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Ⅱ

힐링으로서의 글쓰기

by malee

이민생활이 다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한국에서는 별생각 없이 들었었는데 막상 미국에 와서 생활을 하다 보니 뼈에 사무칠 만큼 그 이야기가 가슴에 와 꼭꼭 박힐 때가 많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던 것에 비해 형편없는 월급이며 작업 환경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외로움이다. 가족이 모두 여기에 있다 보니 미국에서 홀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나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늘 외로움에 시달린다. 왜 가족과는 나눌 수 없는 감정의 교류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곳에 있는 친구, 선배, 후배들 생각을 하면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을 때가 많다. 특히 일을 끝내고 늦은 시간 프리웨이를 운전하다 보면 그런 그리움이 울컥 쏟아지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매일같이 만나던 친구, 선배, 후배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면서도 또 그들이 보고 싶어 눈물이 베어난다. 퇴근길 프리웨이를 달리다 보면 펑 뚫린 도로 양 옆으로는 어두컴컴한 산만이 펼쳐져 있고 멀리 있는 주택단지의 노란 불빛은 눈물에 어려 아른거린다.


‘왜 여기서 이렇게 고생하며 살고 있는 거니?’ 하지만 또 다른 내가 나에게 묻는다. ‘그럼, 너에게 다른 선택의 길이 있었다고 생각해?’ 아니다. 나에겐 어떤 선택의 길도 없었다. 엄마와 형제, 자매들이 있는 이곳으로 건너오는 것 이외에…


가정이 깨져버린 나에게 무슨 선택의 길이 있었을까? ‘열심히 살아야지, 수진이를 위해서, 아니 나 자신을 위해서…’ 나를 다독이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한다. 나의 퇴근길은 늘 이렇다. 집에 도착해서는 대충 정리를 하고 컴퓨터를 열어 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해줄 거는 빨리 답장을 하고, 전화를 해야 할 게 있으면 인터넷에 접속해서 전화를 한다.


헌데 어제 메일을 열어보던 중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친동생처럼 따르고 서로 위해주던 후배 남편의 죽음을 알리는 메일이 날아와 있었다. 후배 남편 역시 직장 후배였던 관계로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친하게 지내었다. 작년부터 췌장염에 걸려 병원신세를 지더니 결국 암으로 발전해 암 진단을 받은 지 불과 한 달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결국 세상을 등졌다.


이럴 수가! 그렇게 착하고 자신의 일보다 다른 사람의 일을 내 일처럼 해주던 녀석이었는데… 불과 서른을 갓 넘긴 와이프와 이제 15개월 된 딸아이만을 남겨두고 저 세상으로 떠나다니… 기가 막혔다. 암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후, 친구에게 대신 병문안을 가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병문안을 갔던 그 친구는 죽음을 앞두고 병실 침대에 뒤돌아 앉아 열무비빔밥을 열심히 비벼먹는 환자를 보면서 눈물이 나, 병실을 뛰쳐나왔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죽음은 그렇게 예정 없이 찾아오던가… 작년 미국으로 떠나오면서 빨리 나아 꼭 미국에 딸아이, 와이프와 놀러 오라고 웃으며 이야기했었는데… 그 녀석과 함께 도쿄 북페어에 출장을 가서 책들을 고르며 ‘어떤 책을 만들면 좋을까’ 깔깔거리며 이야기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15개월 된 딸아이를 남긴 채, 어둠 속에서 웅크린 채 마지막을 맞았다는 후배 녀석을 생각하니, 사는 게 무상해졌고, 딸아이를 키우며 혼자 살아야 할 그 녀석의 와이프를 생각하니 한숨만 났다. 일 년을 넘긴 오랜 병시중 끝에 남편을 떠나보낸 여자 후배와 전화 통화를 했다.


‘언니,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을까? 매일 술만 먹고 있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던 터라 애써 전화 상으로 안정을 가장하려는 그 녀석이 더 안돼 보였다. ‘거기서 매일 사람들 만나서 술이나 마시지 말고 여행이나 해라. 자연 보고, 다른 세상에서 사람 사는 거 보면 좀 잊을 수 있을 거야’ ‘알았어. 49제 지나면 언니 보러 갈게’


전화 통화를 끝내고도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15개월 된 딸아이 데리고 그 젊은 나이에 어떻게 살아갈까’ 전화를 끊고 한참을 운 다음, ‘쌕쌕’ 거리며 잠자고 있는 수진이를 바라보았다. 수진이나 내 처지 역시 별 다를 게 없었다. 어느 한순간 ‘엄마’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당장 홀로 살아가야 할 딸아이를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졌다.


‘어떻게 하지. 이 험한 세상에. 특히 LA라는 이 무시무시한 도시에서… 갑자기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수진이는 그야말로 속수무책 아닌가? 돈이라도 있어야 언니·오빠에게 맡기기라도 하지…’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나는 당장 수진이를 위해 생명보험을 하나 들기로 작정을 했다. 지금 형편으로는 매달 들어가는 보험료가 빠듯한 게 사실이지만 형편이 된 다음에 보험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는 계속 뒤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보험은 물론이고 내가 더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2017년 4월의 어느날, 영화 '라라랜드'에 나왔던 그리피스 팍 뒷산 트레일 코스를 거닐었다. 이때 날 감싸고 있던 두통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Photo by malee


우리들을 한번 되돌아보자. 흔히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건강’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정작 다른 헛된 일에 집착하며 속을 끓이면서 살고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애 아빠와 살면서 위산과다로 위경련을 일으키기도 했었고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과 소화 장애로 툭하면 체하고 토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까짓 그거 아무것도 아닌데, 그 남자가 누굴 만나고 다니든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지 상관하지 말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걸…’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무리 내가 그렇게 마음을 먹었어도 남자와 함께 살고 있는 한 그렇게는 살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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