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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콤 Sep 13. 2022

밀러의 법칙을 더 잘 이해하기

우리 사용자는 어떤 가치 체계에 익숙할까?

지난 주말에 집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꼬기를 먹었다. 반주 몇 잔 때문에 빨개진 얼굴로 열심히 꼬기를 굽고 있었는데, 함께 식사하는 분께서 식당 사장님이 안내문을 참 잘 썼다고 한번 보라고 하셨다. 그 안내문은 다음과 같았다.


김치, 파절이는 기름이 빠지는 불판의 밑에서 구워 드세요. (마늘, 마늘쫑 포함)


김치와 파절이를 묶고, 마늘과 마늘쫑을 따로 묶어 써서 이해하기 좋다는 것이다. 이 안내문을 읽고, 사장님이 안내문을 작성할 때 사람들의 인지 부하를 고려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꿈보다 해몽일까?) 만약 사장님이 안내문을 아래처럼 썼더라도 문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김치, 파절이, 마늘, 마늘쫑은 기름이 빠지는 불판의 밑에서 구워 드세요.


굳이 해석을 조금 덧붙여보자면, 김치와 파절이는 김치 종류로 볼 수 있고, 마늘과 마늘쫑은 마늘로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점에서 한데 묶었을 때 자연스럽고 기억하기 효과적일 수 있다.




1. 밀러의 법칙과 인지 부하


사장님은 김치와 파절이와 마늘과 마늘쫑을 불판 아래쪽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기억하길 바라셨다보다. 사장님이 인지심리학을 공부한 디자이너 출신일 확률이 그리 높지는 않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정보를 기억하기 쉽게 묶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자연스러운 방법일 수도 있겠다 추측해본다.


사용자 경험의 기본 심리학 법칙 중에 밀러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인지심리학과 신경과학을 전공한 조지 밀러(George A. Miller) 박사는 1956년도에 단기 기억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연구의 핵심은 사람의 단기 기억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낱개의 정보를(Bit) 정보 덩어리로 만들면(Chunking) 더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복잡한 정보를 덩어리화함으로써 외우기 쉽게 할 수 있다.


정보를 덩어리화 하면 사람의 단기 기억의 한계를 완화하고, 정보를 받아들일 때 발생하는 뇌의 인지 부하를 줄일 수 있다. 이를 적용하는 법을 알아보기에 앞서, 인지 부하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짚고 넘어가자.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뜻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인지부하[ 認知負荷 , Cognitive Load ]

인지부하 이론의 핵심은 인간의 작동기억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학습자에게 너무 많은 양의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하면 인지적 과부하를 일으켜 효과적인 학습을 방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지적 과부하는 과제 해결에 요구되는 인지 자원의 양이 인지구조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의 용량을 초과할 때 발생하는 현상으로서(...)

[네이버 지식백과] 인지부하 [認知負荷, Cognitive Load] (HRD 용어사전, 2010. 9. 6., (사)한국기업교육학회)


컴퓨터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정보처리장치든 정보를 처리하는 데에는 당연히 일정량의 부하가 걸린다. 부하가 걸린다는 것은 장치가 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부하가 과도하여 정보처리장치(뇌)가 과부하 상태가 되었을 때이다.


서비스가 아무리 양질의 정보를 많이 제공하더라도, 정보를 받아들이는 뇌의 연산 속도는 한계가 있다. 너무 많은 정보는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능력을 저하하고 결국 정보를 이용하여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한다. 밀러의 법칙의 교훈은 콘텐츠를 적절한 크기의 덩어리로 나눠 정리해두면 사용자가 정보를 더 쉽게 처리하고 이해하고 기억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정리되지 않은 건 인지하기 어렵다.






2. 이제 정보를 묶어보자.


만약 우리가 지금부터 어떤 정보 무더기를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묶으려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서로 연관이 있는 정보끼리 그룹핑하려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a, B, c, d, e, f, G, H라는 정보 비트가 있다고 하자. 이것들을 대문자와 소문자라는 가치 체계로 분류하는 것은 꽤 자연스럽다.


묶어주기만 하면 된다.




3. 이 정보들은 어떤 가치 체계로 묶일 수 있을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정보를 묶기 전에 우리 서비스가 제공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정해져야 한다. 그게 무슨 말일까?


