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육아일기-15
3월 4일은 수진이의 8번째 생일이다. 미국에서 처음 맞는 생일이라 수진이는 요즘 마음이 들떠있다. 셀리도 초대하고 리사도 초대하고 카일리도 초대하고… 얼마 전에 있었던 희정이 언니 생일처럼 공원에 가서 엄마가 고기도 구워주고 언니·오빠·친구들이랑 놀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거의 협박조로 이야기하곤 하는 것이다.
나는 매일 ‘그래 알았어’ 건성으로 대답을 해왔는데 어느새 생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수진아, 엄마가 공원에 가서 생일 파티해주는 건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우리 맥도널드에서 생일 파티하면 안 될까? 플레이룸에서 신나게 놀기도 하고 말이야…’
한참 나를 빤히 쳐다보던 수진이는 "O.K, I Know" 하더니 ‘뭐 우리 엄마는 회사 다니느라고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고기를 만들어서 공원에 가겠어?’ 하는 것이 아닌가. 나 역시 ‘그래 수진아 엄마가 정말 시간이 없다’ 너스레를 떨고는 맥도널드에서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지만 뒷맛은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늘 수진이에게 성에 차지 않는 엄마로 인식돼있는 나 자신이 갑자기 싫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진이가 자신의 처지에 대해 갖는 불만족 모두가 아이의 성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요즘 들어 부쩍 걱정이 되기 때문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이곳 미국에서도 엄마가 직장을 다니면 아이가 친구를 사귀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특히 수진이처럼 이모나 삼촌 집에 있어야 하는 경우라면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오기도 어렵고 또 친구 집에 놀러 가기도 어렵다. 주말에 열리는 생일 파티에 참석하면 그나마 학교 친구와 어울릴 기회를 가질 수 있을 텐데 아직 초등학교 1학년에 불과한 어린아이들이 교실에서 주고받는 생일파티 초대라는 게 영 믿을 수가 없어서 번번이 기다리다 허탕을 친 경우가 많았다.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해 엄마들끼리 연락을 하면 될 터인데 집 전화번호를 알아오라고 해도 매번 잊어버리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진이도 미국 친구들 생일에 두 번 초대를 받았지만 한 번도 생일파티에 가지를 못했다. "엄마가 집에 없으니까 생일 파티에 가질 못했잖아" "이모한테 좀 데려다 달라고 하지?" "친구들은 다 엄마가 데려다준 단 말이야" 엄마를 향해 입을 삐죽이는 수진이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왜 저렇게 융통성이 없을까? 답답해지기도 한다.
그저 엄마만 달달 볶아대려고 하는 수진이의 행동은 나에 대한 그리고 아빠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라는 우리 가족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나름대로 ‘양보다 질’이라는 생각으로 수진이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요즘 나는 내가 쏟고 있는 수진이에 대한 ‘사랑의 질’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새삼스럽게 고민을 하고 있다.
하여간 수진이와 나는 밤늦도록 생일 초대장을 만들어 목요일 등굣길 책가방에 넣었다. 나는 수진이에게 “아이들이 생일 파티에 참석할지 어떨지를 꼭 내일까지 알려달라고 해, 알았지?” 하고 몇 번을 말했다. 수진이가 미덥지 않아 몇 번을 다짐받는 것도 모자라 아침 등굣길 차에서 내리는 수진이의 뒤통수에 대고 다시 한번 이야기를 했다.
“알았다니깐…”
엄마의 잔소리가 싫다는 듯 나를 향해 눈을 흘기고 차에서 내린 촐랑거리고 뛰어가는 수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녁 퇴근길, 수진이를 만나자마자 “친구들에게 초대장 줬어?” 하고 물었다. “물론이지, 오늘 엄마에게 가서 이야기해보고 내일 이야기해주기로 했어”“아마 아이들이 10명은 올 걸”. 수진이는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엄마가 회사를 가지 않는 토요일에 생일 파티를 해야 한다며 생일을 하루 앞당겨 파티를 열기로 한 토요일 아침… 수진이 성화에 못 이겨 감기에 걸려 목은 붓고 열이 나는 몸을 이끌고 아침 일찍 맥도널드로 향했다. 벤치 의자에서 꼬박거리고 졸다가 깨기를 몇 번… 초대장에 적힌 파티 시간인 11시가 넘고 12시가 다 됐지만 수진이의 친구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미리 오지 못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2명의 한국 친구 이외에 전화를 걸어올 수 없다고 자동응답기에 녹음을 한 2명의 미국 친구야 그렇다 치고, 수진이가 8명에게 보냈다는 초대장 중 4명에게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던 것이다.
12시가 좀 넘어서 사촌들과 같은 아파트의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왔을 뿐이었다. 친구들이 오지 않는 생일파티… 엄마인 나로서는 속이 무척 상했다. 수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고민이 됐지만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진이는 사촌 언니 오빠들과 노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올케언니가 1학년은 아직 어려서 초대장을 받아도 엄마와 통화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며 걱정 말라고 했지만 나는 이번 생일파티를 치르면서 혹시 수진이가 아직 영어를 잘 못해서 아이들에게 따돌림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됐다.
이제 이곳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6개월…‘첫걸음에 어떻게 영어를 술술 해’ 하면서 ‘아직 어리니까 잘 적응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나 자신이 좀 한심해졌다. 이곳 미국에 오기로 결심한 건 ‘수진이 좀 똑똑하게 키워보겠다는 생각으로 왔으면서 왜 이렇게 무심했을까?’ 되돌아보니 학교 숙제를 봐주는 것도 벅차서 쩔쩔맸으니 나머지 공부는 더욱이 나 몰라라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워낙 욕심이 많은 아이니까 지기 싫으면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만 했으니… 하여간 극성스럽게 공부를 가르치지 않는 엄마 때문에 수진이의 영어가 늘지 않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되기 시작했다.
이번 수진이의 엉망진창 생일파티를 치르고 나는 직장을 다닌다는 핑계로 대충 넘어가려던 아이의 학교 생활 체크를 좀 더 신경 써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됐다. 하지만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초등학교를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교육환경도 낯설고 영어에 익숙하지도 않은 내가 아이의 학교 생활을 완벽하게 꿰뚫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라고 보아도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흔히 미국의 학교는 자유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긴 쉽지만(한국에서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막상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보니 이곳의 교육제도가 생각보다 엄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졌던 나의 책임이겠지만... 누구에게나 환상이 깨지는 건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래야 현실에 발 붙이고 살 수 있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