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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Jun 06. 2019

강한 여성에 대한 혐오감

바운드

오늘은 오래 전에 보았던 '바운드'라는 영화에 대해서 잠깐 눈을 돌려볼까 합니다. 갑자기 이 영화를 끄집어낸 건 마침 지난 토요일 주말(6월1일)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큐어 문화 축제를 취재한 친구가 보내준 기사를 읽다보니 저도 예전에 써놓았던 이 칼럼이 갑자기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큐어 축제에서 참가자들이 'Happy together in diversity' 타투를 하며 동성애자들을 응원했다. Photo by Hyung Mi Choi

두 명의 레즈비언이 마피아의 돈을 가로채, 온갖 숨막히는 죽음의 순간을 물리치고 결국 2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손아귀에 넣고는 길을 떠나죠. 두 여자가 회심의 키스를 하던 마지막 장면이 정말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당시 어렸던(?) 저는 아니 여자 두 명이 저 엄청난 일을... 입이 정말 떡 벌어져서 다물수가 없었죠.   


사실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도 동성애 낯설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낯설게만 받아들이면 그래도 점잖은 편이죠. 온갖 조롱과 편견들을 숨기지 않고 내뱉으며 배설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바운드'가 개봉되던 시기에 엇비슷하게 개봉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해피 투게더'는 동성애를 이유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엄청난 가위질을 당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영화 감상 경력이 일천한 저로선, 한국 영화를 돌이켜보면 이경영이 여관을 전전하며 '좀 씻고 와라'라고 구박받던... 남창 연기가 참으로 생경하던 '게임의 법칙'이 생각납니다. 


학원물의 전설로 여겨지는 '여고괴담 2'에서 보여준 여고생의 동성애도 강렬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동성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던 아이들이 간혹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밤에 연못가에서 누구 누구가 키스하는 걸 봤다'는 소문들이 돌곤 했으니까요. 제가 아는 선배 한 명은 고등학교 시절, 한 동기가 보내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연애편지 때문에 공포에 떨기도 했었답니다.  


그런데 동성의 애정 공세를 받는 여성들을 보면 '강한 여성', 혹은 '남성다운 여성'으로 캐릭터가 집약됩니다. 영화 '바운드'에서 '강한 여성'은 코키입니다. 그리고 마피아의 정부이면서 코키에게 사랑을 느끼는 여인은 '바이올렛'입니다. 바이올렛은 나즈막히 속삭이듯 부드러운 음성에 볼륨이 뛰어난 몸매를 갖고 있는 매력적인 요부입니다. 


바이올렛은 아파트의 잡역부로 일하는 코키를 엘리베이터에서 보자마자 그(?)에게 강하게 끌립니다. 그리고 마피아의 돈세탁 담당인 자신의 애인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훔치자고 제의하죠. 


남성들의 전유물인 그 더러운 지하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두 명의 레즈비언이 빼돌려 잘 먹고 잘 산다(?).  그 발상 자체가 기가 막히게 코믹했지만 저는 그 영화에서 남성들이 '강한 여성'에게 느끼는 적대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감독인 워쇼스키 형제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하더라도 말이죠). 


여기서 워쇼스키 형제, 아니 지금은 자매가 된 이들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죠?


우리에게 키아누 리브스의 현란한 액션으로 기억되는 SF 대작 매트릭스를 감독했던 워쇼스키 형제(당시 래리와 앤디)는 이제 성전환 수술을 두 명이 다 마치고 워쇼스키 자매(라나와 릴리)가 됐습니다. 워쇼스키는 형이었던 래리가 2008년 '스피드 레이서'란 영화를 마치고 성전환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2012년 '클라우드 아틀라스' 를 개봉할 때 자신이 '라나'가 된 사실을 밝힙니다. 이 영화에는 배두나도 출연했었죠. 

2015년 Jupiter Ascending 개봉 당시 라나와 남동생 앤디 워쇼스키의 모습. Photo IMDB

동생인 앤디는 형의 성전환 수술 몇 년이 지난 후, 본인도 수술을 받고 릴리 워쇼스키가 됐습니다. 2016년 시카고의 로컬 신문인 윈디 시티 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의 수술 사실을 컴잉 아웃합니다. 형제였다가 남매로, 다시 자매로 바뀌는 이들의 삶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평범하지 않습니다. 창의력 넘치는 이들 자매가 만든 SF 영화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이들 자매를 대놓고 손가락질 하실 분 없으시겠죠? 우리엔겐 이들을 조롱할 권리가 없습니다. 

