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육아일기-18
가능하면 수진이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생각만큼 완벽하진 않지만 말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조카아이의 야구 시합을 보러 갔다. 우리가 흔히 할리웃 영화를 보면 아버지들이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며 축구 등의 코치를 하면서 게임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미국은 각 지역마다 리틀 야구단이 결성돼 있어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아빠들로 각 공원은 북새통을 이룬다.
얼마나 훈련이 심한지 토요일 새벽, 일요일 오후 등 도무지 시도 때도 없이 훈련을 하고는 또 게임을 하며 실전 훈련을 한다. 여자애들은 축구를 많이 하는데 딸아이에게 열심히 훈련시키는 아빠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수진이와 나는 열심히 응원을 하는 부모들 틈바구니 속에서 멀뚱 거리고 앉아 있었다. 물론 조카아이의 야구 시합을 볼 겸 해서 갔지만 의외로 끈끈한 미국 가정의 모습은 참 부러웠다. 공원은 한가로웠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잔디며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들 그리고 갖가지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한층 봄의 기운을 품어내고 있었다. 사촌오빠의 야구시합을 구경하던 수진이 역시 심드렁해졌는지 공놀이를 하겠다며 뛰어다니고…
사실 수진이는 운동신경이 좀 없는 편이라 운동하는 것을 무서워한다. 말은 안 하지만 학교에서도 노는 시간에 놀이 기구 근처에는 가지도 않고 친구들과 수다 떨며 과자나 껌 등을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눈치다.
한 번은 "엄마, 셀리 리는 이상해. 내가 멍키 바 하기 싫다는데도 자꾸 하라고 그래. 내가 안 하니까 나랑 안 놀아” 멍키 바란 철봉을 나란히 만들어놓고 아이들이 매달려서 건너는 놀이기구를 말하는데 겁이 많은 수진이로서는 그것이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졌던 것이다.
수진이는 매일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이 때문에 서먹해지자 속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잘해보려고 공원에 있는 철봉에 매달려 오도 가도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수진아, 그렇게 계속 매달려 있지만 말고 일단 한쪽 팔로 앞의 봉을 잡고, 다시 한쪽 나머지 건너오고…”
수진이와 나는 약 30분을 씨름한 끝에 끝까지 건너올 수 있었다. “엄마, 나 드디어 건넜어” 몇 번의 연습으로 자신감이 붙었는지 내가 잡아주지 않아도 혼자 차분차분하게 건너고 있었다. 물론 얼굴이 빨개진 채로 낑낑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침내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등굣길… "엄마 나 가슴이 막 뛰어,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멍키 바 하는 걸 보여줄 생각을 하니까” “괜찮아,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알았지?” 나 역시 수진이에게 장단을 맞추고는 수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오후 3시, 학교에서 돌아와 외삼촌 집에 있을 수진이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해보니 휴식 시간에 수진이가 친구들 4∼5명이 보는 곳에서 멍키 바를 건넜더니 친구들이 눈이 동그래졌다며 자랑이 대단했다. "엄마, 셀리 리가 오늘 얼마나 프렌드리 하게 해 줬는데” 지 딴에는 자랑을 한 거였지만 수진이의 조잘거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사실 염려가 되는 부분이 생겼다.
어떤 것을 제대로 못한다고 함께 놀지 않고 따돌리는 문화 같은 것이 의외로 초등학교 1학년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셀리 리라는 수진이의 친구 아이가 대장 노릇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걱정 말이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수진이도 요즘은 잠꼬대를 영어로 할 정도로 폭풍 성장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셀리 리에게 많이 의존을 해왔었다. 그 친구가 영어를 핑계로 다른 생활에서도 수진이를 쥐고 흔들려는 것 같아 영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이다.
하여간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기 싫어 결국 멍키 바를 건너간 수진이가 나는 참 대견스럽다. 앞으로 수진이 앞에는 다양한 종류의 난관들이 펼쳐질 것이다. 수진이가 과연 이런 난관들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아니 수진이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엄마인 내가 강해져야 할 텐데… 과연 나는 강하게 나 스스로를 다지며 살고 있는지 답답할 뿐이다.
수진이가 멍키 바를 건너려고 입을 앙 다물던 모습이 생각난다. 단지 저것을 건너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앞으로 나아가던 수진이로부터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간절히 무언가를 원하다'. 이것 아닐까? 과연 내가 간절히 원하는 그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