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증언

by 말하는 돌

붉은 기운은 응고된 시간처럼 묵직했고,

재의 빛은 오래된 매캐함을 품은 채 미세하게 흔들렸다.

흙빛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숨결을 머금었고,

어둠은 마지막 남은 온기를 천천히 삼켰다.


이 색들은 서로를 외면하지 않았다.

밀치고, 닿고, 갈라지며

부서진 생의 조각처럼 한자리에 남아

낯선 울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조각들은 흩어지기보다

어떤 서사로 엮이기 시작한다.

피는 땅 아래로 스며들어 흔적을 만들고,

재 위로 희미한 빛이 번져

죽음의 그림자를 넘어서는 미묘한 윤곽을 드러낸다.


이곳은 단순한 색채의 배열이 아니다.

살과 흙, 탄식과 잔향이 뒤섞여

멈추지 않은 전장의 냄새를 속삭이는 자리다.


눈은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본다.

피의 철 향이 코끝을 스치고,

거친 흙의 결이 손가락마디에 박히고,

숨 속에 섞인 재가 입술 안쪽을 메마르게 한다.

이 기억은 관찰이 아니라, 감내해야 하는 무게에 가깝다.


붉음은 오래된 상처처럼 뭉근히 남고,

회색은 아무 말 없는 무덤처럼 깊어지며,

검은 선들은 한때 몸이 있던 자리를 덮는 밤이 된다.


색들은 부서진 몸의 기록,

말없이 남겨진 증언이었다.

표면이 갈라지고 피가 말라가도,

어둠이 무너져 빛이 돌아와도,

여기 남아 있는 것은

사람이 겪은 가장 깊은 절망,

그리고 그 절망을 뚫고 새어 나오는

극히 미약한 생의 숨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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