   

Photo by Lilly Wachowski - © 2016 - Windy City News


남성에게 섹스 어필하지도... 고분고분하지도 않은 여성은 남성들로부터 조롱받고 외면받습니다. 남자들은 왜 강한 여성에게 그토록 적대감을 느끼는 걸까요? 단순히 자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아서? 아니면 전혀 섹스 어필하지 않아서?


최근 몰카와 데이트 폭력, 물뽕 강간, 여성에 대한 묻지마 살인... 말만 들어도 섬뜩한 일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기가 변하는 밀레니엄 시대였던 2000년 초, 온갖 학자들이 21세기에 가장 변화될 사회 현상의 하나로 가정의 해체를 꼽았습니다. 


가족의 해체에 수반되는 고정된 성 역할의 변화가 거센데 아직도 변화를 받아들이기 싫고 받아들일 수 없는 단단한 뇌 구조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 또래 사람들이 모이면 딸을 둔 사람은 딸 아이가 결혼을 거부하고 있다며 페미니즘 공부를 해야 하지 않나? 진지하게 고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남매를 둔 한 가정은 이 남매가 가정 내에서 성 갈등을 일으켜 서로 말도 안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더니만 결국 둘 다 독립을 해버렸다며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더군요. 


예전엔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안에서 살림하던 전통적인 가정의 유형이 없어져버렸습니다. 남녀가 불평등한 결혼이라는 조건을 감수하느니 혼자 살겠다는 독립적인 여성들이 정말 많습니다. 물론 삶의 최고 목표가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인 여성들도 여전히 즐비하지요. 


앞으로의 가족은 남성과 여성을 기본으로 하여 혈연으로 구성된 테두리가 아니라 자신과 뜻이 맞는 이들끼리 모여사는 동맹으로 재편성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하는 걸로 보아 앞으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가정이라는 테두리는 더욱더 엄청나게 변화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선 특히 남성분들은 글로벌하게 변화하는 가정의 해체에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대응하려는 모습들이 안보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사실은 저도 동성애나 뭐 젠더에 관한 것들을 그리 자세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부쩍 동성애를 그리는 영화나 소설, 그리고 만화가 등장하고 있고, 그게 단지 나와는 너무 다른 변태성욕자들의 애정행각이라고만 받아들이고 회피하기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어 좀 정확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영화야 제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원초적 본능'에서부터 '필라델피아',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해피투게더',  '벨벳 골드 마인'까지 동성애 코드로 제작된 영화는 꽤 많다고 할 수 있죠. 아예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만을 모아 상영하는 큐어영화제가 있을 정도이니까 말이죠. 


그리고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을 읽으며... 아시죠? 미시마 유키오. '자위대여 궐기하라' 외치며 자위대에 침입해, 자신의 배를 가르고 우익 동지에게는 자신의 목을 내리치도록 한, 우리에게 일본 군국주의의 화신으로 알려진 그 작가 말이에요. 그의 소설을 읽으며 참 특이한 소설이다라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미시마 유키오는 나중에 다른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좀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만화에서도 동성애를 그리는 작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뉴욕뉴욕'이라는 일본의 만화 작품이 있습니다. 이 만화를 보면 저도 모르게 감동을 느낍니다. 온갖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꿋꿋하게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며 컴잉 아웃하는 과정, 이 주위의 따가운 눈총과 편견을 자식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지켜주고 극복해주는 부모를 보면서 참 감동했던 작품입니다. 


아마도 이 만화를 두 세 번 읽으며 '동성애자' 하면 이상한 사고 체계를 갖고 있는 이들이 벌이는 기괴한 삶의 표현 양식이라는 일반적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저의 시각도 많이 변화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내 안엔 내가 너무도 많아' 자신에게 그저 주어진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 대한 편견과 증오심,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신들과 다르다는 그 이유 하나로 극심한 혐오감을 아무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컴잉 아웃하는 그네들의 용기가 온갖 권력과 특권을 가지고 있는 주류집단에 대한 극소수 비주류들의 자기 의지 표현이라는 것이죠.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을 살아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우리 모두 압니다. 

내 의지에 따라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나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좌절을 거쳤을지... 진지한 자기 성찰과 성찰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행동은 아무 고민없이 손가락질하는 자들의 조롱거리가 되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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