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의 시작과 더불어 설렘을 덮어버린 강력한 감정이 있다. 덤덤하고 착잡하다. 출발점의 씁쓸함이 이제 겨우 한 발 떼기를 시작한 한 걸음 발의 무게를 더해준다.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집어삼킨 날부터 생활 반경과 함께 내면 깊숙하게 숨어버린 감정은 가림막을 뚫고 나올 줄을 모른다. 가끔 그곳에 숨어서 누군가 꺼내 주기만을 바라던 내면의 아이를 찾기 위해 열독, 완독 후 휘황찬란한 포스트잇으로 장식되어 책꽂이에 조화롭게 자리 잡은 그 책들을 다시 한 권씩 꺼내 들었다. 꺼내 집어 들었다 다시 제자리 찾아주기를 몇 번 반복한 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처받지 않는 영혼]을 들었고 왼손으로 힘을 주어 자리를 잡는다. 표지 한 장을 넘기자 바로 몇 개월 전 그날의 기억이 또렷이 떠오른다. 표지에는 '내면의 아이와 마주하다.'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생생하게 책이 품에 안기게 된 과정과 날짜, 시간까지. 뚜렷하고 선명한 기억을 따라서 옅어진 감정이나 세세한 상황들을 찾아낸다. 망각 전에 그것들을 다시 재배열하듯 감정을 극대치로 끌어올리기도 하고 차분히 가라앉혀 보기도 한다. 내면의 아이를 찾아 나서지만 결국 그녀는 깨닫는다.
그녀와 내면의 아이는 평행선과 같이 영원히 함께하지만 마지막까지 하나 될 수 없음을... 그녀는 그런 평행선과 같은 먼발치의 사랑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중이다. 자신의 내면의 아이에게도. 평행선은 모양과 크기가 변하지 않고 자리, 위치만을 이동한 평행이동에서 출발한다. 그것 중에서도 기울기는 같으며 y절편이 다른 일차함수 즉 직선의 방정식에서 끝없이 제 갈길을 나란히 걷고 있는 두 직선을 이른다. 그녀와 내면의 아이와의 관계처럼.
5월 14일,항상 그 거리에서 끝없이 움직이던 그녀와 내면의 아이가 평행선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마주하고 있다. 의미 없는 Rose day. 맑음과 흐림이 마음속에 함께 머무른다.
작가 수업이 일정으로 계획되어 있는 금요일, 기온은 체온을 유지하기 딱 적당하고 하늘은 맑음이다. 멀리 보이는 시야가 맑고 밝다. 맑음과 흐림이 그녀에게 주는 특별 함이 있는데 맑음은 그녀를 실행하게 하고 도전하게 한다. 흐림은 스스로 좀 더 생각하게 하고 생각의 깊이는 흐림의 농도를 타고 기류가 함께 움직인다. 오전 내내 유독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이 자신을 위한 빛인 거처럼 시작인 그 빛 하나에 뻗어져 나오는 여러 갈래의 토닥임과 위로에도 크게 감동을 받았다. 사실 어제까지 정리되지 않았던 내면의 문제가 있었지만 태양은 그것마저도 가림판으로 슬쩍 가리기를 해준다.
설렘?
신사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건 그녀에겐 많은 경험들 중에서도 가장 두려워하는 부정적인 경험이 가득 차 있는 내면 드러내기를 끊임없이 하는 과정이다. 지금의 순간에도 그것은 자연스럽고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걸음의 시작은 규칙적이었지만 좀 더 강한 두드림과 미세한 설렘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곧 독서모임이 더 풍성해진다는 공지에 맘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자리를 더 확실하게 잡아간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이 작가님의 간단한 귀띔을 듣고서는 그 설렘이 가중되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출판사(책 인사)에서 진행되는 독서모임은 첫발을 내딛기 훨씬 전부터 그녀에게는 긴 시간 기다리고 있었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다.
속삭임
어제 숙면을 하지 못한 문제로 인해불안정한내면으로부터의 속삭임이 시작된다. 그 속삭임이 커지더니 지껄임으로 그 지껄임이 결국 그녀를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얕은 잠과 함께 지껄임은 주변을 하염없이 맴돌다가 자신의 삶에 가장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새벽시간, 스스로 의식을 밀어버린다. 04:45분이라고 알리는 더 강한 울림이 시작되었고 울림은 크고 작게 그 어떤 무의 세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더욱 강하게 소리친다. 울림은 큰 소리를 내며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외쳐댄다. 이번엔 그녀가 그것을 방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이 되리라는 짐작으로 간단하고 확실하게 버튼을 사정없이 누른다. 이후 그것은 자신이 소신을 갖고 나가던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처음부터 소명의식이 없었던 거처럼 더 이상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
이성과 분리된 육체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스르르 새벽의 움직임을 시작한다. 그 거리는 안방을 나와 새벽 속 더 깊은 곳에 자리한 거실을 거쳐 영혼이 묻어있는 책들의 안정되고 편안함을 찾아 그녀가 앉은자리까지 딱 20걸음으로 정의할 수 있다. 겨우 20걸음으로 현실세계로 발돋움을 시작한 절제된 새벽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준다.
