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처음 마주한 '수'와 사랑(×)_끝맺으며

무슨 수를 쓴 거니?_ '17'안의 사랑(×)

by 무 한소




세상을 처음 만났을 때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는 내 시선에 들어온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밝다. 너무나 눈이 부신다.' 계속 눈을 뜨고 있기가 부담이 되어 다시 꼭 감아버렸다. 이번에는 부드럽고 조용한 멜로디가 규칙적으로 퍼졌으며 연하디 연한 내 청각을 자극한다. 나오기 전 세상보다는 건조하지만 습도는 꽤 정확했다. 온도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은 모습을 보니 우리의 소중한 만남을 위해 엄마와 아빠가 미리 준비를 했나 보다. 불과 몇 십분 전에 잠들어 있던 나를 괴롭히고 깨워서 세상과 마주하게 한 부모님과 또 다른 여러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놀려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노크를 여러 번 하며 문을 두드리는 그들이 귀찮아서 아주 가볍게 '이제 나가야지.' 하는 꼬물이의 가벼운 생각만큼 세상과 마주하는 일은 간단하고 쉽지만은 않았다.


보호받고 있던 그곳과 전혀 다른 세상을 접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찾아 나오는 길은 어두웠으며 엄마의 노력 없이 혼자서 아무리 힘을 주어도 겨우 꼬물 한 발짝을 뗄 뿐이었다. 엄마의 체력이 매우 중요하다. 꼬물이는 이 세상과 마주하기 전부터 노동력부터 두뇌까지 빛나는 모든 걸 자유롭게 움직였나 보다. 흰 가운을 입은 한 사람, 좀 다른 모습의 복장이 같은 세 사람, 나를 아가라고 부르며 엄마와 꼬물이를 묶어서 이어주는 관을 자르던 아빠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친 내 사랑 엄마를 만나자 불꽃같은 의무감이 생겼다. 울어야만 할거 같은. 길을 잘 찾아서 세상과 마주 했으며 감격을 더하여 부모님과 첫 대면을 했다. 얼마만큼 행복한지 두 분께 큰 소리로 알려 주는 것이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꼬물이의 사랑 엄마께 좀 더 예쁜 모습으로 보이려면 의무감을 강하게만 드러내면 안 될 거란 생각으로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그 시간 모두가 꼬물이를 향해서 큰 소리로 무엇인가 계속 요구를 했다. 이제 겨우 세상과 마주한 지 60초밖에 되지 않는 꼬물이는 세상에 나온 즉시 저절로 생긴 처세술 때문인지 순간 그게 무엇인지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황상 들어맞았고 꼬물이는 세네 번의 심호흡을 대신해서 입을 삐쭉거렸으며 한 번에 모았던 힘을 최선을 다해서 큰 호흡으로 뱉어내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응~애!!!" 그리고 한 번이 어려운가? 막 터져 나온 그 소리는 두 번 세 번은 힘들이지 않아도 편안히 계속되었다. 숨죽이며 지켜보았던 모두의 박수가 터졌다. 그때가 모두의 미소가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물속으로 다시 꼬물이를 빠뜨렸지만 이번에는 화들짝 놀라지도 않았다. 온도가 딱 적당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물속에 있는 꼬물이를 흔들며 영혼의 소리를 뱉어낸다. "사랑한다, 아가야! 이 세상에 태어나줘서 감사해, 널 만나게 되어 아빠는 정말 행복하다. 사랑한다, 아가야!"를 도대체 몇 번을 반복하며 눈물도 계속 훔쳐 내는 게 아닌가. 그래서 꼬물이는 아빠가 주문처럼 주절주절 외는 소리가 영혼의 소리라고 확신했다. 한 번씩 아직 침대에서 그대로 누워있는 엄마가 돌아보며 사랑의 하트를 발사했고 그 그윽한 눈과 마주친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궁금증이 생긴다. 엄마는 언제까지 그 자리에서 누워 있어야 하는 걸까? '난 빨리 엄마랑 직접 만나고 싶은데...' '엄마 냄새를 맡고 심장소리를 느끼고 싶은데...' 갑자기 엄마가 신음소리와 함께 괴로워하며 통증을 호소하고 참고 있던 소리를 지른다. 아직 엄마의 일은 끝나지 않았나 보다.




