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인가 백수인가

by 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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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프리랜서로 일해온 지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소속이 없다는 점에서 니트와 닮았다고 생각하곤 해요. 특히나 수입이 없는 달에는 니트와 다를 바 없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니트컴퍼니에서는 프리랜서와 니트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니트컴퍼니에서는 무업기간을 보내는 청년을 모두 니트라 칭하고 있다.


지난 6월 27일 니트컴퍼니 19기 중구점 면접 날 내가 했던 질문이다. 니트컴퍼니는 무업기간을 보내는 청년들을 위한 가상 회사놀이를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그날의 면접은 청년이 회사에 질문하는 거꾸로 면접이었고, 가장 먼저 내가 손을 들었다.


7월을 맞이하면서 프리랜서 기록 모임을 열게 되었다. 프리랜서 3년 차를 맞이하면서 불안은 반려 감정이 되어 애틋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게 곧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일이 줄어들 때마다 두렵고, 이 길이 아니었나 의심스러울 때면 정체성이 혼란이 온다. 7월을 맞이하며 프리랜서들과의 모임을 열었지만, 영원히 해결될 리 없는 숙제를 끌어안고 있다.


회사를 나올 때 나는 인스타툰 작화와 웹툰 보조 작가 외주를 하고 있었다. 1년 반을 그렇게 일하다 인스타툰 일이 끝났을 때 혼란을 느꼈다. 이 일이 끝나면 인스타툰 일을 더 찾아야 할지, 웹툰 일을 더 찾아야 할지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다. 둘 중 뭐라도 되라는 마음으로 일감을 따러 다녔고, 어쩌다 보니 웹툰 PD 일을 시작했다.


웹툰 PD 업무는 웹툰 어시스트나 인스타툰과 또 다른 성격의 일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작품 완결을 이유로 웹툰 보조 작가 업무가 종료되었다. 역시 혼란을 느꼈다. 혼란을 느꼈던 배경 중 하나는 내가 나를 웹툰인이라 소개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웹툰 보조 일을 더 구해야 하나, 아니면 데뷔를 준비해야 하나, 인스타툰 일을 더 찾아다녀야 하나? 고민의 연속이었다. 뭐든 배우러 다녔고, 뭐든 일감을 따러 다녔다. 그렇게 인스타툰 브러시 펀딩 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역시 다른 성격의 일이었다.


그리고 PD 업무도 브러시 펀딩 업무도 종료된 2025년 7월 7일. 지금 나는 프리랜서 기록 모임의 인스타툰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인스타툰 브러시 펀딩과 인스타툰 수업은 인스타툰이라는 점만 같을 뿐 들여다보면 일의 성격은 또 전혀 다르다. 나는 한 일이 끝날 때마다 혼란을 느낀다. 자리 잡는다는 게 어떤건지 모호하게만 느껴진다.


3년 차에 접어들기까지 내가 하고자 했던 일에 도전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저 그 일을 따내지 못했을 뿐이다. 성과가 없었을 뿐이다. 하고 싶은 일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별로 없으니 혼란스러웠다. 일이 없으면 백수 아닌가? 아니지, 일이 있기는 한데 내가 생각하는 내 본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없어서 그렇다. 회사로 따지면 매출이라 해도 되는지 의아했다.


다시 6월 27일 니트컴퍼니 면접 시간으로 돌아가 한 분이 답해주셨다.


"저는 주변의 수입이 적은 프리랜서들과 서로 소소 소상공인 사장님이라고 불러요. 일감이 많지 않지만 작고 소중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어요. 서로를 소소 소상공인 사장님이라 불러주며 인정해 주고 있어요."


그때 내 정체성은 나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사회가 정한 틀에 맞출 필요 없이 내 정체성은 내가 만들어야한다.


반 고흐를 떠올려본다. 그는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지만, 자신을 화가라고 불렀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이 있었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을지언정 그가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자신을 화가라 믿어주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반 고흐를 화가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살아생전에 작품을 팔았는지, 작품으로 돈을 벌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꾸준히 그림을 그렸고, 자신을 화가라 여겼다.


최근 자신을 프리랜서라 해도 되는지 어색해하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대부분 수입의 성격이나 규모를 이유로 쭈뼛대었다.


회사원은 매일 성과를 내지 않는다. 영업사원이 계약을 따내지 못해도 여전히 영업사원이다. 자료조사를 하는 동안에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회사원일 수 있다. 기획이 통과되지 않아도 회사원이다. 월급을 받아서, 4대 보험을 받아서 회사원인걸까? 그렇다면 월급이 발생하지 않은 스타트업 팀들은 모두 백수인걸까? 그렇지 않다.


급여를 못 받는다고 회사원이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프리랜서다. 우리는 작가일 수도, 에디터일 수도, 마케터일 수도 있다. 그건 수입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계약을 따내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고 기획하고 제안하는 게 회사 소속의 회사원들이 하는 일들이라면, SNS에 나라는 회사를 알리기 위해 업로드하는 우리는 나라는 소속의 프리랜서다.


일을 따기 위해 움직이는 모든 행동은 일이다.


꼭 원하는 일로 돈을 벌어야만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회사에는 영업외수익 항목이 있다. 회사에서 벌어들이는 매출 외 수익은 모두 이 항목에 들어간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일로 돈을 벌지 못했다고 기죽을 필요 없다. 회사를 설립하고 하루아침에 매출액을 만들어내는 회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는 자신에게 엄격함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나아가는 나지만 내가 프리랜서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프리랜서는 말 그대로 자유 용병,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으니까.


반 고흐에게 테오가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서로가 테오가 되어주길 바란다. 그가 자신을 화가라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는 단 하나뿐인 든든한 지지자, 테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우리에게 서로가 테오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프리랜서가 될 수도, 백수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오로지 우리 자신만이 정의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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