두려움은 마카롱으로
신사역을 가면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전철의 빠르기가 마음 탓인지 더욱 세고 강하게 느껴진다. 지나가면서 햇빛을 등지며 보이기 시작하는 명암으로부터 순간순간의 오늘이 보이고 3월부터 지나온 ㅊ출판사(책 인사)와의 관계가 눈에 들어온다. 프레임 밖의 배경과 함께 스치고 스치며... 지나간다. 그녀의 판단력이나 감성이 딱 적정한 기울기를 유지하게 했다. 거리의 관계가 보이지도 정리되지도 않았다. 사유의 시간은 항상 현실적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 그 순간 신사역을 알리는 정돈되고 깔끔하며 감정 없는 기계음이 그녀를 반사적으로 움직이게 했고 문 열리는 소리가 그날, 그 시간 유독 강하게 삐걱 되더니 이내 심장을 자극한다.흔들리는 심장을 움켜잡느라 잠시 머뭇거리다 겨우 현실세계로 한 발 내딛는다.
어떤 작가님들이 오실지 모른다. 설렘과 두려움의 경계일까? 그들 간의 깊이나 내가 함께 하지 않았을 때의 색깔과 모양은 너무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순간, 흐름이라는 게 그녀의 노크와 뛰어듦으로 갈림길의 선택을 나누고 때론 턴을 해서 돌아오게 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지금의 흔들리는자신을 잡아줄 뭔가가 필요했다.
얼마 전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는 무작정 마카롱을 찾아서 앞으로 천천히 걸었다. 당 충전을 하는 것은 부정적 감정의 깊이를 줄여주기 위함이다. "지금 이 감정 두려움이 맞는 거지?" 마음에서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내면의 소리가 너무도 또렷하고 규칙적으로 들린다는 건 몸에서 부정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잠시나마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당 충전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거기에는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나누겠다는 미세한 설렘이가져다준행복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모호한 빛
마카롱을 담고 오는 손은 나눔의 가치를 행복으로 전향시켜 주었고 그런 마음이 그녀를 경쾌한 발걸음으로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했다. 나눔을 할 작가님들이 있는 그곳은 항상 설렘으로 수줍게 문을 여는 그녀를 급히 끌어당긴다. 이번에는 그 설렘에 두려움이 함께 동반되어 그런지 ㅊ출판사만의 아로마 향을 맡을 기회도 없이 더 급히그녀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곳에는 벌써 색이 다른 몇 개의 빛이 있었고 하나의 빛을 더한다면 더 밝아지리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차차 그녀를 안정감으로 정돈해 주었다. 그리고 착각에 들게 했다. 하나의 빛이 더해지니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찰나의착각을 하며 스스로 긍정적 에너지를 발현하기 위해 참으로 '애쓴다'라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정의로움
다시 여러 갈등 속에 있던 부정적인 그녀가 컨설팅 속에서 우주 안의 자신의 좌표도 발견했고 적당한 거리에 있는 어린 왕자의 별도 찾았다. 그런 충만된 기쁨에서도 스스로 쓰고자 하는 글과 독자가 좋아하는 글 사이에서의 고민과 상념의 시간은 점점 깊어만 간다. 일단은 자신이 좋아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고자 맘을 정리했지만 매 순간 갈등의 기로에 서 있다. 작가수업 중 그녀의 흔들림을 보셨는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여러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 어떤 목적지를 향한 길은 하나뿐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라고 생각하는 집요함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힌다. 방향 제시 덕분인지 해결되지 못한 주기적 진동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느껴진다. 비록 몇 회 되지 않는 작가수업이지만 그 과정에서는 매번 뭔가를 즉흥적으로 툭 하고 던져 주시는 게 아니다. 때론, 그녀를 읽어내고 눈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며칠 동안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던 문제까지도 해결된 거처럼 스스로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안정적이게 자신을 들여다본다. 믿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일까?
