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지나가는 얼굴

by 말하는 돌

거울은 얼굴을 비추는 얇은 유리가 아니라

한 사람을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깊은 입구였다


그 앞에 서면 얼굴은 형태가 아니라 질문이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거울은 조용히 문을 열었고

그 문 뒤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선들이 어둠처럼 밀려왔다


그때 한 사람은 거울 속의 자신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거울 속 얼굴, 캔버스 속 얼굴,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얼굴

세 겹의 시선이 한 화면 위에 포개어졌다


그 시선은 세상을 정면으로 붙잡지 않았다

조금 비켜선 자리에서 자기 안쪽으로 깊게 걸어 들어갔다


이 거울 앞에서 꾸밈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거울은 허영의 표면이 아니라 존재를 떠받치는 냉정한 판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아름답게 만들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만든 시선만을 선택했다


결국 남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응시였다

흩어진 사물들 사이에서 한 사람은 하나의 표정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거울 속에서, 그리고 거울 밖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이


그 응시는 조용한 불씨처럼 오늘도 천천히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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