없게 만든다. 존재하지 않음을 얘기 하기도 하지만 가능성을 열어둔다. '0'의 테두리 즉 경계에서 안과 밖을 살펴보면 선택과 경험이 들어온다. '0'이 전하는 수학적 언어는 경계에서의 선택과 집중이다. 마침내 경험으로 찾을 수 있는 건 신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난 현실의 '0'의 테두리를 기준으로 밖에서 내부를 궁금해하기는 커녕 덤덤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는 그 무엇의 영향도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그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낸 후 성취감으로 자랑스럽게 다시 '0'의 경계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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