정보 자체가 가진 특성보다는, 내부적으로 설정한 가치에 따라 분류한다.


대문자와 소문자로 묶을 수도, 색깔별로 구분할 수도, 홀수와 짝수로 나눌 수도 있다. 이 가치들은 동질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답은 정보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내부적으로 가치에 대한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나와 함께 서비스를 만드는 동료들은 어떤 가치를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우리 사용자는 어떤 가치 기준으로 정보를 바라보고 있을까? 가치 기준이 일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혼돈의 카오스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


필연적으로 정보를 받아 보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더 중요할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 현실에서는 어떤 대상에 서로 다른 가치들이 혼재되어 나타나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전에 봤던 실험 하나가 떠오른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관점에 따라 같은 대상일지라도 서로 연관된 것을 다르게 인식한다. 비단 서양과 동양이라는 누가 봐도 다를 것 같은 멀리 떨어진 두 그룹에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아마 지금 옆에 있는 회사 동료와 여러분의 책상 정리 상태도 꽤 다를 것이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인식하는 데 있어 조금씩은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 체계가 있는지 사용자 조사를 통해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가치 체계는 우리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사용자의 멘탈 모델이기도 하다.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면서 멘탈 모델, 다양한 UX 법칙 등 고려해야 할 원칙들이 참 많다. 결국 정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정보를 잘 그룹핑하기 위해서는 가치를 판단할 줄 아는 눈과 유저 테스트에서 숨겨진 니즈를 발굴할 수 있는 관찰력이 중요하다. 또 회사 내부의 정보 공급자들을 설득하고 동의할 만한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겸비해야 한다.




4. 마치며.(feat. 테슬러의 법칙)


사실 밀러의 법칙은 마법의 숫자 7에 관한 이야기로 유명하다. 사람이 한 번에 기억할 수 있는 숫자는 7개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밀러 이후에 실시된 후속 연구들에 따르면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최대 개수는 7이 아닌 4라고도 하고(Baddeley 1996, Nelson Cowan 2001), 청크 하나를 입으로 소리 내어 읊는 데 2초를 넘기지 않아야 한다고도 한다. 사실 밀러 박사가 처음 Magic Number 7이라고 언급한 것도 본인이 실시한 두 연구에서 우연히 평균값이 7 정도가 나와서 신기했다는 뜻이었다고... 이를 수많은 후속 연구자들이 인용하면서 의미가 곡해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정보의 개수가 몇 개여야 하는지는 신경 쓰지 말자. 덩어리의 개수가 7개 정도인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보를 덩어리로 묶으면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렇듯 밀러의 법칙을 잘 활용하려면 대상을 분류하고 체계에 맞게 정리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체계가 없는 것에 어떤 가치를 부여해서 체계를 만드는 것, 즉 밀러의 법칙은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에 대한 법칙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만약 누군가 디자이너가 정보를 묶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물어본다면, 또 다른 UX 법칙인 테슬러의 법칙을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복잡성 보존의 법칙이라고도 알려진 테슬러의 법칙에 따르면, 모든 시스템에는 더 줄일 수 없는 일정 수준의 복잡성이 존재한다.



모든 서비스에는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최소한의 복잡성이 존재하는데, 이 복잡성으로 인한 부담은 서비스나 사용자 중 한쪽이 감당해야 한다. 우리가 이 복잡성을 처리하지 못하면 사용자가 이 부담을 직접 처리하느라 만족스럽지 못한 경험을 할 것이고("정리가 왜 이렇게 안되어있지? 이해하기 너무 어려워"), 당연하겠지만 사용자가 서비스에서 이탈하기 쉽다.


사실 정보를 묶어서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은 디자인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문제다. 이 능력을 갈고닦는 것은 나와 같은 노력형 디자이너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면서, 동시에 디자이너로서 만들어낼 수 있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참고자료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864034/

https://story.pxd.co.kr/612?fbclid=IwAR26XuYP9Rqx5KX6ROOyN5FfWqCNQ6RBy-SM-1MktEJhC1o4Id9OIoZuJVY

https://www.dispatch.co.kr/2157567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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