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녀 히스테리

싱글맘의 육아일기-17

by malee

데스칸소 가든이라는 곳을 다녀왔다. 살고 있는 곳에서 차로 5분 거리의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곳은 미국 최대의 동백꽃 서식처. 동백꽃은 물론이고 우리가 목련이라고 부르는 매그놀리아, 수선화, 베고니아, 아이리쉬 등 갖가지 꽃과 나무로 오랜만에 눈호강을 한 주말이었다.


동백꽃은 마지막 자태를 뽐내려는 듯 흐드러지게 피어 꽃잎들을 땅으로 떨어트렸고 나뭇가지 사이사이 들어온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동백나무의 그 어두운 초록색 이파리를 연두색으로 보이게 할 만큼 강렬했다. 하지만 나는 오랜만의 눈호강에도 마음이 썩 밝아지지가 않았다. 햇살을 받아 연두색으로 보이는 나뭇잎처럼 내 마음도 좀 환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가든 곳곳에는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리는 가족들, 러그를 깔고 책을 읽는 젊은 부부들, 호젓한 곳에서 꼭 껴안고 입을 맞추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심술이 났다. 예전엔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것, 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요즘 거의 노처녀 히스테리와 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라 카냐다에 위치한 데스칸소 가든(Descanso Gardens)은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로 잘 가꿔진 정원이다. Copyright@Heekwan Yang/Photographer


내면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하니까 매사에 짜증이 나고 신경질만 났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지내다가 이렇게 야외로 나가거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가족 단위로 이루어지는 레저나 문화 형태를 보면 은근히 부아가 나고 누군가에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애 아빠와 극심하게 사이가 안 좋아지고 가정이 엉망이 되면서부터 나는 늘 욕구불만에 시달렸던 것 같다.

20170703_135259_001.jpg 잔잔하게 찰랑거리는 물처럼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다. Photo by malee / Lake Crescent, Olympic National Park in Washington.

내가 생각하는 가정과 바람직하게 생각해왔던 부부의 모습, 아이 예쁘고 똑똑하게 키우고 살림 똑 떨어지게 하는 그런 주부의 모습... 그 무엇 하나 내가 원했고 이루고 싶었던 것들을 이룰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왜 매사가 다 짜증스럽고 불만족스러운지 몰랐다.


이혼을 하고 난 후 마음이 그나마 편안해지고 시간이 지나자 나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충족시킬 수 없는 욕구와 그것을 알기에 아예 욕구 자체를 갖지 않으려 하므로 무의식 속에서 이 욕구는 늘 불만족으로 남아 나를 힘들게 한다.


이럴 때 아무리 조심하려 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늘 나의 신경질 대상은 수진이다.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많고 또 수진이가 날 귀찮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이니 나의 신경질이 아마도 수진이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며칠 전이었다. 평소 수진이는 학교 숙제 이외에 엄마가 내주는 숙제를 꼬박꼬박 잘 해왔었다. 한데 그날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가방을 검사하니 학교 숙제고 내가 내준 숙제고 해 놓은 것이 없었다. 그날따라 몸도 마음도 왠지 피곤하고 짜증이 나던 차에, 나는 숙제를 해놓지 않은 수진이에게 있는 신경질을 부렸다.


"아니, 그렇게 숙제를 하나도 하지 않고 민주(사촌동생)랑 놀고 있어? 네가 정신이 있는 애야" 계속되는 내 잔소리를 눈물 그렁거리고 듣고 있던 수진이는 결국 울음을 왕 터뜨리고는 "엄마는 왜 매일 나한테 신경질만 내는 거야? 지금부터 하면 되잖아"


울음 섞인 수진이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계속 퍼부어대던 말을 뚝 끝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수진이한테 왜 이렇지?'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힘들다는 핑계로 애가 원하는 만큼 챙겨주지도 못하고 매일 아이가 '엄마 허그해 줘'를 입에 달고 살게 만드는 내가... 아이가 맘에 들지 않게 행동을 하면 신경질을 부리고 애를 달달 볶았던 것이다.


나는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수진이를 얼른 감싸 안고는 '수진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 신경질 내는 거 아냐, 언제 엄마가 너한테 신경질만 냈어' 오랜 시간을 안아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수진이의 그 따끔한 말 한마디를 듣는 순간, 그동안 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수진이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걱정이 됐다.


늘 늦는 엄마, 이모네 집이나 외삼촌 집에서 사촌들과 지내면서 어찌 됐건 주눅 들었을 아이를 포근하게 안아주지는 못할망정 숙제를 안 했다며 그렇게 야단을 치고 신경질을 냈을까? 아무래도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이혼녀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살고 싶다는 욕구, 하지만 쉽게 이루어질 수 없고, 아니 정말 건강하고 정상적인 가정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무작정 가정을 다시 만들기도 겁나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 이 모든 것에 대한 불만족이 히스테리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혼자 결론을 내린 것이다.


요즘은 이혼녀, 이혼남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데 조만간 노처녀 히스테리 같은 이혼녀 히스테리라는 사회학적 심리 용어까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나의 이 히스테리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어떨 때는 겁나게 씩씩해지다가 어떨 때는 무기력에 빠져드는 나의 생활이 좀 더 안정이 되고 내 마음도 편안해지길 바랄 뿐이다. 물론 모든 마음과 욕심의 조절이 내 마음에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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