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의 육아일기-4
지난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었다. 이날엔 미 전역에서 화려한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시민들은 음식 등을 준비해 퍼레이드를 즐기기 위해 피크닉을 간다. 하지만 독립기념일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웅장한 불꽃놀이. 각 지역의 공원이나 학교 등에서 다양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이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저녁부터 자리를 잡고 준비한 음식 등을 펴놓고 가족끼리 휴일의 저녁을 즐기는 것이다.
수진이가 초등학교를 갓 입학했을 때였다. 난 한인 신문사를 다녔기 때문에 휴일에도 당직으로 일을 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 특히 신문사는 그다음 날짜 신문을 만들어야 해서 휴일에 일을 해야 하는 일들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5일 자 신문을 만들기 위해 4일 독립기념일 휴일에 회사를 향하는 나를 향해, 수진이가 어김없이 소리를 질렀다. "엄마, 일찍 들어와야 해. 오늘은 정말이야, 불꽃놀이 보러 가야 하니까".
수진이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회사에 도착해서 쉬지 않고 일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밤 9시에 시작하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저녁때부터 몰려들 인파 사이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일찍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저 남 하는 거 뒤처지지 않고 따라가려고만 해도 이렇게 힘드니… 욕심 많은 수진이는 이 엄마가 해주는 것이 늘 성에 차지 않아 큰일이다. 누굴 닮았는지 끝도 없는 그 욕심을 어떻게 다 채워줄 수 있을까?
나는 듣는 둥 마는 등 수진이가 촐랑거리면서 이모집으로 뛰어들어가는 모습을 사이드 미러로 바라보았다.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할 당시에는 나름대로 고민도 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다고 믿었는데 이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미국을 모른 채 무작정 부딪히고 있는지 새삼 무모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진이와의 약속을 지켜야 할 텐데…’ 속으로 되뇌며 휴일 아침의 텅 빈 프리웨이를 달렸다. 미국에서 프리웨이를 운전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 알 것이다. 거미줄처럼 서로 얽히고 교각에 다시 교각으로 연결되는 프리웨이의 구조를…
이곳에 처음 도착해서 프리웨이를 운전하다가 당황했던 적이 많았다. 워낙 3∼4개 심지어 4∼5개의 프리웨이들이 교차하다 보니 레인 하나만 다르게 가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므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운전을 해야 했다. 오래 산 사람들도 종종 혼동하는 프리웨이는 미국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 이민자인 나에겐 운전이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 번은 운전을 하면서 습관처럼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 무의식적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낯선 풍경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만 여기가 어디지?’ 나는 내가 가야 할 프리웨이를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레인 하나 차이로 완전히 딴 방향으로 들어서게 됐을 때의 황당함이란…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일단 이 길을 계속 달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출구로 빠져나와야 할 것인가? 물론 답은 간단했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판단이 되면 첫 번째 출구에서 빠져나와 왔던 길을 되짚어 가면 어김없이 내가 타야 할 프리웨이 입구를 다시 만나게 된다.
몇 번의 이런 경험을 겪자 마치 득도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 프리웨이를 달리면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춰 레인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긴장을 유지하는 것, 만약 레인을 놓쳐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됐다 하더라도 재빠르게 대처만 한다면 그리 먼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간단한 프리웨이 철학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프리웨이에서 길을 잃고 헤맸을 때 선택하듯 내 삶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아는 순간 재빠르게 그다음 출구로 빠져나와 다시 되돌아갔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만 했으면 이곳까지 건너와 이 고생을 할 필요도, 지금의 내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 텐데… ’
물론 나는 이러한 깨달음을 앞으로의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게 아니지 싶으면서도, 혹시 알아? 내가 원래 가려던 그 길과 만나게 될지’라든지 아니면 ‘이 길이 더 좋은 길일 수 있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그저 달리기만 하는 우를 다시는 범하고 싶지 않다.
짧은 선택의 순간이 사람의 인생을 다르게 변화시켜 놓을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선택의 순간이 더 힘들다. 과연 지금의 내 선택이 앞으로 나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난 이제 시간과 공간의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금의 내 선택이 앞으로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아직 안갯속이다. 하지만 난 안개가 가라앉길 기다리며 서있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열심히... 멈추지 않고... 꾸준히 걸어 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