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복 Sep 25. 2024

세상에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비극들이 있다.


 세상에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비극들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겪어본 비극만큼 아픈 타인의 비극도 없다. 얼마 전 한 초등학생 교사가 쓴 책을 보다 어떤 문단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건 초등학생 어린이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일들이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이 바꿀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 인용구는 다음과 같다.


"너한테 냄새 나."

친구 말에 머쓱하게 제 몸을 킁킁거릴 때 느낄 콤콤한 냄새, 3월 첫날에 보낸 가정통신문을 10월까지 가방에 넣고 다니며 느낄 무게,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등교할 때 발을 타고 오르는 늦가을 아침의 냉기, 의자를 집어 던지기 직전 부모의 눈에서 번뜩이는 안광, 너무 먹고 싶었을 그 지구젤리를 먹을 길이 없어서 선생님 서랍을 뒤지면서 느꼈을 심장 박동.

이세이 / 어린이라는 사회 / 포레스트북스 / 2024 / 143p


 이 문단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하지만 아이가 잘 견뎌내고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보며 다음 글자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 순간 그 마음이 내게도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건 아마 내가 잠시 그 아이에게 몰입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겹쳐 보고 있었다.


 마음의 응어리가 그 한 문단만큼 벗겨지며 그 자리에 아주 조금 어른의 마음이 들어선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던 때 조용히 내밀어주던 그 손길들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늦은 밤 내게 저녁을 차려주던 옆집 할머니, 방학 때 점심 도시락 지원처를 찾아다니던 담임 선생님, 제철 과일을 내어주던 친구네 어머니…….


 ’보고 계신가요? 여전히 삶은 녹록지 않지만, 그 손길들만큼 따뜻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어요. 그 온기가 제 안에 단단히 자리 잡아준 덕분에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게 되었다. 민건이도 가는 걸음마다 다정한 어른들이 손길을 보내주기를. 오늘 나는 도저히 보내줄 수 없었던 지난날의 아픔들을 한 문단만큼 보내주고, 그 자리에 새로운 마음이 피어나는 걸 느꼈다.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이토록 감사한 일이구나. 글을 읽고 쓴다는 의미에 희망이라는 한 단어가 더 새겨졌다. 무의식 중에도 써야만 할 것 같았고, 때론 쏟아낼수록 아팠지만 멈출 수 없었다.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마음을 도려내며 글을 썼던 자리에 내일이라는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계속해서 써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을 위해.

작가의 이전글 아침의 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