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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Nov 01. 2019

고향을 묻지 마세요

힐링으로서의 글쓰기

한국 사람들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눌 때 고향이며 학교며 이런 신상조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묻고 답을 요구한다. 물론 지금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하지만 예전에는 고민을 할 때가 많았다. 특히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윗 상사들이나 취재차 만난 나이 든 분들은 어김없이 고향을 물어보곤 했는데 이때 내 고향이 어디인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 같다.


나 스스로 호구조사를 밝히자면 서울 노량진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집안은 충남 공주, 어머니 집안은 충북 증평의 터줏대감들이시다. 그래서 연세 드신 분들이 고향을 물어볼 때는 난 어김없이 위의 긴 문장을 그대로 답해주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고향에 살고 계시거나 친척들과 왕래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게 고향은 그냥 머릿속 어딘가에 말로 전해 들은 고장이다. 거의 이어도 수준인 셈이니 내 삶에서 고향이 구체성을 띤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자꾸 고향을 물어보니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고향이 이상향을 좇듯 안갯속의 그 어느 곳으로 이미지화돼있다고 본다면 내게 고향이란 아마 '자신의 정체성'아닐까? 친한 친구 가운데 부모님이 실향민인 친구가 두 명이 있다. 이들에게 '넌 고향이 어디라고 생각해?' 두 사람 대답이 똑같았다. '난, 평안남도' '난, 함경남도'.  두 친구 모두 부모의 고향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당연하게 대답을 했다.


고향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니 갈 수 없는 이 친구들은 그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데 난 왜 내 고향을 자신 있게 충청도라고 말하지 못하지? 그러더니 이제는 아예 미국으로 이주해서는 한국도 고향 같은 생각이 들지 않으니... 난 우주인인가? ㅋㅋㅋ


미국 국적의 한국계 미국인인 교포 혹은 그 자녀들은 사실 본인들이 한국에도 미국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오죽하면 딸아이가 고등학교 때 방학을 맞아 한국에 나오면 실컷 놀다가도 다시 들어올 때쯤 되면 코가 빠져서 "엄마, 난 한국 사람도 아닌 것 같고 미국 사람도 아닌 것 같아. 쇼핑몰 가서 상점에 가면 자꾸 언니들이 내 피부를 만지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봐. 한국 사람 아닌 것 같대. 난 코즈모폴리턴인가 봐" 라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까?  


미국으로 이주를 한 후, 비교적 미국 생활에 잘 적응을 하며 살고 있는 친언니는 이제 고향이 라크라센타(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도시)라고 생각한다. 해외에 나갔다 다시 돌아올 때 프리웨이에서 라크라센타 표지판만 보면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 편해진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깔깔거렸던 걸 생각하면 고향이란 본인이 편안해하는 그 어느 곳쯤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10월 초 약 3주간 미국에 갔다 왔다. 브런치에 글을 한동안 올리지 못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가족 이벤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어서 약 10개월 만에 잠시 방문한 미국 체류기간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조카 결혼식이 끝나고 로스앤젤레스로 내려와 회사 사무실에 나가기 위해 차를 몰고 프리웨이를 달리던 순간이었다. 

10월13일은 샌프란시스코의 Fleet Week다. 이때에는 가족이 바닷가에 나와 정박한 해군함정을 보며 굉음을 쏟아내며 벌이는 공중쇼를 관람한다. Photo by malee

햇살을 뚫고 차를 운전하며 프리웨이를 달리다 보니 도로 양옆의 익숙한 풍경들과 내리 쏟아지는 강한 햇살이 살짝(?) 반가워졌다. 어? 이거 뭐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다짐하며 떠나왔던 그곳에서 느껴지는 이 반가움의 정체가 무엇일까? 스스로 내게 던진 질문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사실 19년 만에 되돌아온 한국 생활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돌이킬 수 없게 멀어진 문화 차이도 그렇지만  마치 19년 전 아무것도 모르고 미국에 갔던 초보 이민자처럼 사회 시스템이 완전히 달라진 한국 역시 내게 초보 딱지를 붙였다. 그리고는 제도의 울타리를 쳐놓아 이곳에서 35년을 살아왔던 사람도 여간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게 나를 대접(?)했다. 마치 한국말을 하는 외국에 온 것처럼 난 이곳 한국에서도 이방인으로 살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방랑자로 살고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래도 난 씩씩하게 이에 굴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었던 몇 가지 일들을 찬찬히 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전업작가 꿈을 꿔보는 것도 그중 첫 번째이고 눈에 보이는 것을 내 손으로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에  드로잉을 배우고 있는 것이 그 두 번째다. 그리고 내 오랜 염원인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일도 시작했다.   


내 나이 5살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일은 현재까지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인생의 오랜 시간, 나를 짓눌러왔던 아버지의 부재와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난 이 일을 꼭 해야 한다. 이건 어떻게 보면 내게 고향을 찾는 일이고 5살이란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한 후 겪은 상실감과 자존감을 되찾기 위해 꼭 필요한 인생의 과정이기도 하다.


고향이란 무엇일까? 

그건 결국 내가 돌아가고 싶은 그 어느 곳, 어디든 아닐까?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묻지 말자.

고향도 나이도... 좀 묻지 말고 개인의 영역으로 존중해주자. 호기심 뚝! 오지랖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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