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Ⅰ

싱글맘의 육아일기-11

by malee

지난 연휴 오랜만에 이틀 동안 쉴 수 있었다. 신문이라는 것이 빠듯한 제작 일정으로 연휴나 공휴일 등은 무시하면서 살아야 되는 건 알았지만 막상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일이며, 생소한 취재 환경 등 그동안 나도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며칠은 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그러잖아도 수진이는 매일 어디 놀러 가고 싶다고 노래를 해대고... 마침 대학 동기 중에 가장 친한 친구가 일본에 살고 있었는데 이곳 미국으로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을 왔다. 수진이와 친구의 두 아들은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와 일어, 영어를 대충 섞어가며 신나게 떠들고... 이렇게 두 대의 차로 밤 10시에 떠난 곳은 라스베이거스.

라스베가스 전경.png 메인 스트릿의 전경을 담고 싶지만 개인의 카메라로는 한계가 있다. 위 화면은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공식 홈페이지 캡처. Copyright@www.visitlasvegas.com


'처음 라스베이거스를 가는 사람이라면 꼭 밤에 도착하라'는 말이 있을 만큼 휘황찬란한 불빛과 네온사인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 곳... 한국에 살았을 때에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부자 나라인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게 하는 곳...


라스베이거스에 언니 집이 있는 관계로 수진이와 나는 이곳에 몇 번 왔었다. 첫 번째는 애 아빠가 집을 처음 나갔던 때였으니 오래전이었다. 두 돌을 막 넘겼을 무렵 겨우 소변이라는 걸 가리자마자 세 살배기를 데리고 홀로 오른 미국행 비행기. 그때는 아이를 쳐다만 보아도 눈물이 흘렀다. 그저 미국에 있는 엄마와 가족들이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결혼이란 게 이렇게 힘든 거였는지…. 한국에서 남자와 산다는 게 이렇게 여자만 일방적으로 상처 받는 일인 줄 몰랐던 그때의 나로서는 무작정 떠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여행에서 얻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때 수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름 동안 하루 24시간 엄마와 붙어 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가 옆에 있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좋아 어쩔 줄 모르던 수진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되도록 나는 수진이에게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전북 진안으로 귀향해 농사를 짓는 친구네 집에서 이틀 밤을 묵고 왔다. 라스베이거스에 동행한 친구와 두 아들까지 함께 한 대규모 여행이었다. 수진이는 이때 기억을 가끔 이야기하곤 한다. 허름한 농가에서 피우는 군불, 빨간 군불 사이로 고구마가 익어지던 구수한 냄새며, 시골 학교의 종소리까지... 모두 수진이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해서 가슴 뿌듯하다.


더불어 나는 라스베이거스의 미라지 호텔 로비의 유리벽 안에서 휘황찬란한 조명을 받으며 관객들의 환호를 받던 백 호랑이도, 트레저 아일랜드 호텔 앞에서 신나게 해적과 영국 함대가 대포를 쏘며 벌이는 전투도, 베네시안 호텔 안 운하에서 산타루치아를 멋들어지게 부르며 곤돌라를 젓는 사공의 모습까지도... 모두 다 보여주고 싶다.


다 쇼일 뿐이지만, 그 화려함과 화려함 속에 묻혀있는 속됨과 쓸쓸함까지... 어차피 인생은 쓸쓸한 한판 쇼에 지나지 않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내 욕심이 너무 크다는 걸...


이런 엄마의 모습을 수진이가 자란 다음에는 어떻게 볼까? 결국 아무리 결혼하지 말아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렸던 엄마와 친구들의 충고를 한 귀로 흘러 보냈던 나처럼, 수진이 또한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마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중에 읊조리게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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