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에는 오랜만에 납골당에 다녀왔어요. 납골당은 꽤 구석진 곳에 있어서 대중교통으로도 가기가 어렵더라고요. 저는 차도 없고 면허도 없어서 이번 설에 큰언니 차를 얻어 타고 다녀왔습니다.
"아빠~ 오랜만에 왔어. 1년 만인가?"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명절에는 납골당에 사람이 꽤 많아서 머쓱하고 괜히 사람들 눈치가 보였어요. 처음 이곳에 모실 때만 해도 꽤 비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예약 대기까지 받는다나 봐요. 이걸 다행이랄지….
가만 아빠의 사진을 들여다보다 인사를 건넸어요. 새해 복 많이 받아. 명절 인사에는 어떤 힘이 있는 걸까요? 별거 아닌 말인데 말이 트이기 시작했어요. 그냥 정말 아빠가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스물 중반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굴고 싶어졌어요.
"나 좀 잘 되게 해 줘. 진짜~ 여기 오기 얼마나 힘든지알아? 다음엔 내가 직접 어? 운전도 해서 올 수 있게 말이야. 그러려면 돈 많~이 벌어야 하거든. 그러면 내가 어 그렇잖어. 차도 사고 시간도 쑥쑥 빼고 툭하면 오지? 더 잘 되게 해줘. 그럼 내가 결혼해서 신랑도 데려오고 손주도 보여줄게. 지금은~ 내가 오기가 힘들다."
당연히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지만요.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아빠한테 칭얼대고 싶은 마음이요. 저는 어릴때부터 혼자 살아서 어른스러워야만 했어요. 오랜만에 엄마 아빠를 만나도 어른스럽게 잘 지내는 척해야만 했는데, 왠지 그 날따라 어린애처럼 굴고 싶더라고요.
그 외에도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한국에 그렇지 않은 가정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살아생전에도 아빠를 찾아뵙는 게 꽤 힘든 일이었어요. 납골당에 오는 것도 꼭 교통 때문이 아니라 사실 심적으로도 불편했어요. 편한 마음으로 온 적이 전에 없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우습게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 한마디 하고 나니까, 칭얼대고 나니까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는 거 있죠.
언니는 오랜만에 와서 아빠한테 부탁만 하냐고 웃었는데 저는 그게 너무 좋았어요. 내가 이제야 맘 편하게 아빠를 볼 수 있구나.
할아버지도 같은 호실에 머물고 계셨기 때문에 저는 마음이 놓였어요. 아빠가 이제 덜 외롭겠다 싶어서요. 아빠가 꽤 오랫동안 혼자 지내셨거든요. 저는 그게 종종 마음에 걸렸어요. 이제 아빠가 저 멀리 어디선가 할아버지 모시면서 다른 호실이지만 같이 계시는 증조할머니, 할아버지와도 도란도란 함께 식사하며 보내시겠구나. 싶어서 이제 마음이 살짝 편안해졌어요.
뭐가 그렇게 마음이 무거웠냐면요. 제가 어릴 때 아빠가 폭력적이었어요. 언니들은 일찍이 서울로 떠났고, 엄마도 이내 저를 남겨두고 떠났어요. 그러다 저도 중학생인 어린 나이에 아빠를 남겨두고 홀로 떠나버렸어요. 아빠, 미안해. 하는 쪽지와 빵과 우유를 자는 아빠 곁에 두고요.
그때문에 중학생 때부터 혼자 살았으니 정말 힘들게 살았죠. 가끔 부모님을 뵈었지만, 제가 원할 때 찾아뵐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원망하며 살았고, 엄마와도 몇 년 전에야 이야기 나누고 마음을 풀었는데 아빠는 없는 거예요. 나는 이제 마음을 풀 준비가 되었는데.
그러다 작년, 엄마가 울며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사실은 엄마도 아빠에게 미안한 점이 있다고.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어서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고. 그 말을 듣던 당시에는 '대체 왜?' 싶어서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그 말 덕분에 저도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아, 그래도 되는 거구나. 그게 가족이구나. 미안해하면서도 좋아하고,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할 수 있는 거구나. 나도 아빠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해도 되었던 거구나. 그래요. 우린 가족이었잖아요.
그래서 이번 설에는 언니에게 부탁하게 된 거예요. 차를 태워달라고, 아빠 보러 가고 싶다고. 좁은 소형 SUV 뒷좌석에 카시트까지 끼워 넣은 채로 아이 둘과 함께 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앞으로도 명절마다 그러기로 했어요.
제가 먼저 언니들에게 차 태워달라 한 게 처음이었거든요? 가고 싶다고, 나도 데려다 달라고 그런 게 처음이었어요. 언니들은 저와 엄마가 어떻게 지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늘 저를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인지 이번에 태워달라 했을 때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이후 언니는 시댁으로 갔기 때문에 저는 버스를 타고, 또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걸어 집에 도착했는데요. 이제야 마음이 많이 가벼워진 게 느껴지더라고요. 늘 미워해야만 해서 찾아뵐 수 없었던 아빠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고 올 수 있어서요. 그리고 머지않은 시일내에 제 차를 몰고 평일 아무 때나 신랑과 손주와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돈도 없고, 면허도 없지만요. 그런 꿈이 생겼어요. 다음의 인생 목표는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돈 벌어서 차도 사고 결혼도 해서 애도 낳아서 다 같이 아빠 보러 오기. 아빠가 분명 좋아할 거거든요. 와서는 힘들다고 툴툴대기도 하겠지만 그마저도 좋아할 거예요. 그리고 더 잘 되게 도와주겠죠. 더 자주 보고 싶어서.
갑작스런 ~ 딥한 ~ 이야기에 ~
당황하지 ~ 않으셔도 ~ 됩니다요 ~
저는 정말 이제 괜찮아서
이제야 꺼내는 이야기거거덩요.
머지않은 때에 정말 잘 될거거덩요.
몸도 마음도 인간관계도 일도 뭐든요.
저 진짜 진짜 그럴거라 믿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