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비애

싱글맘의 육아일기-16

by malee

이곳 미국에 온 후 처음으로 이사를 했다. 그동안 언니와 함께 살다가 수진이와 나만 아파트를 얻어 나오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의 첫 이사. 낯선 이곳에서의 이사는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일단 전기며 인터넷 설치 등의 이전도 번거로웠고 아파트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달 개념의 월세로 살아보지 않았던 한국에서의 생활 감각으로 이곳 아파트 월세를 내야 하는 개념의 전환도 어려운 일이었다. '무소유 상팔자'라고 하지만 원래 빈 몸밖에 없다며 인생을 미리 저당 잡혀 '빌(bill)에 파묻혀 빌빌 거리며 살다 죽는다'는 우스개 말처럼 다달이 아파트 월세, 차 월부, 모든 것을 월부로 갚아 가는 미국인들이 불쌍해 보일 뿐이다.

0125141954c.jpg 부산 감천마을 벽화. 아기자기한 초원에 아담한 집 한채가 있다. 겉만 화려한 House가 아닌 Sweet Home으로서의 가정은 오롯한 휴식의 공간이다. Photo by malee

이건 집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집값의 20%만 자신의 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는 모두 은행에서 론을 받은 후 다달이 이자와 원금을 꼬박꼬박 갚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꽉 짜인 가정 경제이다 보니 목돈을 모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니 캐시로 딱딱 돈을 내는 한국인들이 그들 눈에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죽어라고 맞벌이를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며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는 경제구조이므로...


아파트를 얻은 후, 수진이와 나는 이사 갈 집을 보러 갔다. 엄마와만 떨어져 나온다는 생각 때문인지 수진이는 조금 들떠 있었다. 집을 둘러보고 나와 걸어오는 길에 "엄마, 좋다! 그런데 왜 방은 하나도 없는 거야?" 스튜디오로 이사를 가는 것이므로 방이 있을 리 없다. 원룸이라는 개념을 알리 없는 수진이 눈에는 방은 없고 거실만 있는 이런 아파트는 처음이었으니 당연할 것이다. "이제, 수진이 이사 나오니까 엄마 말 잘 듣고, 속 좀 썩이지 말고..." "물론이지, 이제 싸울 사람도 없는데 뭘..."


사촌언니, 오빠와 같이 살면서 지 딴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나 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를 지르며 싸워대는 통에 나까지 스트레스를 받았었으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면 늘 수진이의 욕구불만에서부터 시작되는 싸움이다. 엄마가 갖고 온 거니까 자신이 다 가져야 하고 늘 자신 먼저 좀 대접해줬으면 좋겠고...


엄마와만 있을 때에는 늘 자기 위주로 생활을 하니까 가능했던 일이 이모와 언니, 오빠와 함께 생활을 하니 한마디로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던 거다. 그러다 보니 늘 징징거리고 훌쩍거리는 쪽은 수진이었던 모양이다.


이러다 보니 수진이도 엄마에게 불만이 쌓였는지 '엄마도 이모처럼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게 됐다. 회사를 나가야만 하는 엄마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줄 알았던 수진이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아빠 없이 엄마와 단 둘이서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그러면 엄마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 안 해도 수진이가 알 거라고 생각한 내가 너무 앞서 간 걸까?


"그럼 우리는 누가 돈 벌어다 주니?" "큰 이모부가 벌어다 주면 안 돼?" 아마 수진이 눈에는 큰 이모부가 제일 믿음직스러워 보였나 보다. 혼자 벌어 생활하기에는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나라에서 악전고투하는 내 처지를 생각해보면 어떨 때에는 '팔자지...' 하다가도 또 어떨 때에는 아직까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뭐가 억울하다는 거야, 다 너의 선택이었잖아. 결혼도 이혼도 다 모두 너의 선택이었지...' 내 마음속의 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억울한 건 억울한 거다. 이걸 팔자 탓을 해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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