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육아일기-8
수진이의 입에서 '엄만 남자 친구 없어?'라는 질문이 나온 건, 유치원을 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마도 유치원을 처음 다닐 무렵 저녁이면 내가 '너 남자 친구 생겼어?' 하고는 물어보곤 했었는데 늘 '남자 친구 없단 말이야' 하고 소리를 질러대더니만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남자 친구 없어?' 하면서 먼저 내 입을 막아버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자신을 놀리는 엄마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한 번은 집요하게 '엄마는 남자 친구 정말 없어?'라고 물어보더니만 내가 '없다는데 왜 자꾸 물어보니?'라고 신경질을 내자, 혼잣말로 '이렇게 예쁘게 생긴 우리 엄마가 왜 남자 친구가 없을까?' 하고 혀를 쯧쯧 차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엄마! 머리를 한번 길러보면 어떨까? 아빠는 머리를 파마 하지 않은 긴 머리에 화장을 멋있게 한 언니들을 좋아하던데...' 그때의 황당하고 기막힘이란...
아마도 애 아빠가 아이와 만날 때 가끔 여자 친구와 함께 만났던 모양인데 아이 눈에도 그 언니들과 엄마의 다른 점이 보였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수진이는 다른 여자애들이 그러하듯 옷 입는 거며 머리 스타일이며 이런 것에 관심이 참 많다. 그래서 내가 어떤 옷을 입고 나갈라고 하면 그 옷은 안 어울린다며 잔소리를 해대는 등 까탈을 부리는 편이다.
벌써 내 시계며 옷이며 수진이의 '찜'에 의해 초등학교와 중학생이 되면 수진이에게로 가야 할 물건들이 꽤 있다. 나는 이런 수진이를 보며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와 아빠 양쪽으로 고르게 관심이 분포되어야 할 텐데 엄마와만 살다 보니 지나치게 엄마로 표현되는 여자의 역할만을 보게 되는 건 아닌지 좀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다.
이렇듯 수진이의 엄마에 대한 관심은 7살 여자아이의 엄마에 대한 관심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조숙한 점이 많아 걱정이다. 이혼을 한 후, 한 남자를 알게 되었는데, 저녁이면 놀이방에서 수진이를 데리고 오고 돌봐 주어야 했으므로 데이트를 할 시간이 없었다. 자연히 우리는 전화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수진이는 내가 남자와 전화를 하기만 하면 귀신 같이 잘도 알아냈다.
그리고는 '누구야, 엄마', '이모라니깐', '아닌 것 같은데', '아냐, 너 모르는 엄마 친구야' '나 인사하게 바꿔 줘 봐' 이런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전화를 거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모두 심드렁해져서 서둘러 전화를 끝내기 일쑤였다. 이러니 청춘사업이 될 리가... 희한하게도 여자 친구들과의 전화는 하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다가 남자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 같다 하면 어떻게 용하게도 알아내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전화받기 전까지 멀쩡하게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던 아이는 내가 남자와 전화 통화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갑자기 물이 마시고 싶고 배가 아파지고 목에서 자꾸 기침이 나온다니.... 로맨틱한 분위기의 전화 통화는 애초부터 틀린 일이었다. 그리고는 그 친구와의 관계는 더 이상 발전할 일도 없이 무덤덤하고 심심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만약 앞으로 내게 남자 친구가 생긴다면 수진이에게도 당당하게 인사를 시키고 함께 만날 수 있는 친구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야 수진이가 엄마의 남자 친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이다음에 자라서도 자신이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될 때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수진이가 자연스럽게 나의 결정을 따라오게 될지는 좀 미지수다. 한 번은 수진이에게 '수진아! 엄마 결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다. 수진이 대답 왈 '엄마, 아빠하고 결혼하면 되겠다' 수진이의 이 대답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은 미어지는 듯했다.
이 아이가 어른들의 세계를 어떻게 알까? 당연히 다른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사는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겠지... 수진이가 엄마의 남자 친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날은 결국 내가 어떤 남자에게 마음의 문을 다시 열게 된다는 것과 똑같은 의미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