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 소녀는 말똥말똥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최근 자주 무겁게 느껴왔던 집안 공기보다 더 답답한 시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몇 초간 흐릿한 꿈을 꾼 걸까? 소녀는 맑지 못한 눈을 뜨고 있었다. 몽롱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쯤 누군가 방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고개는 그녀를 향하고 있었고 시선은 더 두껍게 소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런데도 신기한 건 답답하거나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온기가 느껴졌다. 소녀의 초점 없는 시선은 계속 천장을 향해 머무르고 있었으며 방으로 양해도 없이 문을 밀고 들어온 누군가 여전히 그녀만을 응시하며 그녀가 덮고 있던 이불을 나눠서 덮으면서 조용히 속삭인다. 그 목소리는 차분했으며 후련함이 묻어 있었다.
"이제는 해 보고 싶은 건 다 해 봤지?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스스로 인지도 못한 깊은숨과 함께 뱉어진 그 소리에 대응하듯 소녀는 다시 진지하게 묻는다.
"엄마, 정말 너무나 감사하고 미안한데...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소녀에게는 아직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뭔가가 있었다.표면적으로는 그녀가 엄마께 애원을 하는 거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조르고 있었다. 엄마는 갑자기 답답해진다. 안 그래도 복잡했던 마음이 이기적인 소녀의 제안으로 나눠 덮었던 이불의 무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묵직함이 느껴진다. '언제까지 더 되풀이해야만 끝이 나는 걸까!' 엄마는 이젠 더 이상 안된다고 강하게 고개를 젓고 싶었다. 하지만, 내면에 깔려있는 거부하는 강한 마음과는 달리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눈빛에서는 벌써 대부분의 것을 허락했다는 마음이 느껴진다. 더 이상의 에누리는 필요가 없는 거처럼 흥정은 싱겁게 끝나 버렸다.
19세가 시작된 겨울, 생각의 전환처럼 소녀의 삶에 전환이 되는 변곡점이 있었다. 19세가 시작되면서 소녀는 갑자기 참고 눌러왔던 내면의 욕구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다. 시간적 배경은 하필이면 그때였다. 공간적 배경은 더 높은 곳이나 넓은 곳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그 욕구들은 그녀 자신은 감당하기도 들춰내기도 힘든 것들이었다. 그래서 감히 꺼내거나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옮기기에는 더 힘들었지만 그녀를 구원해 줄 구원자가 바로 옆에 있었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소녀의) 할머니를 일찍 여의고 삶이 힘들어졌고 장녀라는 책임감은 삶의 깊이의 몇 배 몇 십배는 더하여 엄마를 짓눌렀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내면에 이기적 욕구로만 가득했던 그때 엄마는 장녀라는 위치에서맞지 않는 엄마라는자리를 맡게 되었다.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오빠에게 또 동생들에게도... 그래서 소녀를 선뜻 도왔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선뜻 그녀를 도와주기로 단단히 맘먹는다. 소녀의 욕망은 집안의 경제적 문제나 지쳐있는 엄마를 바라보는 것이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이기적인 그녀는 그때 자신만이 보였고 스스로 욕구를 채우느라 주변의 희생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볼 수도 없었다.
고3 시절까지 깊이가 얕은 인내와 풋 열매는 대학 수험시험이 끝난 것과 동시에 그 전의 가치나 의미가 있었던 삶의 일부는 거품처럼 소멸되어 버렸다. 물론 아주 가끔은 타자가 그 삶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재해석을 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스스로의 기억 속에서 그럴듯하게 포장되었다.
그땐 혼자 힘이 들었다. 그땐 혼자서만 힘이 든 줄 알았다. 자신의 체력으로는 감당도 못할 몇 배의 무게가 소녀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무겁고 답답했던 기억을 다시 꺼낼 수 있었던 건 그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엄마의 목소리였다.엄마는 누워서 천장만 응시하고 있는 소녀 옆 이불속으로 조용히 와서 눕는다. 부드럽고 따뜻한 목 속리였다.사랑의 그 목소리는 과거 그녀가 덮어버린 기억을 소환해 주었다.
왜 그렇게 쩔쩔맸던 걸까? 엄마는 늘 가진 것 누리고 있는 것 중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사랑을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항상 부족한 듯 주고 있는 사랑을 아쉬워했으며 미안해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런 마음으로 쩔쩔매는 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자식이 태어난다는건 자신의 의지는 전혀 아니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사랑과 그에 따른 마음을 받아야 하며 자연스럽게 축복의 한가운데 위치하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역할만으로도 엄마가 쩔쩔매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건 당연한 것이었을까?
어려운 집안 경제 사정과 불편한 맘으로도 많은 것을 지원해 준 그 순간부터 소녀의 삶은 긍정적으로 흘러가기도 했고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냥 자연스러운 일상에서 조금의 욕심이 가미되어 있었다고 위로해 본다.아빠로부터의 보호벽이 되어 주기도 했으며 소녀가 최후의 결정을 하거나 과감히 저지르는 일들까지도 엄마는 최선을 다해서 도왔다. 소녀는 세상에 존재하는 '엄마'라는 존재는 모두 그런 줄 알았다. '엄마'라는 고유명사가 내포하는 내면에는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이며 한결같이 따뜻한 맘으로 사랑을 줘야 한다는 일종의 미션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훗날 그런 경우보다는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가 엄마의 사랑을 아가페적인 사랑이라고 확신했을 때 그것은 위로 볼록한 이차곡선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위로 볼록한 이차함수 꼴의 그래프는 최댓값을 지니고 있다. 함수가 시작되었던 0 이상의 범위에서부터 함숫값은 점점 커진다. 경계의 최고치에 도달했을 때 에너지는 가장 활발하며 호흡은 안정적이다. 안정적 그 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최댓값인 그 변곡점을 기준으로 에너지가 고갈되기시작한다. 이후 최댓값이었던 이차함수의 함숫값 또한작아진다. 위로 볼록한 모양의 이차함수에서 수학의 언어는 엄마의 사랑이다. 사랑은 에너지의 총체이다. 역학적 에너지는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합으로 나타난다. 엄마의 사랑은 어떤 모습이 좀 더 강하게 표출되든 그 총량은 같다.
엄마가 따뜻한 눈으로 그녀를 살피며 옆에 와서 누웠던 그 시간 그녀는 자신이 진행해 나가고 있는 억지의 마음과 엄마의 사랑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항상 든든하고 외부와의 자극을 최소화시켜 주었으며 방어, 보호벽이 되어주었던 엄마의 사랑과 자신의 억지스러운 이기적인 실천 앞으로 오늘은 그날의 기억이 서둘러 먼저 도착했다.
누워서 서로의 숨소리를 살피며 엄마는 소녀의 숨 고르기를 다듬고 도와주었다. 그 위에서 소녀의 사유의 시간은 점점 깊어만 간다. 다음 날 새벽 갑작스럽게 기차에 몸을 싣는 거처럼 그때의 마음과 다음으로 더 크게 준비된 삶의 즉흥적인 일들을 미리 예고라도 하듯 소녀의 숨소리는 점점 깊고 거칠어진다. 여전히 엄마는 거친 숨 고르기를 도와주며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를 깊이 응시했고 두려움과 뒤 섞인 통통 튀는 움직임을 가로막지 않고 다시 순서를 정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