출판사(책 인사)에 대한 무한 신뢰일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들었던 정의로움에 대한 의문과 생각들이 정리가 된다. 얼마 전 [빵과 장미]를 읽으며 더 적극적이고 깊이 있게 정의에 다가가고 있었다. 어렴풋이 작가 수업에서 백 작가는 정의란 사랑이 충만된 것이라고 전달했다. 넘쳐흐르는 그것을 작가님들과 나누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랑의 나눔이 바로 현실에 존재하는 '정의로움'에 가까운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의로움에 대한 나의 생각은 [빵과 장미]의 제르 바티 씨가 보여줬던 사랑의 실천이다. 그의 정의는 어떠한 경우라도 상대를 믿어주는 신뢰에서 시작된다. 이후 사랑으로 그것을 스스로 깨닫게 해 준다. 굽어질지언정 꺾이지 않은 아름다운 사랑을 소유하고 실천한 나무, 로사의 엄마가 보여준 그 아름다운 나무 또한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정의로움에 대한 생각은 그 두 사람으로 마무리된다. 그 두 사람의 정의로움을 실천하고 있는 누군가가 주변에 존재한다는믿음은 가슴을 따뜻하게 했고 그것은 정의로움에 대한 생각을 더 단단하게 해 주었다. 이후 독서 모임을 서둘러서 하고 싶다는 강한 마음으로 작가수업은 급히 마무리가 되었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
작가수업을 시작할 때와는 다른 빛이 보인다. 모호한 빛으로 뭉친 그녀들의 열기가 블랙홀처럼 깊고 급히 끌어당긴다. 순간 그녀의 눈에 [상처받지 않은 영혼_마이클 싱어]이 들어온다. 영성 책들 아니, 내면을 치유하는 다스림의 책들은 논어나 맹자, 도덕경이나 중용 등을 읽고 다스림의 시간을 가졌지만 끊임없이 책과 함께 자신을 들여다봄이 힘에 겨워 그 외의 영성이나 무의식에 관한 책들은 의도적으로 멀리해왔다. 표지를 보며 오늘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그녀를 흔들었고 끌어당긴 것이 바로 '이것'이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럼 이 '기운'은 또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모호한 무한의 세계에서 그녀들은 유한으로 나누고 떠들고 웃는다. 무한의 세계, 우주 어느 곳에 좌표 하고 있는 그녀들은 고유의 빛으로 다시 참 자아를 찾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오늘 이 순간 또한 그 연속의 폴라로이드 사진 속 한 장면과 같겠지만 순간순간이 쌓이면 그녀들이 각자의 참 자아와 만남을 하게 되리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이후 아련한 빛의 모호함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아쉬움을 남겨놓고 먼저 자리를 나왔다. 벌써 현실로 발돋움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참 자아
아쉬움이 쓸쓸함이 되어 그녀의 내면에 있는 아이를 들여다보고 더욱더 외로움을 타며 길을 걷는다. 그 걸음에서 스스로 과연 깨어있는 걸까? 언제까지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해결이 되는 걸까? 자신의 내면의 아이를 찾아가는 연속된 과정 속에서는 과정만이 존재하는 걸까? 내면의 그 아이가 너무 나약해서 못 견디고 주저앉아 울고 놓아버릴까 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부정적 경험인 두려움을 이겨내며 두려움보다 한 발짝 앞선 용기가 속삭인다. 지금처럼 천천히 걸으라고. 앞만 보지 말고 주변의 기운을 좀 살펴보라고. 또 자신이 잘 해왔던 것들을 편하게 하라고 한다. 자연과 사물들의 표정과 소리에 그냥 예전처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애정으로 대하라고. 스스로의 내면에 너무나 지나친 무거움을 올려두지 말라고.
그녀가 남긴 흔적 후 여운을 나누었을 그녀들의 빛은 다시 다름으로 부각될 것이며 각각의 빛 중에서 줄기도 방향도 진하기도 다른 빛이 함께 모여 순백색으로 발산되리라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그녀의 머릿속과 두 다리가 잠시 가벼워진다.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서 책을 예약하고도 뭔가 해소되지 않는 응축된 감정이 여전히 자신을 괴롭힌다. 결국,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전자책을 사서 그녀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내면의아이 '나'와 함께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다.
평행선 위에서 그녀와 내면의 아이가 부지런히 자기의 길을 걷고 있다. 절대 떨어지지 않은 간격으로... 새로운 경험에서 평행선이 주는 수학적 언어는 시작은 하나, 참 자아는 하나라는 거다. 나머지는 본연의 실체의 평행 이동된 직선이며 그것은 페르소나이다. 또, 하나의 깊은 곳을 살펴보면 함께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