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직 남아있다

by 말하는 돌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는 아직 머물러 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빈자리에서 끊어진 숨결이 미세하게 떨리고,

어둠이 삼킨 총성의 잔향이 아직 공기 속에 가라앉아 있다.


기억은 오래전에 흩어졌고 이름도 빛도 형체도 남지 않았지만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온기가 갈라진 흔적 사이로 스며든다.


입도 닫히고 눈도 고요하며 귀는 세상의 소리를 잃었으나

그 침묵의 틈새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호소가 들려온다.


살아 있게 해 달라는,

멈추지 말아 달라는,

울음에 닿지 않은 울음.

그 소리는 목이 아니라 벽에 남은 체온 같은 울림으로 전해진다.


누구였는지 모를 존재들,

지워진 이름, 사라진 표정,

흙 속에 가라앉은 생의 증거들.

그러나 그 익명성 속에서 오히려 우리 마음을 끌어당기는 무게가 생긴다.


너무 낯설어서, 그리고 너무 우리와 닮아 있어서 외면하지 못하는 무게.


얼굴 없는 얼굴은 부재의 그늘 속에 잠들어 있지만

그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우리의 눈은 그 빈틈을 헤매고 그곳에서 문득 알게 된다.


지워졌다는 사실이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돌아보라.

나는 누구도 아니지만,

너의 형체를 닮았다.


들여다보라.

나는 이제 여기에 없지만,

너는 아직 여기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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