내게 주어진 삶 속에서는 자신의 의지가 얼마만큼 이었을까? 태어남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며 태어나서부터 바로 시작된 관계 맺기도 스스로 의지가 아닌 엄마, 아빠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세상과 마주하며 꼬물이에게 처음부터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자극을 준건 숫자였다. 수의 선택은 얼마만큼 자신의 의지가 실려 있는 걸까? 오늘도 나는 수를 가지고 삶과 자연을 연계하며 그 속에 대입하고 그렇게 삶에 스며들어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2021년 12월, 한 해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이다. 나의 매 해는 어땠는지... 망각이라는 신의 선물과 동시에 노여움인 그것으로 사라진 시간, 지워진 기억이 많아졌다. 사라진 시간으로 삶의 곳곳에 구멍이 뚫려버렸다. 가끔은 지워진 기억에 감사하기도 한다. 사라진 시간을 더 이상 떠올리려는 노력이 필요 없었다. 그렇지만 나의 3세, 9세, 27~28세... 삶의 구멍이 너무나 많다. 사실은 사라진 시간은 죽음과 직면한 아버님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하게 되었고 여러 해를 지나온 '눈'을 통해서 찾아보려고 애썼다. 아버님께서 기억하는 삶의 시간들은 파노라마와 같이 쭈욱 연결이 되어 있는 걸까, 아니면 수시로 지우려고 노력해 온 내 기억처럼 곳곳에 구멍이 뚫린 것과 같이 사라졌을까? 더구나, 아버님께서는 살아온 시간이 훨씬 더 길다 보니 기억하고 잊어야 할 차트들도 빠른 분류가 필요했겠다. 이럴 땐 김 초엽 작가의 단편소설 [관내 분실]처럼 내 삶의 아픔과 추억까지 통째로 저장할 데이터 공간이 필요하며 그것을 보관해줄 도서관 같은 곳이 정말 생기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 희망을 가져본다.


여전히, 지금의 노력은 계속된다. 그 노력이 좀 단단해지며 사라진 시간들을 조금씩 찾아 나가고 있다. 노력 가운데 '무슨 수'라는 건 가족의 사랑이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삶을 사랑하는 맘이 아닐까 하며 다시 한번 주변을 돌아본다. 내가 삶을 살아오며 그 어떤 상황에 과연 '무슨 수'를 쓸 수 있었을까? 여기에서 얘기하는 수는 숫자의 수이기도 하며 방법과 수단이 되기도 한다. 아직은 여전히 진행되는 내 삶에서 가장 많이 묻어 있고 숨어있는 '무슨 수'는 사랑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마무리를 해본다.


세상과 마주하며 꼬물이에게 처음 가르쳐준 삶은 숫자'4'를 선물해 줬다. 가족이었다. 다음은 숫자 '5'였고 좀 다른 모습, 느낌과 사랑의 가족이었다. 그리고 성장하며 '무슨 수'는 꼬물이와 한결같이 함께 했으며 때론 숫자로 가끔은 수단과 방법으로 찾아왔으며 그것은 원활한 흐름으로 삶을 연결해 주었다. 이제는 곧 그 수가 갖는 의미의 변화가 생기겠지만 아직은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 가장 큰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우리 '가족'을 대신해 주는 '대표 수'의 메시지가 지금까지의 가장 간결하고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 있을 때보다는 가족이라는 큰 수에 포함이 되어 전체수를 어우를 때, 더 큰 사랑이 표출되며 책임감 또한 빛을 발한다. 이제는 '17'이 되어버린 가족 전체를 이루는 수가 마음에 쏙 든다. '17'이 전하는 수학의 언어는 '17'은 소수이므로 가족 전체가 함께 했을 때의 의미가 가장 크다라고 전한다. 소수는 물질로 생각했을 때 가장 작은 기본단위인 원자와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소수는 약수를 1과 자신만을 갖는 수를 얘기하므로 원자와 같이 수를 더 이상 쪼갤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각자 자리에서의 의미나 역할들보다 가족으로 함께 했을 때의 결실이 극대화된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우리 가족은 '16'이라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6'은 2의 거듭제곱이며 소인수 분해를 하면 소인수가 2뿐이다. 다시 말해서 1, 2, 4, 8, 16이 약수인 수이다. 모든 약수가 2의 거듭제곱으로 되어있다. 요컨대, '16'이 전하는 수학의 언어는 가족 전체를 이루는 의미도 크겠지만 그것보다는 짝을 이루는 둘, 둘, 둘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수는 숫자 또는 수단이나 방법으로도 삶을 살아가는 내 나이의 무게만큼, 깊이만큼 철학적 의미로 전해진다. 이후 자연스럽게 삶에 들어가 익어간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슨 수'는 숫자나 수단 방법으로 스며들 듯 찾아온다. 마침내 효율적 역할을 수행한 이후 책임의 마무리를 지을 순간이 찾아온다.



나 역시도 이번 책을 집필하면서 내 삶이 시작되면서부터 동시에 함께해 온 많은 수에 대해 때로는 숫자에만 머물러 있었던 내 시각이 자연관, 가치관등 모두가 확장되어 방법이나 수단, 감정에까지 침투해 버렸다. 수는 나와 모든 것에서 함께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집필 과정 내내 행복하다는 자연스럽고 벅찬 감정이 가끔은 나를 몰아세우기도 했다. "이봐, 서두르라고. 시간이 많지 않아!" 좀 더 힘을 내서 시간 내 두 손으로 아버님의 가슴에 전해드릴 수 있는 책을 조금만 더 빨리 출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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